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아파트 유감 (1)

필자 (匹子) 2022. 6. 17. 11:37

“의식주” - 단어의 순서에 의하면 옷 입는 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 “의식주”를 “주의식”으로 변모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이 옷에 상관없이 자신을 존중해주었을 때 아리스티포스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 옷이란 추위를 피하고, 부끄러운 곳을 가리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거주 공간은 옷과는 달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옷이 아니라, 거주지가 더욱 중요하지요.

 

80년대를 외국에서 살다가, 고국을 찾는 오디세우스의 감회를 과연 몇 명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80년대 말이었던가요? 실로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나는 고향 부산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나, 내 눈에는 그다지 변한 게 없었습니다. 어릴 때 첫사랑을 처음으로 만났던 영도. 대연동의 어느 전세 집. 친구들과 피 흘리며 데모하던 서면 시가. 전포동의 자그마한 전셋집 모두 그대로 있었습니다. 친숙한 사물들은 10년의 세월이 지나간 후에도 고통도 희망도 없이 무심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 그야말로 산천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데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이 내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습니다. (자가용이 많아졌다는 사실 외에) 산비탈마다 아파트촌이 마치 비 온 뒤 솟은 버섯처럼 솟구쳐 있었습니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비교적 드문 편이었습니다.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때는 오래 전의 일이지만, 아마도 80년대에 마구잡이로 지은 것 같았습니다. 세밀하게 살펴보았을 때, 한반도 전체가 조금씩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상 1층의 건물 곁에는 15층 건물이 우뚝 솟아 있고, 63빌딩 곁에는 아예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쑥날쑥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땅값의 차이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부동산 지하 경제가 지상에서 살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피와 노동의 땀을 빨아먹는 것 같았습니다. 상가를 임대하여 밤낮으로 자장면을 만들어 파는 중국집 김씨 아저씨는 임대료의 횡포에 지금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편리함을 제공하던 아파트가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게 중앙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획일적 삶을 강요하는 것은 둘째 치기로 합시다. 가령 한 달 내내 아파트를 비워둔 사람도 난방비를 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아파트가 우리늬 눈에는 마치 "차곡차곡 쌓아놓은 관"처럼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똑같은 아파트에 살고, 똑같은 양복을 입고 살아갑니다. 유명한 배우가 짧은 헤어 스타일로 무대에 들어서면, 대부분 사람은 똑같이 짧은 헤어스타일을 모방하고, 획일적으로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다가 꿈속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나 손가락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 너도 남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냐?”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독점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피해자입니다. XX가 만든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하고 (색상이나 모델 역시 내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흰색 자동차를 그냥 끌고 다닙니다. XX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XX가 투자해 지은 백화점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고, XX의 회사에서 만든 TV를 시청하며, 주말이면 XX가 만든 리조트 혹은 자연 농원에서 그냥 놉니다. 학생들도 XX 회사에서 만들어낸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뿐, 도서관 서점에서 책을 읽지 않습니다. 훌륭한 서적들은 파주의 창고에서 재고품으로 가득 쌓여 있습니다. 도서관은 XX회사의 회장의 자서전을 주문하지만, 학술서적은 거의 구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XX와 만나서,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지 않지만, XX은 우리의 삶을 간접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대도시의 탈출을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도시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대도시 한복판에는 술집, 창녀, 뜨내기들이 서성거리고 사람들은 대도시의 탈출을 꿈꾸며, 위성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서울 중심부에 살고, 주변으로 멀어질수록 돈 없는 사람들이 거주합니다. 강남에서 4호선 지하철을 타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철은 사당을 지나, 과천으로 달립니다. 그 다음에 서울 주위의 위성 도시에 해당하는 평촌을 지나치면서 안산 오이도로 달립니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안산에 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시골을 떠나려는 불쌍한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난제가 80년대에나 지금에나 간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다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집 문제가 사치스럽다니, 말도 안 됩니다.

 

갑갑한 아파트를 뛰쳐나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한 5층짜리 건물이 많이 생겨나야 할 텐데. 추운 겨울에 잠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혹자는 말합니다, 인구가 많아서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내 말을 듣고 항변할 것입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소리 집어치우라고. 15층이 아니라 30층이라도 좋으니, 내 집 한 칸 마련하고 싶은 노동자의 심정을 깊이 헤아려 보라고. 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다른 집을 구해야 하는 가난한 부부가 손에 들고 있는 전세금을 생각해 보라고.

 

독일과 프랑스의 세입자는 자신이 살고 싶은 날까지,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1년 혹은 2년 세들어 살다가 황급히 쫓겨나는 세입자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보증보험에 가입하더라도 고약한 집주인을 만나면 전세금을 떼이는 경우가 발생하지요. 이를 고려하면 전세 제도는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세입자 보호를 도욱도 공고히 하기 위한 법안을 만든다면, 이러한 고충은 아마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대부분이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세놓는 사람들입니다. 고양이가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할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인구와 경제의 핑계를 대고 모든 다른 문제를 은폐시킬 것인가요?

 

의식주, 의식주라. 그래, 우리는 옷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요?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말일 것입니다. 외모에 신경 쓴다는 것은 남을 의식한다는 말인데, 궁극적으로 이는 허영심과 관계됩니다. 1989년 독일이 통일을 이루었을 때 수많은 독일인은 브란덴부르크 문에 모였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사진 속에서 그들이 입고 있던 외투를 세밀하게 바라보세요. 그들의 외투는 마치 누더기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집은 너무나 튼튼하고 멋지게 지어져 있습니다. 이곳에 누더기를 걸친 일반인들이 거주하리라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는 말했습니다. 건축물은 “견실(firmitas)”해야 하고, “유용 (utilitas)”해야 하며, 그 자체 “아름다움 (venustas)”이어야 한다고. 과연 우리가 사는 집은 어떠한가요? 어째서 100년 정도 버티지 못하고 수십 년 지난 건물을 허물어뜨려야 하는가요? 우리의 집은 과연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어째서 사람들은 실용성만 강조할까요? 왜 집이 반드시 사각형이어야 하는가요? 6각형의 벌집은 어떻고, 원형이면 어떤가요? 왜 사람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어마어마한 집값 때문인가요?

 

한국은 부자의 천국입니다. 부자는 임대료로, 전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상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버는 돈은 푼돈에 불과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거액입니다. 가령 강남 지역은 지하 경제 창궐하는 지옥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지옥을 나중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고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이곳이 진정한 고향으로 느껴질 때는 과연 언제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