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강덕경, 혹은 알렉산더 미처리히 (5)

필자 (匹子) 2022. 5. 11. 10:58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국화와 칼: 지금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과거의 참상에 관해서 거의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동 대지진 당시의 학살 사건을 잘 모르고, 정신대에 끌려간 한국 처녀들의 평생 지속되는 저주와 치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젊은 일본인들은 과거사가 자신과 관련되지 않으므로 책임 없다고 여기고 있으며, 전쟁에 참가한 나이든 일본인들 역시 아예 자신의 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최소한의 공공연한 반성이 출현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일본 사회에서 비판적 자아보다는, 전체주의적이고 군국주의의 생활관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일본이 고립된 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대륙과는 차단된 환경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자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본에서는 자결하는 행위가 미화되었는지 모릅니다. 폭력으로부터 도망칠 수단이 배제된 사람이 마지막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방도는 하라키리, 즉 할복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도망치면서 저항하는 행동관은 일본에서는 조금도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묘사되고 있듯이, 대다수의 일본인들에게는 “칼”을 감추고 “국화”를 드러내는 엉큼한 복종심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Benedict: 2). 그게 아니라면 도주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특유의 복종심 내지 집단주의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24. 다시 일본인 가해자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기독교의 전파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0.5%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 역시 선불교와 사무라이 문화의 영향 때문일까요? 과연 선불교가 얼마만큼 탈-개인적인 군국주의와 관련되는가? 하는 문제는 차제에 학문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자고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제는 근본적으로 알량한 정어리 떼의 항변과 같습니다. 작은 사람 (倭人), 군국주의자들의 눈에는 상어 떼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호모 아만스는 인정에 기대고 살아갑니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판단력을 떠맡기고 살다가, 큰코다치곤 합니다. 피해자가 아무리 죄를 인정하라고 요구해도 가해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전반적인 자발적 정책으로서 보복의 정의를 실행하는 것보다는 하워드 제어Howard Zehr가 언급한대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관철시키는 일일지 모릅니다. (제어: 242). 특히 후자는 한국의 두레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방법이었습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묻는 대신에 상처의 치유와 인간관계의 회복하는 일이 시급할지 모릅니다.

 

가령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와 관계되는 모든 당사자가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적대감을 약화시키는 방식이 바로 “회복의 정의”를 가리킵니다. (이도흠: 349 이하). 과연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과 일본군들이 회복적 정의를 위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능할까요? 어쨌든 우리로서는 죄를 인정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대신에, 가해자가 역사적 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일본인들의 진정한 역사 이해를 촉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들은 바로 이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도시쿠, 도이 (2014): 기억과 함께 산다, 전 위안부 강덕경의 생애, (일어판) Tokyo

- 라이히, 빌헬름 (1987): 파시즘과 대중심리, 오세철 외역, 현상과 인식.

- 이도흠 (2015):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자음과 모음.

- 제어, 하워드 (2010):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범죄와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손진 역, KAP.

- Adorno, Theodor (1959): Theorie der Halbbildung, in: ders., Gesammelte Schriften, Bd. 8, Frankfurt a. M.

- Benedict, Ruth (1946): The Chrysantheumum and the Sword, Boston.

- Dubiel, Helmut (1990): Linke Trauerarbeit, in: Merkur, Nr. 496, H. 6.

- Freud, Sigmund (2011): Massenpychologie und Ich Analyse, Hamburg.

- Le Bon, Gustave (2016): Psychologie der Massen, Köln.

- Mitscherlich, Alexander (1963): Auf dem Weg zur vaterlosen Gesellschaft. Ideen zur Sozialpsychologie, München.

- Mitscherlich, Alexander u. a. (1967): Die Unfähigkeit zu trauern. Grundlagen kollektiven Verhaltens, Frankfurt a. M. 1967.

- Mitscherlin, Alexander (1983): Versuch, die Welt besser zu bestehen. Fünf Plädoyers in Sachen Psychoanalyse, Frankfuert a. M..

- Theweleit, Klaus (1993): Männerpfantasie, 1. Frauen, Fluten, Körper, Geschichte, Reinbek bei Hamburg.

- Tischler, Lars (2013): Über die Relativierung der Moral: Die Unfähigkeit zu trauern – die Bewältigung des nationalsozialistischen Traumas in der deutschen Gesellschaft, Mün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