2 나의 글

박설호: 견유 문학론 (2)

필자 (匹子) 2022. 6. 25. 11:29

8.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짖는 개치고 겁먹지 않은 개는 없다. 개의 짖음은 자기 방어에서, 혹은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겁 없는 개만이 사람을 물어뜯는다.”라는 가설은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두려움이 공격 성향을 낳을 수도 있다. 전쟁터에서 군인다운 군인은 살아남기 위하여 싸울 뿐, 타인을 죽이기 위하여 싸우지는 않는다. 남을 죽이려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대개 제 정신이 아니거나, 약물에 중독 된 자들이 아니던가? 정신 질환자의 공격적 성향은 외부로부터의 엄청난 피해망상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9.

그렇다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 문학은 삶의 일부에 불과하다. 문학 작품 없이도 인간 동물은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삶의 본질을 담지 않은 문학 작품은 만화보다 천박하다. 그래, 개 짖는 태도가 문학의 일이다. 이에 비하면 물어뜯는 행동은 살아 움직이는 삶의 일이며, 선 (善)의 사회적 실천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어디 물어뜯는 것만이 대수이겠는가? 물어뜯는 것보다는 짖는 게 효과적일 때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큰 소리로 고함지르는 국회의원에 비해 다짜고짜 주먹질하는 국회의원이 더 저질이다. 전장 터에서 훌륭한 장수는 부하들의 생명을 허비하지 않고 승리를 구가하는 자이다. 영국의 시민 혁명이 위대하게 보이는 이유는 피를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는 대체로 피의 대가로 쟁취된다. 하기야 피의 대가 없는 자유는 이상일 테니까. 실제로 역사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지만 피 없는 혁명이 가장 위대하다.

 

10.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짖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물어뜯는 게 중요한가?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무어 그리 답답해서 자신의 삶을 노골적으로 까발리며, 문학 작품을 집필할 것인가? B. 트라벤 (B. Traven)이 말한 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무언가를 남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제한된 삶은 얼마나 아쉬운가?” 이에 대해 하나를 선택하기란 무척 어렵다. 문제는 이 세상에 침묵과 여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완성되어 발표된 문학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완성되지 못한, 문자화되지 못한 착상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며, 사장되곤 한다.

 

11.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인간 동물은 컹컹 짖을 수도 있고, 무언가를 (혹은 사람을) 물어뜯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말과 글을 통해, 다른 한편은 행동을 통해. 이렇듯 인간은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제각기 단계를 거칠 때, 심사숙고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짖거나 물어뜯고 난 뒤에 되돌아오는 충격파 내지는 상대방의 엄청난 반응을 생각해 보라. 그렇기에 개는 단 한번 장렬하게 독침을 쏜 후에 사망하는 꿀벌보다 더욱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 때도 있다.

 

12.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물어뜯는 동작 그것으로 그칠 뿐이다. 실제 삶은 이렇듯 단선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하면 짖는 동작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복선적으로 담겨 있다. 문학 작품 속에는 바람직한 삶에 대한 상 내지는 끔찍한 삶에 대한 상이 담겨 있다. 그것은 실제 삶과는 달리 가상적이다. 그렇기에 문학은 어떤 거짓이나 어떤 현혹을 담고 있다. 그러나 거짓이나 현혹 속에는 거짓이나 현혹만이 아니라, 가능성의 개념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인간 동물은 밥뿐이 아니라, 희망을 먹고 살아가지 않는가?

 

13.

우리는 다음과 같이 모순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로 문학은 그저 인간 동물의 삶을 보충할 뿐이다. 가치 있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문학 작품에서 삶의 도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둘째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Vita brevis, ars longa est. 삶이 일회적이라면, 문학은 영속적이라고. 미처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은 한 권의 문헌으로 남아서, 후세 사람들에게 삶의 상처, 바람 그리고 해원의 흔적을 남기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