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4.
이정주는 『현대시학』 2007년도 7월호에 최근작들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시인은 중의적 표현 기법 내지 복합적인 장면 배열 등을 지양하고, 어떤 사소하지만, 생략될 수 없는 관점을 집요하게 투시한다. 가령 「러브레터」에서 시인은 어느 노동자의 일상을 마치 카메라의 렌즈 속처럼 들여다본다. 인간의 존재는 과학 기술에 의해서 장악되고, 인간이 행하던 모든 일은 이제 기계에 의해서 영위될 뿐이다.
최근작에서 시인은 유연한 시각을 견지하고, 약간의 체념적인 톤을 드러내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예술적으로 포착하려는 의지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최근작 10편 가운데 「물가로 갈 것인가 도서관으로 갈 것인가」를 가장 관심 있게 읽었다. 물가에서 “숭어”와 “새”가 죽임의 두려움에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정작 “세상 소식은 정기 간행물 코너에 가지런히 꽂혀 있을” 뿐이다. 시인은 문자의 세계가 지니는 한계성을 지적하고, 죽음으로부터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의 냉혹함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5.
마지막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시 한 편을 언급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매월당. 2」이다.
“살아남아 눈에 먹물 들고 먹물 든 눈에도 보인다. 불이 보인다. 오리나무 숲 가는 길가 연기 매운 자작나무 자작나무 기침소리. 기침소리에 눈 따가운 저녁구름. 구름 벗어나와도 눈물 흐르는 금오산.
살아남아 내 눈에도 눈물 흐르고, 눈물 속에서도 보인다. 불이 보인다. 자작나무 천천히 불 속으로 들어선다. 온 산이 불 속으로 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불을 털며 금오산 멧새떼 날아오른다.” (전문)
작품은 놀랍게도 세 가지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측면, 종교적 측면 그리고 사랑의 측면을 가리킨다. 첫째로 시인이 금오산을 찾았을 때, 이조시대의 선비 한 사람이 뇌리에 떠오른다. 세조의 폭거에 항거하다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금오산에서 살던 매월당, 김시습이 바로 그 선비이다. 시인이 매월당의 삶을 훔쳐본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삶은 바로 지옥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못하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자는 예나 지금에나 감옥에 갇히거나 초야에서 은자로 살아야 한다.
둘째로 시는 인간의 “눈물”과 “불”을 다루고 있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로서의 불은 마치 묵시록의 분위기를 유추하기에 충분하다. “온 산이 불속으로 들어간다.”는 시구는 세계가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셋째로 이 작품은 연애시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금오신화』 가운데 한 작품인 「이생규장전」을 생각해 보라. 홍건적의 난 당시에 사망한 임에 대한 그리움은 주인공의 눈앞을 캄캄하게 만든다. “살아남아 눈에 먹물 들고 먹물 든 눈에도” 보이는 것은 떠나간 임일 수도 있다. 이생의 사랑은 임의 혼백을 실제 인물로 착각할 만큼 강렬하다.
6.
그래, 주어진 삶이 만족스럽다면, 어떤 다른 삶도 유추되지 않으리라. 야인 (野人), 이정주 역시 과연 그렇게 믿고 있을까? 제반 정서들을 다의적으로 표현하고, 삶의 다양한 상황을 복합적으로 구성해 온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분명한 것은 다음의 사항이다. 즉 이정주 문학의 가치는 난해성과 대중성 결핍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시인이 차제에 어떠한 방식으로 그러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는 오로지 자신의 예술 탁마의 정신과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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