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슈나벨의 "펠젠부르크 섬" (4)

필자 (匹子) 2021. 12. 10. 09:28

(앞에서 이어집니다.)

 

20. 법이 필요 없는 가부장적 가족 공화국: 한마디로 말해서 슈나벨의 『펠젠부르크 섬』은 “가부장적 가족 공화국”으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섬에서 설계된 국가는 동시대의 절대 왕정 체제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이라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오로지 소재의 측면에 있어서 로빈손 크루소 소설의 유형에 편입될 수 있을 뿐입니다. 펠젠부르크 섬의 최고 우두머리는 결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그는 인민들의 동의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추대되는 대표자 내지 섬의 책임자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펠젠부르크 섬이 공화국으로 명명될 수 있는 까닭은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권력을 지닌 제후로서의 최고 우두머리가 나라를 통치하거나 명령하지 말았으면 해요. 그의 권력과 힘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들의 참여를 통해서 축소되어야 합니다.” (Schnabel III 244). 따라서 섬의 권력은 대표적 가부장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게 아니라, 9개의 시의회, 3개의 심의관 그리고 한 개의 비밀 평의회에게 골고루 분산되어 있습니다. 펠젠부르크 섬에서는 법 내지 기본법이 없습니다. “새로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급진적인 미덕의 공화국” (Vosskamp)은 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섬의 주민들은 민주주의의 규칙 외에도 어떤 구성적인 주권의 형태를 발전시키며,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스톨베르크에 위치한 슈나벨의 거주지

 

21. 시민 주체의 개념과 계몽주의: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시민주체의 개념과 계몽주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품 『펠젠부르크 섬』은 시민 주체로서의 알베르투스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문학 유토피아는 특정한 개인을 내세워서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모어 내지 캄파넬라의 유토피아 국가에서는 어떠한 개인도 개별적 존재 가치를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상 사회에서 살아가는 익명의 구성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슈나벨의 작품에서는 개인이 등장하며, 개인의 자유와 “시민 Citoyen”으로서의 주체 의식이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사회의 지배자가 아니라,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개인 주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섬의 대표자는 왕이 아니라, 주민의 합의 하에 추대된 한 사람의 인민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법과 이로 인한 시민 주체 내지는 시토이앙의 정신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노예로 태어나지 않았듯이, 왕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군주에게 저항하는 것은 법에 위촉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권한에 속한다.”라는 알투시우스Althus의 발언을 생각해 보십시오. 작품에서 알베르투스는 왕이 아니라, 시민 주체의 대표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뒤에 언급될 작품 루이 세바스탱 메르시에의 『서기 2440년』에서도 개인 한 사람이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는데, 이 역시 계몽주의의 영향이라고 여겨집니다.

 

22. 작품의 영향: 슈나벨의 작품은 나중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테면 나중에 피히테가 「폐쇄된 상업국가 Der geschlossene Handelsstaat」라는 글을 발표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슈나벨의 문학 유토피아가 좋은 범례로 작용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외부의 영향이나 간섭이 없이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경제 구도를 바람직한 유토피아의 현실로 이해했습니다. 나아가 카를 필립 모리츠 Karl Philipp Mortitz는 소설 『안톤 라이저 Anton Reiser』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작품 『펠젠부르크 섬』을 칭송하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사람들은 슈나벨의 소설을 통속소설의 범주에 포함시킬지 모르지만, 작품은 당시대 사람들의 갈망과 고통 그리고 해원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카를 안드레 Christian Carl André는 1788/ 89년에 소설 『펠젠부르크 Felsenburg』를 집필하였습니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너무 상상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자연 이해와 시민적 교양을 쌓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루드비히 티크 Ludwig Tieck는 나중에 작품의 분량을 4분의 1로 줄였는데, 이로써 종교적이고 주관적 감상을 담은 내용은 현저하게 삭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