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446) 번역자의 비애, 혹은 번역 예찬

필자 (匹子) 2020. 7. 10. 10:52

 

 

1.

훌륭한 번역일 경우 역자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야구 경기에 심판이 눈에 띄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탁월한 식견에 무릎을 칠 뿐, 역자를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2.

역자는 저자보다도 학문과 어학의 능력에 있어서 뛰어나야 훌륭한 번역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과 어학에 있어서 저자보다 뛰어난 자는 번역에 신명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점이야 말로 저자와 번역자 사이에 도사린 영원한 갈등 내지 모순입니다

 

3.

책 한 권 저술하는 것보다 명저 한 권 탁월하게 번역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명저 1권 번역하는 여력으로 역자는 저서 두어 권을 얼마든지 충분히 집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자를 그저 "서자" 취급합니다.

 

4.

훌륭한 번역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저 그렇고 그러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쁜 번역서가 나오면 출판사를 못살게 굴고 반품 소동을 벌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역자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것일까요?

 

5.

저서 집필이 작곡이라면, 역서 집필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습니다.

저서의 오류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서는 다릅니다. 악보에 맞지 않으면, 실수나 오류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6.

일본에서 훌륭한 역자는 대접받지만, 남한에서 역자는 들러리 내지 서자의 취급을 당합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래로 번역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일본의 학문적 깊이는 문제가 있지만, 폭넓음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일본의 문화적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안타깝게도 약 50년은 더 걸릴 것입니다.

 

7.

일본에서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역자의 힘이 큽니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작가와 시인들에 대한 지원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면서 노밸 문학상을 감 떨어지듯이 그냥 기대합니다.

역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절실하고 반드시 필요합니다.

 

8.

번역 작업은 하나의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문학 외국의 학문을 전공한 사람들은 해당 나라에서 낯선 손님 취급 당하고,

본토에는 그저 참고인으로 활약할 뿐입니다.

그러나  안삼환 교수도 말했듯이 조연이 주연보다 훌륭할 때도 있습니다.

 

9.

번역에 대한 시시비비 - 그것은 일단 좋다고 생각합니다.

외면당하는 것보다, 비판 당하는 게 나으니까요.

그렇지만 역자에게 번역상을 하사하지 않더라도, 과도한 비난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남을 평하기는 쉽고, 자신이 직접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