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박설호: (1)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필자 (匹子) 2023. 2. 13. 11:41

헝가리 출신의 대표적 문예 이론가, 게오르크 루카치 (1885 - 1971)의 "역사와 계급의식. 마르크스 변증법에 관한 연구 (Geschichte und Klassenbewußtsein)"은 논문 모음집으로서 1919년 3월에서 1922년 9월 사이에 집필되었다. 1918년 말에 루카치는 헝가리 공산당에 가입하였고, 헝가리 혁명 공화국에서 교육 담당 인민 대표위원 직책을 맡게 되었다. 1919년 혁명 공화국이 순식간에 몰락하자, 루카치는 빈으로 도주하였다. 이곳에서 루카치는 이 책에 해당하는 많은 부분을 집필하였으며, 부분적으로 1920년에서 1921년 사이에 잡지 "공산주의"에 싣게 하였다.

 

루카치는 1922년에 간행된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거론한다. 그는 “저자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독자들을 위해서 혁명 운동에 관한 이론적 질문들에 관해 해명”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핵심적 텍스트로 자리 잡게 된다. 루카치는 헤겔 철학을 다시 심도 있게 논의함으로써 유럽 공산당 내에서 주도적으로 자리하는 기계주의의 역사관에 대항하여 마르크스의 이론을 재구성하였다. 이로써 헤겔의 변증법적 잠재성이 다시금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칼 코르쉬 (K. Korsch)의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에서 이미 개진된 바 있다.

 

루카치는 다른 한편 “이데올로기의 위기”에 대해 분명하게 규명하려고 시도하였다. 루카치의 이러한 시도는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하여금 나중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도록 작용하였다. 루카치의 견해에 의하면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로 프롤레타리아는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럽 내의 중간 세력 내에서 국가의 폭력이 붕괴하는데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근본적인 혁명 운동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루카치는 신 마르크스주의의 시도를 맨 처음 행했는데, 이는 집단적 의식 혹은 이데올로기의 형태 그리고 사회적 생산양식 사이의 어떤 관련성을 파헤치려는 시도였다.

 

루카치는 책의 핵심적 논문, 「물화 현상과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Die Verdinglichung und das Bewußtsein des Proletariats)」에서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킨다. 시민적 자본주의 세계 내에서 인간관계는 루카치에 의하면 거의 결정적으로 상품 관계에 의해서 확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품 관계 속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대상 형태 그리고 주관성의 그에 일치하는 형태의 근원적 상” 내지 인간의 모든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구조가 분명히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상품의 생산은 인간의 사회적 관련성을 파괴시켜, 결국에는 서로 고립된 개별적 요소들의 양적인 구조 속으로 몰아넣는다.

 

가령 임금 노동자는 어떤 특정한 분화된 노동에 가담하고 있으며, 자신에 의해 창출되는 생산품의 전체적 과정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 만일 자신의 노동이 자신의 직접적인 필요성에 쓰이는 게 아니라, 오로지 교환 가치를 위해서 활용된다면, 그럴수록 개인적 특성 내지 개인의 관심사로부터 더욱더 유리된, 어떤 경제적 시스템이 형성될 수 있다. 예컨대 이러한 시스템은 “타산성 그리고 타산 가능성에 의해 설정된 합리화의 원칙”에 의해서 하나의 기계적인 고유 법칙성을 지니게 된다.

 

소외의 카테고리는 이미 루카치 자신이 “관념론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 초기 저서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데, 소외의 의미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경우로 확정되고 있다. 즉 상품 생산의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메커니즘 하에서 개인의 주관적 필요성이 박탈되는 점 말이다. 상품 생산의 개관적으로 보이는 메커니즘의 합리적인 원칙은 결국 “법, 국가, 국정 관리” 등과 같은 사회적 상부 구조를 형성하지 않는가? 실제로 공장에서의 노동의 분화는 개별적인 영역들을 고립화시키고, 제각기 구분시킨다. 이러한 식으로 생겨나는 것은 상부 구조이다.

 

그러나 인간과 연결되는 사회의 제반 관련성은 바로 그러한 노동의 분화를 통해서 “물화 (Verdinglichung)”된다. 사물 그리고 상품 들 사이의 가상적인 관계는 직접적 명백성 자체를 상실한다. 시장에서 발견되는 상품이 그것을 생산해낸 노동자에 관해 적은 내용을 보여주면, 그럴수록 사회 현상들은 다음의 사항을 더욱더 적게 인식하게 해준다. 즉 사회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인간에 의해 중개되고 상품 생산 그리고 이에 대한 보존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항 말이다. 이로써 본질과 현상들은 서로 일탈되고,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을 인지하는 행위는 항상 거짓으로, 이데올로기로 변해버린다.

 

이는 인간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 내지 고유한 필요성에도 해당된다. 상품 관계는 인간의 전체적 의식 속에다 어떤 구조를 부여한다. 인간의 고유성과 능력은 더 이상 개인의 유기적인 일원성과 연결되지 않고, 다만 “사물”로서 출현할 뿐이다. 즉 인간 스스로 지니고 있거나, 마치 외부 세계의 다양한 대상처럼 외화된 사물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바로 루카치가 말하는 물화 현상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