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bloch 대화

블로흐: 고향이란?

필자 (匹子) 2021. 10. 23. 11:51

: 그런데 고향의 개념은 당신의 철학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지방 내지 지역이라는 단어는 한편으로는 주어진 토양에 입각한 고향을 가리키는 지리적인 장소라는 느낌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지역과 지방은 한편으로는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 그리고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속물들을 떠올리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놀라운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에서는 도저히 발견하기 힘든 특징이 아닐까요?

 

: 고향은 나름대로 어떤 철학적 측면 내지 자신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독일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 선사가 언급한 바 있는 “자신의 집에 머문다.”는 안온함 내지 포근함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만 고향은 다른 아주 속물적인 의미로 이해되곤 합니다. 가령 우리는 끔찍할 정도의 사악한 고루함이라든가 이로써 강조되는 피와 토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나치들에게서 통상적으로 느낄 수 있지요.

 

그런데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고향은 소외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철학자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객체들이 더 이상 어떤 낯선 무엇과 결합되어 있지 않는 상태를 생각해 보세요. 객체가 마치 주체처럼 우리에게 그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상태 속에서 우리는 -헤겔에 의하면- 고향에 머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집에 머문다는 카테고리는 단어 자체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 자체 철학적이고도 신비주의적인어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신비주의 (Mystik)를 기술할 때 우리가 “i” 대신에 “y”를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도 우리는 어떤 의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망명 문학을 전공하는 누군가가 고향의 개념에서 고향의 개념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유토피아의 특성을 간과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독일인이 자신이 살았던 지역을 애타게 갈구하고 그리워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실제로 독일 망명 문학의 영역에서는 고향이라는 단어는 아주 자주 출현합니다. 가령 해외에 머물고 있는 누군가는 베를린의 쿠담, 혹은 소도시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지요. 고향은 그런 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정서는 속물근성을 부추길 뿐, 결코 외부로 영향을 끼치게 될 혁명의 내적 의향으로 발전되지 못합니다. 소외를 극복하게 하고, 스스로 갈구하는 최적의 장소를 찾으려는 동력은 고향에 대한 향수와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자본주의 국가, 한국에서 고향 (Heimat)은 하이마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