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1) 빌란트의 '황금의 지침서'

필자 (匹子) 2019. 6. 17. 09:36

1. 17세기 18세기에 출현한 국가소설: 이미 언급했듯이 서양의 국가 소설은 크세노폰의 키로스 왕의 교육Kyrupädie에서 출발하여, 르네상스시기에 만개하였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면 국가 소설은 기술과 학문에 바탕을 둔 유토피아 미래 소설로부터 벗어나서, 군주의 교육서적의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군주의 교육 서적은 제후의 규범Fürstenspiegel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문헌 속에는 바람직한 이상국가가 하나의 가설로 설정되어 있는데, 군주의 교육 서적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사회 유토피아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군주의 교육서적은 어떤 이상적인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다스릴 때 어떠한 권리를 지니며, 어떠한 의무사항을 준수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추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절대주의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라는 의향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제후의 규범이라는 교육소설은 거의 유형적으로 17세기 그리고 18세기에 출현한 것도 이러한 의향과 관련됩니다. (Fohrmann: 27). 나의 제도가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틀로 작용한다면, 지배자의 선량한 인간성이야 말로 정의로운 사회를 실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 일부 계몽주의 작가들의 한결같은 입장이었습니다.

 

2. 선하고 현명한 왕에 대한 동경: 선하고 현명한 왕에 대한 동경은 일반 사람들이 폭정과 가렴주구 없는 삶을 갈구하는 와중에서 태동한 사고입니다. 그것은 억압과 강제 노동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민초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갈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페늘롱의 텔레마크의 모험(1694), 장 프랑수아 마르몽텔Jean-François Marmontel의 소설 벨리사리우스Bélisaire(1767) 등이 좋은 범례들입니다. 특히 후자는 내용에 있어서 제후의 규범과는 다른 방식의 소설로서, 당시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소설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휘하에서 싸우던 충직한 장군, 벨리사리우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황제의 충직한 부하였던 벨리사리우스는 권력의 암투에 몰려, 토사구팽당한 다음에 처참한 봉변을 당하여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는데, 소설은 장군의 몰락의 과정을 진솔하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마르몽텔은 책사를 활용한 다음에 가차 없이 내쫓는 폭군 루이 14세의 횡포를 교묘하게 비아냥거리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당국은 체제 파괴적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금서의 목록에 편입시켰습니다. 그밖에 제후의 규범을 다룬 소설로서 우리는 스위스의 작가 알브레히트 폰 할러Albrecht von Haller우종Usong(1771)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할러는 아시아의 예를 들어서 선하고 현명한 왕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빌란트는 스위스에서 할러의 작품을 읽고, 자극받은 바 있습니다.

 

3.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된 고대 아시아의 세시안 왕국: 스위스의 작가,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 (Christoph Martin Wieland, 1733 - 1813) 역시 황금의 지침서, 혹은 세시안의 왕들. 어떤 진정한 이야기Der Goldne Spiegel oder die Könige von Scheschian. Eine wahre Geschichte(1772/ 1774)에서 거의 모범적인 방식으로 당시 유럽 사람들의 정치적 예술적 갈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페늘롱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를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해놓은 데 반해, 빌란트는 아시아의 왕국을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고대 중국에는 현명한 천황제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인위적인 법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에 합당하게 모든 정사를 순리대로 처리하는 권력자였습니다. 나중에 이르러 권력이 분산되어 이른바 군웅이 할거하는 춘추 전국시대가 출현하게 됩니다. 계몽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 그리고 볼프 등은 자신이 계몽주의의 사상을 피력하면서 중국 문화에 대한 호감을 은근히 드러낸 바 있는데, 빌란트 역시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한 것 같아 보입니다.

 

4. 작품 집필을 둘러싼 계기: 빌란트는 청년 시절에는 취기 넘치는 시적 표현으로써 권력 그리고 권력자를 야유한 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황금의 지침서』를 통해서 인민을 자신의 자식으로 애틋하게 생각하는 제후의 덕목을 계도하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1773년에 안나 아말리아 폰 작센-바이마르 공작부인은 자신의 아들, 카를 아우구스트의 은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때 빌란트는 자신의 영향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감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말이 사부師父이지,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저열한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가정교사Hofmeister”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빌란트는 1775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황금의 규범에 대한 첨부 자료로서 철학자 다니시멘드 그리고 세 개의 연감 이야기Geschichte des Philosophen Danischmend und der drei Kalender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이전의 소설을 보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자신의 갈망에 대한 환멸을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군주를 훌륭하게 가르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기대감이 더 이상 실현될 수 없음을 문학적으로 실토한 셈입니다.

 

5. 천일야화를 방불케 하는 소설의 틀: 빌란트의 장편 소설 황금의 지침서』는 이국적인 동방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소설은 인도에 위치한 세시안 왕국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야기가 신비롭고 동화적인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과히 특징적입니다. 소설의 틀은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를 방불케 합니다. 작품의 맨 부분에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술탄, 사흐-게발, 그의 애첩인 누르마할 그리고 왕궁의 책사인 다니시멘드가 바로 그들입니다. 다니시멘드는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철학자로 생활하였습니다. 술탄은 하루 종일 국책 사업 등의 국가의 중요한 정무에 몰두한 다음에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려고 합니다. 이때 다니시멘드는 술탄과 그의 애첩을 편안히 잠들게 하기 위해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것이 바로 세시안 왕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 사람의 대화는 세시안 왕국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