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아프가니스탄, 너도 불쌍한 도마뱀인가? (1)

필자 (匹子) 2021. 8. 18. 11:44

 

 

아래의 글은 2014년에 집필된 것인데,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서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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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애하는 J, 사람들은 항상 눈앞의 사소한 이득에 혈안이 되어 멀리 떨어진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세상의 먼 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문제를 아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 역시 그러합니다. 가까이 머무는 지인들에게 신경을 쓰다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진정한 친구들을 소홀히 하니까요. 이는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도 관계됩니다. 가령 우리는 한국인들의 삶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일 뿐, 다른 민족 다른 세계의 역사에 관해서 외면하곤 합니다. 특히 강대국에 속하지 않는 제 3세계의 인민들에 관해서 우리는 잘 모릅니다. 주위에 외국인들이 외국인 노동자로 그리고 국제결혼 등으로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주입시키려고 할 뿐그들 고유의 문화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2.

친애하는 J, 나는 이 자리를 빌어서 아프가니스탄의 나라에 관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비록 숲은 별로 없지만, 관목이 많고, 어디서든 간에 풀이 빼곡히 자라서 수많은 양떼들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나라였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자잘한 분쟁은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대체로 여러 인종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라였지요. 그때만 하더라도 온 나라가 포화로 인해서 불모지로 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무들이 거의 없고, 국경 지역에만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1839년부터 산산조각이 납니다.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은 무력을 사용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려고 몇 차례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외세를 거부하던 아프가니스탄의 독립군에 의해서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는 험준한 지형, 인도와의 지리적인 거리감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독립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의 교활한 식민주의자들은 1878년부터 인도 군인들로 하여금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했습니다.

 

 

 

 

 

 

아름다운 나라 아프가니스탄 - 그러나 이 땅은 포탄으로 황무지로 변했다. 

 

3.

그리하여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무려 40년 동안 사람들은 이곳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웠습니다. 영국인들은 배후에서 전쟁을 조종하면서, 이른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결국 1919년에 지긋지긋한 전쟁은 종언을 고하고, 아프가니스탄은 마침내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 전쟁으로 인하여 마치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파키스탄을 독립시켜주고 말았습니다. 친애하는 J, 20세기의 역사는 약소국가가 자신의 이권을 강대국에게 이전해주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자그마한 도마뱀이 주위의 사나운 악어들에게 자신의 꼬리를 헌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탈레반 세력들과 아프가니스탄의 정규군 사이의 내전의 상황 역시 강대국의 장기판의 형국 내지 약소국의 영토 상실의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와 유럽을 동서로 가르며, 러시아와 중동을 남북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전략적으로 무척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이권을 둘러싼 싸움을 통해서 희생당하는 자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민초들이지요.

 

4.

친애하는 J, 자국의 안위를 위해서 제 3국의 도움을 청하는 나라는 반드시 제 3국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제 3국은 항상 특정한 나라를 막무가내로 도와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임오군란 그리고 갑신정변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외세의 힘을 빌려,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는 반드시 외세에 이용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영국과 인도 연합군과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과정에서 소련에게 물질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소비에트 공화국을 탄생시킨 직후였고, 자국 내에서도 내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소극적으로 물자를 지원해주면서, 호시탐탐 침공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소련의 입장으로서는 무엇보다도 부동항을 필요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련의 땅은 너무나 광활하나, 경제적으로 유용한 땅이 많지 않았습니다. 가령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소련에는 거의 없었지요. 1867년에 러시아는 재정적인 이유로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으로 팔아치웠는데, 먼 훗날 소련 혁명가들은 땅을 치면서 두고두고 후회하였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남쪽으로 진군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1918년부터 1973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은 왕정 그리고 공화정 체제를 여러 차례 바꾸곤 하였습니다. 이 사이에 독일을 둘러싼 세계대전 그리고 이스라엘 독립과 이로 인한 중동의 갈등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했을 뿐, 아프가니스탄의 정세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그리고 전쟁의 아비규환은 1978년부터 본격화됩니다. 친애하는 J, 자고로 특정한 타국 그리고 그 타국의 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를 베푸는 자는 반드시 그 타국과 타국 문화에 의해서 피해당하기 마련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역시 소련에 너무 의존하다가 소련에 의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른바 나시불라 정부는 지나친 친소주의 정책을 취하다가, 결국 고양이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1979년 12월 소련군은 탱크를 몰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이에 대해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파키스탄 등은 수도 카불으로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또한 이슬람의 무장 게릴라에 속하는 무자히딘의 세력은 미국의 박격포 원조를 받아서 소련 군인들에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6.

친애하는 J, 소련이 멸망한 뒤에 무자히딘 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미국의 도움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세상의 모든 죄악이 미국에서 비롯한다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미국 내의 돈 많은 유대인들임을 깨닫게 된 다음에, 미국이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다음부터, 그들의 반미주의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무자히딘들은 급진적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무장 단체인 탈레반 속으로 편입됩니다. 이들은 국제적 테러리스트 단체인 알 카에다 조직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빈 라덴 역시 현재 이들 속에 은신해 있다고 합니다. (2011년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에 파키스탄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추기) 문제는 1995년에 탈레반 세력이 파키스탄에서 비밀리에 군사력을 키워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내전을 일으킨 데 있습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내전의 화염 속에 뒤덮였습니다. 2001년의 시점에 탈레반 세력은 국토의 90퍼센트를 장악하였습니다. 급진적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 세력은 음악, 스포츠, TV 시청, 사진 촬영 등을 금지시켰습니다. 모든 학교와 대학이 폐쇄되었습니다. 그들의 급진적 태도는 과거 터키의 술탄이먹물들은 필요 없다.고 말하며 주위의 책사들을 모조리 물리친 경우보다도 더 완강하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탈레반의 권력자는 모든 남자들이 수염을 길러야 하며, 여자들이 외출 시에 반드시 얼굴을 가릴 것을 강요했습니다.

 

 

7.

친애하는 J, 탈레반 세력들의 종교적 정치적 횡포는 그야말로 극에 달할 정도입니다. 수많은 문화재들이 탈레반 세력들에 의해서 마구잡이로 파괴되었습니다. 가령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있는 불교 간다라 유적들은 마구잡이로 잿더미로 화했습니다. 예컨대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 유적지로 채택된 바미안의 석가 상은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폭파되었습니다. 친애하는 J, 나는 탈레반의 테러 행위를 결코 용인하지 않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나쁜 일입니다. 알라 역시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탈레반 세력들을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예컨대 이스라엘의 폭격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부모와 형제들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눈앞에서 가족들의 피로 얼룩진 시신들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잃은 그들에게 문화재를 보호하라는 말은 어쩌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허튼 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인질로 삼는 짓거리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목표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비열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지요. 탈레반 사람들은 기독교인 유대인들을 모조리 적으로 간주합니다.

 

8.

분당의 어느 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잡힌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탈레반 세력들의 노여움 그리고 죽음도 불사하는 그들의 극단적 특성을 미리 알았더라면, 죽음의 이슬람 지역에 선교 활동을 하지 말아야 옳았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무지보다는 한국의 정치가들의 직무유기에 있습니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의 정황은 이라크보다도 더 심각합니다. 한국 외교부는 인질극이 발생한 뒤에야 비로소 그곳을 여행 금지 구역으로 정했습니다. 이러한 처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정부는 차제에 이라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군인들을 하루 속히 철수하도록 조처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J, 앞으로 우리는 정치가들의 거짓말에 절대로 현혹되지 맙시다. 국익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에 우리가 얼마나 오래 속아야 합니까? 가난하더라도 정직하게 사는 게 바른 길입니다. 공병이든 위생병이든 간에 우리 군대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대가로 미국이 우리에게 떡고물을 하사한답디까? 설령 하사한다고 하더라도 백의민족인 우리가 피로 얼룩진 떡을 아귀아귀 입안으로 넣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