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449)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필자 (匹子) 2020. 7. 20. 11:25

 

박원순 시장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에 그의 여비서 측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회견 내용에 의하면 박 시장은 4년 동안 여비서 A씨를 성적으로 추행했다면서, 이에 대한 증거자료 몇 가지를 제시했다. 그런데 “4년 동안 성 추행”은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성 추행이란 순간적으로 분출되는 남성적 성욕의 투사 행위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그것도 4년씩이나 성 추행이 이어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할까?

 

4년 동안의 성 추행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가해자는 어쩌면 색정광 환자이거나, 아니면 어설프거나 서툴게 사랑을 드러내었을 개연성이 크다. 4년 동안 끔찍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사랑과 성이 동전의 앞뒤임을 인정한다면, 혹시 그는 나이 어린 피해자를 연모한 게 아닐까?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의 말을 동시에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이른바 가해자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피해자 측은 끝까지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는 제 삼자가 밝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성 희롱을 당했는데, 어찌 한 번도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았을까? 피해자는 오랜 시간 심리적 고통과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 행여나 스스로 피해당할까 소극적으로 처신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해결책으로서 고소장을 제출하는 대신에, 직접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 방지의 다짐을 받아야 옳았다. 잘 모르겠다. 궁금한 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난 팩트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인데, 이는 도저히 밝혀질 수가 없다.

 

요약하건대 모든 것은 추측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부디 피해자가 마음을 추스르고 심리적 아픔과 죄책감을 떨치기를 바란다.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 "간접 살인 운운"하면서 피해자를 더 이상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들도 이 문제에 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랑, 성희롱 그리고 이와 결부되는 갈등들은 인간 삶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차제에는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때 당사자끼리 가급적이면 조용히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 혹자는 항변할 것이다. 조용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고소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할 사항이 있다. 언론, 경찰을 통해서 고소하는 방식은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지닌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때로는 파헤치지 않는 게 나을 경우도 있다. 많은 분들이 이 시점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는 페북은 떠나있겠습니다.”라고 말한 서지현 검사의 갈등에 깊이 공감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비트겐슈타인도 다른 맥락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말할 수 없는 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하기 때문이다. Wovon man nicht reden kann, darueber muss man schwei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