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 볼프의 "원전 사고" (4)

필자 (匹子) 2021. 12. 21. 15:53

(앞에서 계속됩니다.)

 

14. 원자로의 문제점: 혹자는 원자력 에너지를 평화롭게 사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는가? 하고 항변합니다. 과학자들은 핵에너지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가 예견할 수 없는 악영향을 미리 간파하지고 못하고, 이를 예방할 기술을 우선적으로 찾아내지도 못합니다.

 

주지하다시피 핵에너지는 핵폭탄의 쌍생아와 같습니다. 원전 사고 없이 원자로가 가동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자로에서는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핵폐기물은 물론 중준위 저준위의 핵폐기물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약 20만년 동안 보존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핵에너지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핵폐기물의 처리에 관한 비용과 난제를 후세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는 핵폐기물 처리의 문제로 정부와 인민 사이에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찰과 핵의 위험성 때문에 독일은 원자로를 2020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독일 정부는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내지 대안에너지의 개발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5. 이상을 추구하는 노력에 대한 회의감: 크리스타 볼프의 작품은 원전사고를 계기로 지금까지 인류가 추구해온 문명의 방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인류는 수십세기 동안 가난과 폭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며, 전체주의의 갈등과 전쟁 그리고 대량 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희망을 견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최소한 정의로움, 평등, 만인을 위한 인간 본위주의 등과 같은 삶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정치적 유토피아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과학 기술을 언급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허버드 마르쿠제Herbert Marcuse, 헬무트 셸스키Helmut Schelsky 등은 유토피아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몇몇 자유주의의 지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허황된 천년왕국을 추종하는 이데올로기로 매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과학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어쩌면 인류를 파멸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갈지 모릅니다. 과학 기술은 인간에 의해 발전되었지만, 이제 그것은 인간 삶을 망치게 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16.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구체적 유토피아로서의 환경, 여성 그리고 평화: 과학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은 이성을 지닌 선한 존재가 아니라, “지적 야수”의 면모를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토피아의 국가 모델 내지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서의 유토피아의 성분이 유효한 까닭은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경제적 삶 그리고 더 나은 가정의 행복이 실현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체르노빌 사건은 인간이 눈앞의 이득을 추구하다가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게 되는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는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면서, 인간이 지니고 있던 미래에 대한 예견력을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계속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불 (과학 기술)이 가져다줄 재앙을 미리 고찰하게 될 테고, 섣불리 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Kunert: 189).

 

인간은 자신의 두뇌를 최대한 활용하여 석유와 석탄을 캐내어 환경을 훼손시켜 왔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능력을 지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 할까요? 크리스타 볼프는 아직은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 동생의 뇌수술이 성공리에 끝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볼프는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난제인 원전사고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킴으로써 정치적 유토피아가 종언을 고한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새로운 구체적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은밀하게 전해줍니다. 과거의 유토피아가 국가 (정치적 측면), 공유제 (경제적 측면) 그리고 새로운 가족 제도 (사회적 성적 측면)에서 새로운 실험을 추구해 왔다면, 21세기에는 모든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해야 하는 구체적 유토피아가 얼마든지 태동할 수 있습니다. 환경, 여성 그리고 평화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참고 문헌

 

- 김용민: 생태문학. 대안 사회를 위한 꿈, 책세상 2003.

- Kunert, Günter: Verspätete Monologe, München 1989.

- Wolf, Christa: Selbstversuch, in: dies., Gesammelte Erzählungen, Darmstadt 1981.

- Wolf, Christa: Voraussetzung der Erzählung: Kassandra, Darmstadt 1983.

- Wolf, Christa: Störfall, Nachrichten eines Tages, Aufl. 3. Frankfurt a. M.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