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방랑 대신 칩거를, 여행 대신 독서를

필자 (匹子) 2021. 9. 5. 11:44

 1.

친애하는 P, 당신의 편지를 잘 읽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청송 교도소에서 살아가고 계시는군요. 그래도 틈틈이 책을 읽고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는 당신의 태도는 무척 갸륵하게 여겨집니다.

 

2.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 입니다.

 

3.

답답하시겠지만, 책을 읽으십시오, 책 속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젊은이는 광대무변한 그 가상적 웅대함에 찬탄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4.

밖에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해외여행은 자국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다른 세계를 멍하니 바라보고 돌아온다고 해서 무슨 커다란 가치가 있습니까? 물론 해외여행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게 하고,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닫게 해줍니다.

 

5.

그렇지만 당신에게는 여행보다 독서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6.

첫 번째 이유: 독서가 책 읽지 않는 여행보다 백배의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나중에 여행을 떠나면 당신은 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7.

두 번째 이유: 대부분 젊은이들은 책을 멀리하며, 스마트 폰을 선호합니다.

 

8.

세 번째 이유: 돈 드는 여행보다, 돈 안 드는 독서가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입니다.

 

 

"나의 눈앞에 창살이 있다면, 그것은 허상일 것이다." (토마소 캄파넬라) 참고로 말하자면 캄파넬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 27년동안 (1600년부터 1627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가 한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나는 한편으로는 한 도시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도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셈이다.

 

9.

갇혀 있는 시간 동안 인간은 깊이 숙고할 수 있습니다.

 

10.

감방에서 변기통을 닦아본 사람은 압니다. 인간의 눈이 자신을 현혹시킨다는 사실을.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상황 그리고 자신의 갈망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11.

여행기는 그 자체 완전무결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해당 국가의 범죄 소설을 한 권 읽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그 나라에 관해서 수많은 사항을 알게 될 것입니다.

 

12.

사람들은 대체로 해당 국가에 잠시 머문 경험을 토대로 여행기를 씁니다. 특정 나라에 십년 이상 머문 사람들은 여행기를 쓰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욕구가 발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당 국가에서의 경험들은 그 사람의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경우 “체득”했다는 말이 타당하겠지요. 가득 찬 수레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13.

독서를 통해 상상해낸 세계는 여행을 통해 바라본 세계보다도 더 휘황찬란하고 광대무변합니다. 친애하는 P, 눈 감으면, 사랑하는 임이 떠오르듯이, 독서하면, 찬란한 만화경 속에 담긴 갈망의 세계가 눈앞에 전개됩니다.

 

14.

책의 세계와 조우하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요? 책 읽는 사람의 뇌리에는 상상 속의 우주라는 갖가지 모습들이 꿈틀거리고 있으니까요.

 

15.

친애하는 P, 당신은 갇혀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시간적으로 약간의 자유를 누릴 수 없을 뿐입니다. 돈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자는 바로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자 아닙니까?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몰고 만주로 중국으로 달릴 수 없다면 나는 남한이라는 섬나라에서 갇혀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까? 그렇지만 언젠가는 우리 경제적 고통 없이, 정치적 차단 없이 살아갈 나날이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 백두산으로 차를 몰로 떠날 날이 오겠지요. 당신도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16. 다음은 졸업생인 제자가 전해준, 유하의 시집 천일 마화에 실린 "내 마음의 루브르"라는 시입니다.

 

미로의 박물관을 헤매며 생각한다.

불란서 놈들 남의 나라 유물들 가져다

장사 한번 잘 하는구나

나도 쓸 만한 시의 유물 구하러 천지를 떠돌았으나

얻은 건 단 하나의 깨달음

내 방만큼 거대한 박물관은 없어라

새는 깃털을 남기고 나무는 잎새를 남긴다

인간의 유물이란 기껏

이데아가 찍은 그림자 놀이

자기 방의 창문으로 세상을 관음하는 자여

그대 무엇을 보았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