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버스 안에서 스친 사랑

필자 (匹子) 2020. 11. 17. 09:49

친구는 파리의 공항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는 플라스 드로페라 가(街)에서 파르크 몬소리 가(街)까지 운행하는데, 그의 앞에는 여자가 앉아 있다. 친구는 여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연한 하늘색 눈을 지닌 여자는 친구와 지인 사이의 대화를 조용히 엿듣고 있다. 어쩌면 대화의 내용에 주의하지 않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미의 눈은 꼼짝하지 않은 채 친구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녀는 내심 아무 것도 갈구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미의 둥근 눈동자는 마치 별처럼 고적하게 깜박거리며 남자를 향하고 있다. 이때 남자는 냉담한 태도를 취한다. 그미가 행여나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를 감당하지 못할 거야. 대부분 남자들은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낼 때 어쩔 줄 모른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일단 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일지 모른다.

 

어쩌면 다음과 같은 기지를 발휘하여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남자는 일단 항공권을 아래로 떨어뜨린 다음에, 바닥에서 그것을 집어 든다. 이때 그의 손이 여자의 무릎을 가볍게 스치게 한다. 이러한 스침은 가벼워야 하고, 약간 어설픈 동작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여자가 가벼운 스침을 하나의 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버스의 좌석이 비좁기 때문에, 굳이 스침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유가 거론될 필요는 없을 거야.

 

여자는 순식간에 움칫거리며 피한다. 나중에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남자는 버스에서 자신이 마치 키르케고르가 느낀 바 있었던 이타주의의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이를테면 자신이 어떤 거친 마초, 혹은 천박한 사내로부터 여자를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상상했는데, 이렇게 상상에 스스로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이다. 동시에 그는 여자의 구애로 인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윽고 차가 멈추었다. 여자는 순간적으로 별과 같은 눈동자로 크게 응시하였다. 그미의 갈구하는 눈빛은 결코 사멸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가 지인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동안, 여자는 어떤 기이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을 계속 주시했다. 다시 버스는 예정된 방향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애써 버스의 붉은 정지등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여자에 관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고, 편안한 태도를 취하려 했다. 그들이 착석한 곳은 커피숍의 한 가운데 좌석이었다. 아니면 친구들의 비밀 모임일 수 있으며, 가을의 어느 살롱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어떤 놀라운 감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화약이 순간적으로 가슴속에서 폭발했던 것이었다. 버스 안에서 다소곳이 앉아있던 여자는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갔고, 남자는 애절하게도 자신의 연인을 놓치고 말았다. 마음속에서는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남자는 모든 상상력을 발휘하여 멀리 머문 연인의 상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이 순간 여자와 함께 하는 오랜 아름다운 삶,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삶 등이 마치 하나의 환영처럼 교차되어 나타난다.

 

그래, 틀림없이 그미는 아름답고 귀중한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아마도 온갖 재물과 영광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 남자는 상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구애가 실현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여자와의 약혼을 상상하게 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남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계속 된다. 그 다음날 아침 남자는 미몽에서 깨어난다. 모든 게 자신의 상상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남자는 여자를 찾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바로 이때부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구역에서 노선버스를 타고 여자를 찾으려고 방황했던 것이다. 그의 태도는 마치 거의 허망한 해안에서 헛되이 진주를 찾으려는 어부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인 진주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 현실에서 대체로 냉정하게 처신한다. 남자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다. 마치 미끼용 바늘, 혹은 무가치한 진주조개껍질처럼 주위에 즐비하게 늘려 있는 게 여자들이야, 아 무렵 그렇고말고. 사라진 여자를 찾으려는 남자의 의지는 공허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쩌면 나의 행동은 마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장터의 노예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일주일 이상 연인을 찾아 헤매는 동안 여자의 얼굴은 그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흐려져 간다. 남자는 무언가를 끝까지 완결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유형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토록 강렬하게 “상상 속의 처녀”를 꿈꾸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야기는 청춘의 열정에서 유래하는 어떤 극단적인 상과 관련된다. 연인의 상은 그 자체 강렬한 아름다움의 상이다. 그것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랑의 빛은 환하게 밝아오다가, 다시 소멸되고, 다시 밝아오다가 소멸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 아름다운 이성 (異性)은 젊은 남녀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혼란스러움을 안겨준다.

 

나이든 쇼펜하우어 Schopenhauer는 모든 것이 성취된 다음에 찾아오는 기쁨이야 말로 노년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찬양한 적이 있다.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보라, 너는 아무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년의 삶은 청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청춘의 삶에서 수많은 것을 상실하고 놓쳐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지의 무엇을 마치 우상처럼 숭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상이 그들을 방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경건한 마음을 품게 하는가? 하는 물음은 여기서 논외이다.

 

내면에 솟구치는 일시적 자극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우리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이러한 현상은 참으로 기이하다. 버스 속의 남자는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기실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버스 속의 남자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면의 감정을 억압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치솟는 마음의 상처라든가, 차단된 현재에 대한 찬란한 감동 등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얼마든지 수월하게 망각할 수 있다. 그래, 시간은 우리의 아픈 마음이 소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곳에서 가만히 머물지 않는다. 보들레르 그리고 플로베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놓쳐버린 사랑의 시간을 문학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래, 비록 우리를 감동시키게 하지만, 이로 인한 인간적 고뇌는 결코 흐릿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모든 영혼은 봄날을 맞이하면, 때로는 부끄러운 감정, 때로는 설레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치 악마에게 홀린 듯이 자제력을 상실하거나, 무언가에 도취하게 되고, 어떤 마력에 우리의 가슴이 마비되곤 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감정은 오펜바흐의 제 5막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마지막에 주인공의 연인, 스텔라가 등장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원래 운명은 결코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전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가끔 감성과 무의식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운명을 그토록 쓰라리게 노래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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