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어집니다.)
너: 그렇다면 시인은 어떠한 이유에서 땅과 두루미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나요? 이 질문은 시적 주제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만......
나: 작품의 주제는 미리 말씀드리건대 첫째로 전기적 측면에서, 둘째로 사회적 측면에서 그리고 셋째로 생태적 측면에서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시인은 두루미와 땅의 만남을 통해서 두 가지 사항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상부지향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떨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끝내는 일입니다.
너: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지요?
나: 그러지요. 물론 우리는 장석 시인이 작품 「두루미에게」를 언제 완성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시인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노동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내 궁리와 내 땅심과 내 영혼으로” “마지막 싹 한 개를 틔우고 싶“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인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작정 부와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임을 은근히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싹 한 개“라는 시구가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너: 알겠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사회적 측면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지요?
나: 시인은 사회적 차원에서 부와 풍요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두루미는 과거와는 달리 “습지도 퍽 말랐”으며, “낙곡도 시원찮고 풀씨도 드물어/ 미꾸리도 찾기 어렵”다고 말을 건넵니다. 이때 땅은 두루미의 말에 동의합니다. 과거의 풍요로움은 “기름지지만 유한한 젊음”에 가능했으며, “남의 땀”의 대가로 이룩된 것이었습니다.
너: 부유한 삶은 개인 혼자의 노력으로 이룩되지 않는다는 말 같이 들립니다. 시인은 더 많은 수확, 더 많은 결실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같은데요?
나: 그렇습니다. 부유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은 그에게는 “기름지지만 유한한 젊음”의 갈망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을 이용해야 얻을 수 있는 대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땅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대변하는 시적 자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너: 인간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자연을 피폐하게 만들고, 날짐승의 터전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나: 더 많은 부와 재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인간은 땅을 헤집고, 강물을 낭비하며, 갯벌을 망가뜨린 셈이지요.
너: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우리는 풍요를 거두면서/ 불모를 소리쳐 부르네”라는 시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 그런가요? 당신의 질문은 세 번째 생태적 측면에서의 주제와 관련됩니다. 인간들은 풍요를 거두면서, 불모를 외치고 있습니다, 시구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두루미와 “나”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더욱이 이 시구가 하나의 연으로 끊어져 있음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해석을 유추하게 만듭니다.
너: 어쩌면 시인은 불교의 시각에서 헛된 욕망을 지적하는 게 아닐까요? 성주괴공 (成住壞空)이며 생주이멸 (生住異滅)이라고, 모든 것은 생겨나고, 유지되며, 무너지며 사라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 멋진 지적이로군요. 시적 자아인 땅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가장 양지바른 쪽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마지막 싹 한 개”일지 모릅니다. 마치 두루미가 커다란 날갯짓을 하면서 일순간 사랑을 표현하듯이, 땅 역시 자신의 미래를 하나의 싹으로 남기려고 하지요. 여기서 싹은 “씨앗으로서의 로고스 logos spermaticos”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씨앗으로서의 로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성의 싹이고,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영혼의 섬광 내지 영혼과 이성이 깃든 존재이며, 유대교에 의하면 유일신의 영원한 사고이고, 기독교에 의하면 신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어쨌든 두루미의 날갯짓 그리고 싹 틔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너: 그것은 유한한 순간의 삶에 느낄 수 있는 가치와 희열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나: 그렇게 이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싹 그리고 두루미의 학 날개 춤 그것은 분명히 유한한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순간적 사랑 그리고 기쁨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너: 말씀 감사합니다.
가을이 걸어온 길이 아스라하다
드러누워 있는 내 가슴팍을
이리저리 헤집고 걷던 그가 말한다
자네 가을걷이가 가멸치 못했는가
논자리도 줄고 습지도 퍽 말랐네
낙곡도 시원찮고 풀씨도 드물어
미꾸리도 찾기 어렵고
정수리 붉은 선비여
멀리 다시 찾아준 손님이여
나는 한때 가슴 한쪽만 해도
열 섬이 넘는 황금 벼이삭을 내었지
늘 물이 이마까지 찰랑거리고
이어 펼쳐진 갯벌에는
망둥어랑 게랑 끊임없는 소로를 짓고
그러나 그건 기름지지만 유한한 젊음에
그리고 남의 일에 기댄 일이었어
우리는 풍요를 거두면서
불모를 소리쳐 부르네
오는 봄 신이 나를 갈아엎어버리기 전에
땅이 풀리고 볕이 발그레할 때
가장 양지바른 쪽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마지막 싹 한 개를 틔우고 싶네
내 궁리와 내 땅심과 내 영혼으로
검은 깃을 단 흰 옷 처림의 그대여
뚜루루루
한바탕 춤을 추고 떠나가주오
(장석: 「두루미에게」, 시집 『우리 별의 봄』 강, 122 -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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