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3) 빌란트의 '황금의 지침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자연성과 인간 문화를 통합시킨 세시안 왕국: 중요한 것은 세시안 왕국의 삶이 무조건 자연의 법칙에 해당하는 무위에 의해서 영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제도적이고 인위적인 정책은 부분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페늘롱은 이상 국가가 오로지 고대의 아르카디아의 경우처럼 모든 인위성을 배격하는 자연 상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늘롱의 시대적 현실은 고대의 현실과는 다른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는 『텔레마크의 모험』에서 두 개의 절충적인 유토피아 모델을 설정한 바 있습니다. 그 하나는 “베타케”의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살렌타인”의 모델을 가리킵니다. 베타케가 오로지 자연에 입각한 국가로서 전적으로 무위의 삶을 추구하는 아르카디아의 이상을 추구한다면, 살렌타인은 인위적 정책과 질서를 반영하는 이상 국가를 가리킵니다. 빌란트 역시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의 국가 체제를 이원화시키지 않고, 자연적 특성과 인간 문화의 특성, 두 가지의 특성 모두를 통합시키려고 하였습니다.

 

13. 계급의 상승과 하락은 인위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티판의 기본법에 의하면 인민은 엄격한 관습에 의해서 일곱 등급의 계급으로 나누어집니다. 1. 귀족, 2. 학자 내지는 교사, 3. 예술가, 4. 상인, 5. 수공업자, 6. 농사를 짓는 시골 사람들, 7. 일당 노동자. 일곱 등급의 계급은 천부적인 것이라서, 어누 누구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엇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급 상승과 하락은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Jens V: 643). 아이들은 자신의 계급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귀족 계급의 경우 국가를 다스리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최상의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의 자제들은 시골 사람들과 비교할 때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힘든 교육을 감당해야 합니다. 티판은 국민들에게 보다 이성적인 신을 경배하고 자연 신앙을 숭상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사제들의 과도한 권한을 약화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가리치고 계도할 것으로 종용하였습니다.

 

14. 국익을 위한 티판의 정책 그리고 이상 국가의 몰락: 그밖에 티판은 국익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정책을 실천했습니다. 1. “백성들은 더 이상 과도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티판은 세금의 액수를 대폭 낮추어 가렴주구가 더 이상 자행되지 않도록 조처했습니다. 2. “모든 성인들은 반드시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는 강제 조항으로서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인구 증가를 도모하려는 정책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3. “국가의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가격 폭등을 철저히 금한다.” 티판은 말하자면 유연한 통화 정책으로 화폐를 안정시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4. “가급적이면 자급자족의 경제 체제를 유지한다.” 티판은 곡물과 농기구 등을 외부 수출하는 것을 처음부터 철저히 제한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시안 왕국이 추구하는 피히테 방식의 경제적 고립주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5. “군인들의 규모는 약 20만 명 정도의 적정선을 유지한다.” 티판은 군인들로 하여금 전쟁을 대비하여 항시적으로 군사 훈련에 매진하게 했으며, 평화기에는 대민 봉사의 일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15. 농업과 교육: 세시안 왕국의 사람들의 주업은 주로 농업입니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정원을 가꿉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편이지만,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물품들은 인근 지역 내에서의 물물교환으로 조달되고 있습니다. 인근에는 베두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제각기 필요한 물품들을 서로 교환합니다. 그러나 이러헌 물물교환은 그렇게 활발하게 행해지지는 않습니다. 공동체의 젊은 사내들은 여러 동물을 돌보는 목자로, 젊은 처녀들은 양치기로 일합니다. 말하자면 나이든 사람들은 많은 일을 담당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어른들의 자연스러운 일감이 애틋한 사랑에 열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Wieland: 63). 젊은이들의 교육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습니다. 자연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이곳의 사회는 인위적인 모든 규정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든 향락을 자연스럽게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말하자면 이곳의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극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인위적인 규정 그리고 학문 등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16. 세시안 왕국의 정책: 왕국에서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인위적인 정책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왕은 어떻게 해서든 적정 규모의 인구가 존속하도록 출산을 권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자연 조건은 주로 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외부로부터의 전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연친화적인 삶이라고 해서 삶의 모든 조건이 전근대적인 유목 생활로 고착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로 세시안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계몽된 절대주의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왕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하지만, 왕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부의 전제주의의 정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고위 관리라고 하더라도 결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사람들은 특정 지역이 과도하게 비대해지거나, 재화가 그곳으로 편중되는 것을 사전이 차단시키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지방이 중앙 지역에 비해 낙후해지거나, 가난에 허덕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조세를 통해서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억압하고 약탈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넷째로 국가는 모든 사람들이 사치와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조처를 취합니다. 가령 티판은 사치스러운 삶이 모든 국가의 튼실한 경제구조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위도식이라든가 재화의 과도한 낭비를 철저히 차단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사람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조처하는 일을 시급하게 생각했습니다. (Wieland: 271).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