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Lindenberg

Bitte, keine Love Story (2)

필자 (匹子) 2021. 2. 1. 17:08

달팽이 한 마리는 스카치 테이프 (Tesa Film)을 이성으로 바라본다. 20대 젊은이들의 눈에는 팥깍지가 끼여 있다. 그들은 눈에 비치는 것만 바라본다. 키크고 날씬한 이성이 눈에 띄지만, 다른 사람의 가슴과 머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랑은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배움은 책을 통해서도, 부모를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실제 현실에서 사랑의 파트너와의 만남을 통해서 배워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로 전개됩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 비로소 비상을 시작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은 체험 이후에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린덴베르크 노래, "Bitte keine Love Story"의 전언입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은 멋진 이성을 만나 애틋한 사랑을 나누리라고 꿈꿉니다. 이로 인해서 그들은 실제 현실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눈 앞에 서성거리는 이성은 그들의 성에 차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20대 젊은이들의 눈에는 팥깍지가 끼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성 한 사람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알고보니, 그자는 자신이 생각하던 아름다운 이성이 아니라,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한 자신의 청춘을 다른 곳에 바쳐버린 셈입니다. 이런 것을 죽 써서 개 준 꼴이라고 하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실패는 당사자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듭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애틋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처음부터 저버리는 게 바람직할지 모릅니다. (통일을 포기하고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만난 동서독은 이제 통일 되었고, 오로지 통일을 목표로 삼고 있는 남북한은 서로 미워하면서 수없이 맞선을 보고 있습니다.) 린덴베르크는 완전무결한 사랑을 일단 포기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파트너를 만나서, 스킨십을 즐기고, 키스하며 동침하는 게 더 낫다고 노래합니다.

 

일견 도덕과 윤리에 어긋날지 몰라도, 서로 사랑과 성의 파트너가 되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다 보면, 나중에 자신에게 맞는 반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야 말로 대다수 서양 사람들의 애정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동거 이후에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첨부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파트너를 자신과 동등하게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어떠한 (성)폭력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말입니다.

 

물론 서울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연인을 만나 애틋하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지만, 러브 스토리를 꿈꾸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합니다. 러브 스토리를 포기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러브 스토리에 맹신하면,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꿈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이것이 우도 린덴베르크의 노래가 우리에게 전하는 충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