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수능 시험 유감

필자 (匹子) 2021. 9. 19. 10:35

당신은 마침내 부전공 교사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교사 생활에 행운이 자리하기를 빌면서 몇 자 남기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미리 말해둘 사항이 있습니다. 즉 나 역시 여전히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시행착오를 겪는 등 스스로 하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슬롯머신의 단판 승부

 

지금은 입시 철입니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K군은 벽을 치며 탄식하고, 어느 여학생은 성적 비관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은 단 한번의 시험으로 일류와 삼류로 나누어진다고, 단 한번의 시험으로 학교와 학과가 선택된다고, 단 한번의 시험으로 자신의 장래가 확정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수능시험은 슬롯머신의 단판 승부 놀이입니다. 수능시험은 인생에 있어서 중대사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수능시험을 잡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거대한 패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남한의 유치원 교육열이 세계 일 위를 다투고, 대학의 교육열은 세계 최하위를 다투는지 아시겠지요? 불안한 학부형들은 유치원 다니는 자식들을 과외 학원에 보내고, 자신의 자식을 아예 해외 유학 보냅니다. 여기서 천문학적 사교육비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을 바꾸지는 못하니까요.

 

2. 목적으로 화한 시험

 

시험이란 누구든 간에 교육 과정 속에서 겪어야 하는 하나의 시련입니다. 시험은 하나의 수단으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시험은 맨 처음에는 교육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시험 결과를 통해서 교사는 자신의 가르침이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 역시 시험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험 결과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평가는 자신의 과거 능력과 자신의 현재 능력을 비교하는 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등을 차지했다고 큰소리치며 자랑하는 자는 어째서 그렇게 초라한 존재로 보일까요? 현재 나의 능력과 현재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비교하는 일은 진정한 평가가 되지 못합니다.

 

3. 틀린 답 고쳐주기

 

시험이란 원래 우등생을 가려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우등생을 가려내는 일은 다수의 열등생을 폐기 처분하겠다는 일과 동일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차제에는 다수의 열등생을 가려내어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늦깎이 학생들이 숨어 있지 않습니까?

 

간단한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정답에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동그라미 수를 센 뒤 점수를 계산합니다. 그들은 시험지 아랫부분에다 “참 잘했어요.”하고 기록합니다. 한국의 교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정답의 수”가 중요합니다. 독일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정답에 아무런 표시를 남기지 않습니다. 대신에 오답을 체크한 뒤에 그 자리에 정답을 일일이 적어줍니다. 우등생의 답안지는 깨끗합니다. 이에 반해 열등생의 답안지는 붉은 글씨가 가득 차 있습니다. 독일의 교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오류 수정”이 중요합니다.

 

4. 오지 선다형의 함정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교사는 붉은 글씨로 수정된 답안지를 돌려주며, “앞으로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그래, 교육 과정이란 독일인들에게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과정”과 같습니다. 따라서 점수 내지는 결과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평가는 다만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모든 평가는 중간 평가입니다. 우리는 죽은 뒤 우리 자신을 최종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슬롯머신 단판 승부는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봅시다. 수능시험의 문제점은 특히 오지 선다형이라는 문제 유형에 있습니다. 출제 위원들은 사지 선다형에 비해 오지 선다형이 학생들의 능력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의기양양해 합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문제는 처음부터 정답이 다섯 가지 유형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정해진 틀에서 답을 고르는 데 익숙한 학생은 무의식적으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마치 미로의 쥐처럼 하나의 정답만 찾으면 족하다고 여깁니다. 이로써 무시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비판력과 창의력입니다.

 

5. 콜럼버스의 달걀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부족한 것은 창의력이며, 협동 능력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오지 선다형의 상대평가에 익숙한 학생 내지 남들보다 더 나은 점수를 받으려고 혈안이 된 학생이 차제에 창의력 그리고 협동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제각기 독일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에게 쉬운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달걀을 수직으로 세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받침대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움직이는 달걀을 세우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프랑스사람은 뾰족한 달걀 부위에 구멍을 뚫고, 노른자위와 흰자위를 마신 뒤에 그것을 탁자 위에 세웠습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신선한 발상은 기존하는 오지 선다형 방식으로는 출현할 수 없습니다.

 

6. 교육 제도와 사회 보장 제도

 

진정한 교육은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데에서 진척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칭찬하는 일을 반복할 게 아니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오류 내지 결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사회는 열등생들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 보장 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서는 입시 문제 해결은 공염불입니다. 나중에 공부 못해도 최소한 먹고 살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학부형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밤 12시까지 어린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공부 못해도 최소한의 직업 선택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면, 그들은 30만이나 되는 젊은이들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 제도의 승패는 열등생의 이후 삶을 고려하는 사회 보장 제도 내지 실업 교육 등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