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미라보 백작 (2)

필자 (匹子) 2020. 10. 13. 11:21

하인의 신분에서 주인의 신분으로 비약하여, 가난을 일거에 떨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이러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드문 특수한 형태일 것이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등장하는, 솥 수선공 크리스토프 슬리가 바로 이러한 유형의 인물에 해당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1594)는 셰익스피어의 2막 희극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인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부자 밥티스타의 두 딸, 카타리나와 비엔카 그리고 어느 미망인 여인이 그들이다. 카타리나는 난폭하여 어떤 남자도 청혼하지 않는데, 페트루치오는 그미를 일단 자신이 고안한 훈련을 통해서 카타리나를 길들인다. 나중에 세 신부 가운데 신랑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여자는 카타리나로 밝혀진다.

 

본문에 나오는 주변인물, 가난한 솥 수선공, 슬리는 술에서 깨어나, 자신이 마치 성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 거만하게 행동한다. 슬리는 자신의 변화된 자아가 더 이상 자신의 고유한 인성과 다르기 때문에 파멸을 맞이한다. 그런데 크리스토프 슬리가 심리적으로 파괴되는 까닭은 다른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거의 노예처럼 생활하던 가난한 인간이 일순간 어떤 완전히 다른 유형으로 돌변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세계의 생활 방식을 접하게 된 슬리는 순식간에 천박한 향락 그리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권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 잠자던 폭군의 기질은 마치 용암처럼 순식간에 밖으로 분출되었던 것이다. 아무런 의지 없이 낙천적으로 살던 사내는 노력가 그리고 졸부보다도 훨씬 강렬하게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일감에 관여한다. 크리스토프 슬리는 한마디로 어느 결정적 순간에 사기꾼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력가가 아니라, 부유하기 이를 데 없는 “대지주Seigneur”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슬로는 자기 자신이 “법”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흔히 어린이들은 자신이 마치 비밀스러운 왕자가 되는 놀라운 꿈을 꾸곤 한다. 빌헬름 하우프의 거짓 왕자에 관한 동화를 생각해 보라. 재단사가 되려는 견습공들 가운데에도 백일몽에 침잠하는 젊은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라바칸”인데, 경직된 눈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다. 자신이 찬란한 왕자로 투영되는 것이었다. 재단사 장인과 조수들은 그의 멍 때리는 상태를 포착할 때마다 조소하며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린다. “라바칸은 다시금 엄청나게 고상한 표정을 짓고 있네.” 이때 라바칸은 자신의 게으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이 자발적으로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다. 동료들은 그의 결코 가라앉힐 수 없는 갈망을 추호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바보스럽고 엉뚱한 행동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물론 라바칸이 술탄의 아들, 즉 왕자로 행세하고 싶은 욕구는 한마디로 낮은 계층을 억압하고, 높은 계층에게 굴복하는 관료들의 작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졸부라든가, 주인을 받들어 모시는 하인의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커다란 배반의 감정이 숨어 있을까? 물론 관료주의는 그 자체 칭송받을 수 없으며, 아랫사람들에게 쉽사리 설득당하는 대지주는 계급의식을 견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라바칸의 동화에서는 주인공이 자신과는 상반되는 유형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는 인간형이다. 가령 주어진 사회의 토대, 다시 말해 주어진 제반 인습에서 벗어나려는 카사노바 그리고 칼리오스트로 백작 등과 같은 사기꾼들을 생각해 보라.

 

이들에 비하면 자의에 의해 다른 인간형으로 변하는 자들도 있다. 가령 사기술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선동하려고 한 지식인 가운데에는 라살Lassalle도 있다. 그가 사용했던 것은 관료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동화의 방식이었다. 라살이 자신의 거창한 이름과는 정반대로 거짓되게 행동하면서, 혁명적 토대 속에서 찬란하게 갈구하던 것은 바로 신비롭고 찬란한 미래였다. 말하자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는 -마치 돈키호테가 그렇게 행동했듯이- 결국에 이르러 동화 속의 내용을 실현시키려고 헛되이 노력했던 것이다.

 

그건 특별한 경우이지요, 하고 남자는 말했다. 기상천외한 사기꾼의 탈을 쓴 것 같아요. 동화의 유형이 아니라면 싸구려 신문 기사일 수도 있고요. 이때 사내의 마음은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남자에 대한 혼란스러운 추측이 잘못일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남자는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꿈속의 백작 내지 작은 돈키호테라고 명명될지 모른다.

 

실제로 남자는 이를테면 에밀 비첼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34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동부 독일지역인 작센안할트에 위치한 “헬브라”라는 지역에서 기계 조립공으로 살았다고 했다. 언젠가 탄광에서 일했는데, 사고로 당해서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남자는 마치 자신의 비밀이 탄로난 것처럼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장애인을 돌보는 일도 조금 행한 적이 있어요. 사내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나는 레세토 리케티 미라보 백작 그리고 마게리트 느 드 라세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랍니다. 백작의 이름은 정확히 말하자면 리케티 폴 미라보라고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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