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미라보 백작 (1)

필자 (匹子) 2020. 10. 13. 11:19

유복하게 생활하는 한 사내는 어느 날 비참할 정도로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떤 상념이 사내의 뇌리를 스쳤다. 그의 걸음걸이는 자신의 걸음과 비슷하며, 어깨가 흔들리는 모습 또한 자신의 것과 유사했다. 심지어 얼굴의 생김새도 거의 동일했다. 이순간 사내는 어떤 착각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나의 육체이며, 나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 어떤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삶이 꼬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마치 내 동생처럼 편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황당한 사건은 주어지지 않았다. 우연히 주위에서 피리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남자는 몸을 비비꼬며 춤춘 적도 없었다. 불쌍한 그 남자는 -흔히 선한 사람들이 말대로 오로지 인간적으로 고찰할 때- 흥청망청 돈을 낭비하는 유형의 인간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남자는 어째서 사내의 눈에 낯설게 비쳤을까? 다만 삶의 우연한 분수령이 그를 가난의 나락으로 빠뜨린 게 아닐까? 남자는 처음부터 낯선 존재였을까, 아니면 살의 어떤 분수령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사내는 이에 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설령 찰스 디킨스의 애독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무작정 찬탄을 터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에너지”를 다 바쳐 인생을 마냥 긍정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불행한 유년 그리고 이후의 성공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게 한 권의 책으로 출현한다. 평범한 인간이 거리를 지나칠 때, 우리는 그자의 외모에서 “출신”이라든가 “배경”을 감지하곤 한다. 그렇지만 사내는 규범에서 벗어난 한 남자로부터 강렬한 느낌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며, 기상천외한 놀라움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한 인간의 본질에 관해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거울 하나를 생각해 보라. 남자의 외모 그리고 남자의 정체성은 완전히 별개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서로 정반대되는 것도 아니다.

 

남자에게서 어떤 또 다른 “도플갱어”의 면모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상과 정체성은 한 번도 하나의 복합체로 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어떤 속임수로 행운을 차지하려는corriger la fortune” 사기꾼에 관한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사기꾼은 자신의 술수를 끝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특히 자신을 더 이상 속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이르러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의 사항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즉 전대미문의 행운의 기회가 자신에게 일순간 찾아왔지만, 적어도 이 순간은 흔히 접하는 평범한 나쁜 운보다도 더욱 기이한 설렘을 안겨주었다는 사항 말이다. 이러한 기회를 저버리느니, 나중에 끔찍한 형벌을 감내하더라도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사기꾼은 이러한 순간적 희열 때문에 매일매일 자신의 꿈을 정복하려고 한다고 했다.

 

사내는 남자와 가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남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든 간에 더 많은 소시지를 차지하는 꿈을 꾸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그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꿈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좋은 기회를 맞이하여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면, 최근에 사들인 자신의 집을 증축하기도 한다. 열심히 활동하는 노력가는 어지러운 시기에, 특히 과거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에 사회적으로 더욱 깊숙이 개입한다. 남자의 고유한 꿈은 자신의 에너지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이곳저곳에서 거주하고 싶어 했다. 오늘날 이러한 유형은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곤 한다. 그렇지만 노력가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유형 그리고 오래된 세상 등의 모든 것을 변모시키지 못한다. 그는 오래 지속되는 권력 구도 내에서 이른바 “졸부Parvenu”보다도 더 나쁜 자리를 차지한다. 노력가는 자신의 본성이 아니라, 다만 강렬한 의지로써 자신의 출신을 약간 뛰어넘을 수는 있다. 그렇기에 작은 도전과 비약을 통해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여 스스로를 발전시키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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