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위치한 교회의 탑으로부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오전에 들을 바 있었던, 바로 그 찢어지는 비명의 종소리였다. 게르트루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슬픔에 잠겨서는 안 됩니다. 당신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순수한 음을 듣지 않았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춤추러 가야해요. 하루의 만남이 이제 끝나가는군요. 저녁시간 내내 내 곁에 머물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당신이 나를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산책할 수 있었군요, 이 점에 대해 주님에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아마도 아직 나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아요.”
처녀는 황급히 화가의 손을 잡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뒤이어 친숙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다. 마을 회관에는 여러 개의 횃불이 꿈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횃불을 든 체 한 곳으로 모였던 것이었다. 젊은 아가씨들이 게르트루트에게 인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 포옹했다. 청년들이 그곳에 다가와서 제각기 자신의 연인을 찾고 있었다. 실내에서는 즐거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화가는 게르트루트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화가는 그미의 열정적인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서 그미의 팔을 감싸 안았다. 두 남녀는 휘파람 소리가 요란한 거대한 방으로 들어가 전통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가의 눈에 띈 것은 춤추는 사람들의 상부에 위치한 종이었다. 시각을 알리는 교회 첨탑의 종이었다. 어느 순간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든 사람들과 사물은 정지상태에 처해 있는 아닌가? 바로 이때 사람들의 환호성은 사람들의 경직된 표정과 함께 멈춘 것이었다. 춤추는 사람들 그리고 하객들은 마치 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화가는 게르트루트에게 무언가 질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미 역시 춤추는 사람들에 뒤섞인 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멈추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사진 속속의 장면처럼 정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11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모든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악기의 음이 다시 이전보다 더 큰 소리로 표효하기 시작했다. 화가는 순간적 희열로 인해 거의 정신이 나갈 정도였으며, 처녀 역시 즐거움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이 다가올 무렵에 마지막 춤을 위한 트럼펫 합주곡이 힘차게 연주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게르트루트는 화가의 손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미는 오랫동안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화가를 밖으로 안내했다. 화가는 영문을 모른 채 게르트루트와 함께 거대한 방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오후에 함께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산책은 교회를 지나친 다음 탁 트인 들판이 보이는 둥근 장벽까지 이어졌다. 흐릿하게 달빛이 주위를 흐릿하게 밝히고 있었다.
“약속해주세요.” 하고 게르트루트가 속삭였다. “제발 부탁이니 자정까지 만이라도 나와 함께 있겠다고요. 이 순간만이라도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구세주 앞에서 언약해주세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여기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겠다고요. 왼발이든 오른 발이든 발을 떼지 않겠다고.” 젊은 화가는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연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미를 포옹하며, 입을 살며시 맞추었다. 게르트루트는 일순간 당혹감을 감추면서 그를 포옹하면서 화가에게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미는 화가의 가슴을 밀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녕. 춤추던 마을 회관 홀의 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릴 게요. 자정이 지난 뒤에. 꼭 기억하세요, 제발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게르트루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가, 사랑하는 친구를 다시 한 번 격렬하게 끌어안았다. 그 다음 게르트루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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