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6. 핵무기 시대에 평화는 가능할까?: 볼프는 미래에 인류를 파국으로 몰라갈지도 모르는 전쟁의 위기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문학의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핵무기 시대의 위기적 상황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이기주의를 해결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핵무기, 핵에너지, 자연 파괴의 현상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케 하기 때문입니다. 즉, 개개인의 자기 보존의 원칙은 타인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 이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이룩될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옛날에는 전쟁을 통해서 환호하는 승리자와 굴욕을 감수하는 패배자가 생겨났지만, 원자 폭탄의 발명 이후에는 그러한 일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볼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 번째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자는, 그 후에 두 번째로 사망할 것이다.” (Wolf 83.: 88). 바로 이러한 까닭에 개인적 국가적 이기주의는 -현대의 평화 운동을 염두에 둘 때-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이타주의로 변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변모는, 만약 우리가 힘없고 권력 없는 국가의 사람들을 객체로서 파악하거나,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볼프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Wolf 83: 424). 크리스타 볼프는 핵전쟁이라는 극한의 위험 속에서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견지하였으며, 유럽인 나아가 지상의 모든 사람들의 평화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7. 체르노빌 원전사고: 1986년에 발발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유럽인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하게 됩니다. 실제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 키예프 시 근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제4호 원자로에서 발생한 20세기 최악의 사건입니다. 사고 당시 31명이 즉사하고 피폭 등의 원인으로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에 7,000여명이 사망했으며, 나중에 70여 만 명이 방사능 오염으로 인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의 총량은 1억 Ci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방사능은 기상의 변화에 따라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고 그 일부가 아시아권의 국가들에까지 도달했습니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하여 유럽 사람들은 수년간 과일과 야채 그리고 우유를 먹고 마실 수 없었습니다.
원전 사고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발전소는 터빈발전기의 관성력을 이용하는 실험을 하기 위해 원자로출력을 1/3 정도로 낮출 계획이었는데, 실수로 거의 정지 상태에 이를 정도로 낮추었기 때문에 재기동이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발전소의 담당자는 무리하게 출력을 높이려고 제어봉을 지나치게 올렸는데, 이로 인하여 출력이 올라가 긴급 정지 조작할 틈도 없이 원자로의 반응도 부가사고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8. 원전사고, 소설 집필의 계기가 되다: 크리스타 볼프는 원전 사고의 소식을 접하고, 문학과 작가의 영향력, 기술 문명의 문제점 그리고 정치적 유토피아 등에 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서양 문명의 맹점. 다시 말해서 (조셉 콘래드의 표현을 빌면) “암흑의 심장부”를 추적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반 사람으로서 원전 사고에 대해 행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복잡하게 전문화된 세상에서 기계의 부속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국가 체제의 시스템에 의해서 원활하게 작동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는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사안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볼프의 표현에 의하면 개개인은 “세 개의 W”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세 개의 W”란 “세계 정치, 과학 그리고 경제 Weltpolitik, Wissenschaft und Wirtschaft”를 가리킵니다. (Wolf 81: 182) 그래, 현대인들은 안타깝게도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지구촌을 위하여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등의 직접적 영향을 조금도 행사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몇몇 소수 엘리트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것은 바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였습니다. 이러한 무기력한 상황이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집필을 자극했습니다.
9. 소설의 두 가지 흐름: 일단 『원전 사고』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소설은 내적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일직선적인 줄거리를 도출해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소설 속의 두 가지 분명한 사건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그 하나는 체르노빌의 원전사고 및 이후의 영향이며,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남동생의 뇌수술의 과정입니다. 전자의 사건이 유럽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끔찍한 사건이라면, 후자는 뇌수술로 인하여 자연 과학자가 다시 건강을 되찾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두 사건은 소설 속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소설의 주제를 분명하게 유추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연과학 연구 및 과학 기술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 대한 작가 크리스타 볼프의 경고로 해석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바람직한 학문 연구, 다른 측면의 자연과학 탐구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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