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4) 빌란트의 '황금의 지침서'

필자 (匹子) 2019. 6. 17. 09:39

(앞에서 계속 됩니다.)

 

17. 법의 실천 그리고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노력: 도시가 황폐화되고, 그 지역에 더 이상 주민들이 거주하지 않게 되면, 어떤 혁신적 조처가 내려지게 됩니다. 이 경우 도시의 일부만 수정되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어떤 다른 새로운 계획에 의해서 건립됩니다. 도시는 자치적으로 계몽된 왕을 선정하는데, 왕들은 그야말로 새롭게 건립되는 공동체의 하인으로 일하게 됩니다. (Wieland: 251). 그렇게 되면 세시안 왕국에서는 왕이 법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법이 왕으로 하여금 모든 규정을 집행하게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책을 실행하는 자는 주어진 법적 토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지역을 총괄하는 왕, 티판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는 입법자, 재판관으로서 활동하고, 국가 경제를 관장하며, 어떻게 해서든 국가가 존립하도록 초상의 노력을 다합니다.

 

또한 티판은 국가 내의 종교를 총괄하고, 도덕을 관장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학문과 예술에 심혈을 기울이도록 애씁니다. 나아가 모든 젊은이들을 돌보는, 이른바 국가의 보편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물론 작가 빌란트의 상상력은 페늘롱의 그것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시안 왕국에서 계층의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사유재산제도에 근거하는 체제가 온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티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왕은 자신의 신하들의 재산에 관한 최소한의 인위적인 권한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왕은 신하들의 재산을 보호해줄 의무를 지니지만, 신하들의 의지와 반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물건들, 그게 바늘 하나라 하더라도 함부로 착복할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Wieland 265).

 

18. 세시안 왕국의 몰락: 티판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자 왕국은 몰락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권좌는 테모르, 투르칸 그리고 아크바르로 이양되었는데, 이상 국가의 제반 규정들은 서서히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세시안 왕국의 붕괴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항은 권력의 누수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권력자와 책사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지 않게 되자, 귀족 그리고 사제들이 과거에 누리던 기득권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정책 결정에 귀족과 사제들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이웃 나라와의 전쟁을 촉발시킵니다. 두 번째 사항은 너무나 훌륭한 법체계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법의 규정은 너무 올바르고, 너무 아름다우며 너무 이성적이었으므로, 백성들 가운데 짐승 같은 존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사치와 방종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세시안 왕국의 모든 재화 그리고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이웃 나라의 지배자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19. 사제 계급의 정치적 관여에 대한 비판: 황금의 지침서에 반영된 작가, 빌란트의 정치적 입장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급진적이지도 않습니다. 빌란트는 황제 요제프 2세에 대한 충성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Wilson: 482). 요제프 2세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아들로서 어머니와 함께 합스부르크 군주국을 다스렸는데, 1773년 마리아 테레지아는 예수회 교단이 자신의 아들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고깝게 생각하고 예수회 교단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해체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요제프 2세는 유년 시절부터 예수회 수도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가 사망한 1780년부터 각족 개혁에 박차를 가한 바 있습니다. 사실 빌란트 역시 예수회가 어린 황태자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데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제 계급이 교육에 관여할 수는 있으나,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세시안 왕국에서 사제 계급이 모든 정치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20. 작품의 장단점: 빌란트의 작품 속에 군주 정치에 대한 기괴한 타협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서술 방식에 있어서 과감하고도 우아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전반부에 서술자가 등장하여 작품에 언급되는 이야기가 인도어, 중국어/ 라틴어를 거쳐서 독일어로 번역된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 이야기를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게 변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번역서에 첨가된 논평 역시도 작가에 의해 과감하게 뒤바뀌었습니다. 이로써 작품은 일직선적인 사고를 방해하면서, 독자의 비판적 성찰을 은근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임정택: 201). 이를테면 술탄 사흐-게발은 주인공 티판에게서 정치 소설에서 출현하기 어려운 놀라운 영웅으로 고찰하고 있으며, 티판을 도와서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다니시멘드 역시 놀랍게 행동합니다. 다니시멘드는 처음에는 국가의 첫 번째 장관으로 등극하지만, 제후들의 국정 관여를 타파하고 스스로 자신의 관직을 박차고 나옵니다.

 

21. 작품의 특징과 결론: 요약하건대 황금의 지침서』는 제후의 교육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주제 상으로 페늘롱의 텔레마크의 모험과 궤를 같이 합니다. 따라서 빌란트의 소설은 18세기에 출현한 이른바 군주감 (君主鑑), Fürstenspiegel이라는 장르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작품은 토머스 모어의 이상 국가의 제도를 다룬 게 아니라, 선항 왕의 바람직한 통치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하나의 정태적 구도를 염두에 두었다면, 빌란트는 군주가 누구인가에 따라 사회는 얼마든지 역동적으로 변화된다는 사실을 설파하였습니다. 페늘롱이 바람직한 국가를 베티카그리고 살렌타인이라는 두 개의 국가 형태로 이원론적으로 설계했다면, 빌란트는 자연 법칙과 인간 문화의 인위적 설계를 합치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황금의 지침서에는 자연의 법칙에 의거한 아르카디아의 삶과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사회적 삶이 합치되어 하나의 일원성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품 속에는 사회 개혁이라든가, 국가의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없고, 기껏해야 선하고 현명한 왕의 지배를 갈망하는 의향만이 엿보일 뿐입니다. 그러한 한 작품은 정치적 개혁이나 진취적 의식을 드러내지 못하며, 봉건주의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빌란트는 작품을 집필하면서도 약간의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왜냐하면 선하고 현명한 왕을 갈구하는 마음은 지금 여기의 권력자를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절대 왕정 치하에서 민초의 권익을 헤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군주의 권한에 맞서는 것은 죽음을 감수하는 태도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알투시우스가 군주를 살해하는 것은 인간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은밀히 토로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왕의 권리를 넘어서는 어떤 정부를 구체적으로 구상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참고 문헌

- 임정택 (1995): Ch. M. Wieland에 나타난 유토피아 성찰, 실린 곳: 괴테 연구, 7, 192 - 204.

- Fohrmann, Jürgen (1982): Utopie, Reflexion, Erzählung, Wielands Goldner Spiegel, in: Utopieforschung, (hrsg.) Wilhelm Voßkamp, Bd. 3, Stuttgart, S. 24 - 49.

- Jens, Walter (1981):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20. Bde. München.

- Mayer, Herman (1981): Der goldene Spiegel und die Geschichte des weisen Danischmend, in: Christoph Martin Wieland, (hrsg.) Hansjörg Schelle, Darmstadt, S. 128 - 151.

- Wieland, Christoph Martin (2013): Der goldene Spiegel. Taschenbuch,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München.

- Wilson, W. Daniel (1984): Intellekt und Herrschaft. Wielands ”Goldner Spiegel“, Joseph II und das Ideal eines kritischen Mäzenats im aufgeklärten Absolutismus, in: MLN, 99, 1984, S. 479 - 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