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 볼프의 "원전 사고" (3)

필자 (匹子) 2021. 12. 21. 15:53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원전 사고의 소식과 동생의 뇌수술: 주인공, “나”는 1986년 4월말에 메클렌부르크의 휴양지에서 집으로 귀가하는데, 이때 그미는 어느 맑은 날 아침 갑자기 원전사고에 관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키에프 근처의 체르노빌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작동이 멈추어, 방사능이 유출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매스컴은 독일 사람들로 하여금 물과 음식을 함부로 먹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유의할 것은 채소와 우유를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양의 방사능의 낙진이 들판에 내려앉게 되었는데, 이곳의 풀을 뜯어먹은 소들이 세슘 등이 함유된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전사고의 여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냉각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해서 원자로가 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주인공의 남동생은 뇌수술을 받게 됩니다. 남동생 역시 자연과학자인데, 그의 뇌에는 종양이 자라났습니다. 가급적이면 빨리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동생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그미는 원전 사고와 이로 인한 나쁜 영향은 물론이며, 동생의 수술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고통을 느낍니다. 작품은 체르노빌에서의 원전 사고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현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일부러 잡념을 애써 떠올립니다. 그렇게 해야 체르노빌의 사건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애써 즐거운 마음을 견지하면서, 동생의 수술이 성공리에 끝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11. 자연과학의 일방성과 맹목성: 볼프는 주인공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우리 시대의 유토피아들이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과학, 이 새로운 신이 우리가 바라는 모든 해결책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Wolf: 37) 지금까지 인류는 과연 스스로 괴물처럼 끔찍한 파괴를 위해서 달려온 게 아닌가? 여기서 크리스타 볼프의 비판은 자연과학자의 맹목적 작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연과학자들은 무언가를 개발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것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의 연구는 처음부터 획기적인 계획에 의해서 수립된 것이며, 실용적 가치를 위해서 그리고 발명 특허를 마련하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먼저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자들이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치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쾌감을 쫓듯이, 자연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기술의 발전과 개발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세상 어디에도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을 탐색하는 파우스트의 적극적 탐색의 특징과 같습니다. (김용민: 387).

 

12. 현대판 파우스트의 전형, 자연 과학자에 대한 비판: 작품의 주인공은 현대판 파우스트의 자연과학자의 전형으로서 미국 리버모어 연구소의 젊은 과학자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젊은 과학자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게 아니라, 과학 기술에 매혹되어, 격리된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들은 마치 노예 선에 묶여 있는 흑인 노예들처럼 혹독하게 생활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자연과학자들에게는 가정도 자식도 친구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것만이 자신의 일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대판 파우스트의 전형은 이를테면 리버모어의 과학자인 페터 하겔슈타인입니다. 그는 뢴트겐 광선을 주어진 현실에 이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추진되는 것은 레이저 폭탄 개발의 개발 사업입니다. 크리스타 볼프 역시 페터 하겔슈타인을 은근히 암시합니다. 하겔슈타인은 지식을 추구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노벨상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빵, 버터, 토마토케첩 그리고 콜라를 마시면서 하루 14시간씩 작업을 계속합니다. 오로지 실험과 연구에 매달려 있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죽음에 대한 병적인 불안을 지닌 문화, 남몰래 죽음을 탐닉하는 문화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볼프는 체르노빌 사건을 계기로 과학 기술을 전적으로 부정하게 되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크리스타 볼프는 소설 속에서 그리고 인터뷰 등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발전 또는 부드러운 기술을 강조하는 온건 생태주의”의 관점을 드러냅니다. (김용민: 414) 자연과학의 기술은 그야말로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부엌에 있는 식칼은 요리 도구로 유용하게 쓰이지만, 강도에게는 살해 도구로 활용되지 않습니까?

 

13. 자연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과학 기술의 악영향이 어떠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는 사실입니다. 알프레트 노벨이 광산 개발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제조할 때, 이것이 차제에 대량 학살무기로 사용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 과학자들은 원폭 피해로 인한 질병이 인간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정도로 끔찍한지를 사전에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자연과학 연구는 때로는 유용하지만, 때로는 엄청나게 위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핵분열에 관한 연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핵분열의 작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순식간에 창출해내지만, 결국 핵폭탄을 발명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뢴트겐 광선 연구는 당장 인간의 건강을 위해 활용될 수 있지만, 나중에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하는 도구가 되리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인류는 지하자원을 개발하여 산업을 촉진시켰습니다. 석유와 석탄의 발굴은 결국 생태계를 파괴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인구는 엄청나게 늘었고,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했습니다.

 

물구나무선 먹이 피라미드를 생각해 보십시오. 북극곰의 개체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기후 변화로 인하여 태평양의 섬들은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약 20년 후에는 평화롭던 섬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핵에너지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기후 변화로 인한 해일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문제는 심각하지만, 중국에서는 지금도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착공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