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 볼프의 '육체에 합당하게' (2)

필자 (匹子) 2021. 6. 14. 09:30

친애하는 C,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위기는 오래 전의 대학 친구이자 당의 동지인 하네스 우르반이라는 남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르반은 주인공이 병원에 이송되기 직전에 흔적 없이 잠행을 떠납니다. 나중에 주인공이 몇 주 동안 병으로 고생하다가 서서히 차도를 보일 무렵, 사람들은 어디선가 우르반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검결과 목을 매고 자살한 게 틀림없었습니다. 우르반의 부음 소식을 접한 주인공은 열병의 몽환 속에서 그와 함께 지내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반추합니다. 

 

원래 두 사람은 사회 정치적인 공동 작업을 통해서 동일한 이상과 목표를 추구해 왔습니다. 두 사람의 작업이 당의 경직된 질서로 인하여 더 이상 진척될 수 없었을 때, 우르반은 당에 충성하였지만, 주인공은 당의 규율에 무조건적으로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은 제각기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지요. 우르반의 굴종 내지 굴복은 주인공의 마음속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남기게 됩니다. 행여나 자신 또한 우르반처럼 이율배반의 심리적 쇼크에 시달리게 될까 노심초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쨌든 당에 대한 우르반의 굴종 행위는 그의 마음속에 소외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우르반의 영혼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주인공은 열병의 몽환 속에서 이러한 과거와 수미일관 투쟁해나갑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말해서 열병이야 말로 자신의 내면세계로 향하게 하는 열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상상의 방식을 통하여 내면세계 내지 지하의 세계로 침잠합니다. 여기서 지칭하는 지하의 세계는 땅 아래로 향하는 모든 통로에 대한 은유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지하세계로 안내하는 사람은 바로 코라 바흐만입니다. 코라 바흐만은 소설 전편에 걸쳐 다루고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신화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유추하게 하는 여인입니다. “코라”는 페르세포네의 다른 이름으로서, 결실의 여신, 데메터의 딸입니다. 

 

신화에 의하면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데메터 여신은 매년 약 9개월 동안 그미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지구를 완전히 메마른 황야로 뒤엎어놓겠다고 경고합니다. 요약하건대 크리스타 볼프는 이러한 신화와 관련되는 죽음에 관한 문학적 표현을 재구성하면서, 주인공 역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은 결코 끔찍한 무엇으로서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품에서 죽음은 삶으로부터의 도피이며, 삶으로부터의 은신처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죽음은 삶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 새롭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잉게보르그 바흐만 역시 죽음의 유형 연작시에서 죽음의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집요하게 추적한 바 있습니다.

 

소설의 처음에 주인공은 오로지 혼자서 육체의 고통 그리고 과거의 고통스런 시간과 싸워나갑니다. 그미는 처음으로 자신이 죽음에 근친해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때 주인공의 나이는 삼십대 중반이었습니다. 당시에 주인공은 열성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때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장의 이상 증세가 처음으로 발발하게 됩니다. 그미는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혹시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일에 매달리지 않게 하려고 모든 것을 사보타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르반은 주인공의 병에 대해서 동정을 표현한 바 있는데,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당시로서는 결코 거짓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르반의 태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표리부동하게 변해갑니다.

 

볼프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늙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탄식을 터뜨립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서 주인공과 이별하려고 합니다. 순진무구함을 상실할 때 동반되어 나타나는 것은 특정한 사실에 대해 행여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의 감정입니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곰곰이 성찰해봅니다. 당을 위하여 더 이상 공동으로 일하려 하지 않은 자신의 비판적 태도가 올바른 것이었을까?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어떤 다른 길이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주인공은 어느 대목에서 “잠적한 뒤부터 우르반은 내게서 피난처 하나를 발견하려 하였지.”하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주인공은 올바르게 행동할 기회를 상실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를 기억한다는 것은 친구의 상실만큼이나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이를테면 아무런 악의 없이 내뱉은 주치의의 발언은 당분과 위원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곳에서 발언권을 지닌 사람은 한결같이 분과 위원회의 대표였습니다. 가끔 우르반이 발언하기도 했지만, 그미는 다행히 한 번도 자신의 견해를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우르반은 내적인 모순을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결정권을 완강하게 활용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자신에게도 약간의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까다로운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의 권한이 미약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자위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라도 나름대로 영향을 끼치지 않은 데 대해 몹시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