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 (2)

필자 (匹子) 2019. 4. 7. 11:22

8. 자살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 차이: 두 사람 사이의 이질성은 자살에 관한 견해에서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베르테르가 자살이 개인의 자유와 권한에 입각한 합법적인 태도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알베르트는 자살을 도덕에 위배되는 행동이라고 단언합니다. 이에 비하면 베르테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으로 인하여 아픔을 겪을 수 있는데, 이러한 아픔이 자신의 삶을 끊도록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고통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알베르트가 자살 행위를 하나의 수치라고 매도하는 반면에, 베르테르는 자살의 의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살자는 외부적인 충격을 받고, 이로 인해 목숨을 끊습니다. 그렇기에 자살은 자연적 죽음의 변종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자연법적 권한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끝내기 위하여 알베르트와 롯데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어느 백작의 집에서 머물면서 B 양을 사귑니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귀족의 생활과 틀에 박힌 삶 자체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는 B 양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베츨라로 돌아옵니다. 주인공이 어디론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그들은 어느새 결혼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베르테르는 극심한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사랑을 호소하는 베르테르, 그러나 대답 없는 롯데

 

9. 마지막 클라이맥스, 자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가상적인 편집자가 등장하여, 사건의 마지막을 중립적으로 서술합니다. 주인공의 절망적인 독백은 감정의 격노함을 드러내듯이 스타카토로 차단되는데, 가상적 편집자는 모든 것을 냉정하게 중립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립적인 특징은 소설의 말미에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합니다. 베르테르는 더 이상 세상에서 살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며, 마지막으로 롯데를 찾아갑니다. 다행히 알베르트는 출타 중이었습니다. 베르테르는 롯데를 황급히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습니다. 자신의 몸 전체를 그미에게 맡기려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 순간 롯데는 베르테르의 손을 밀치면서 옆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급니다. 그날 밤에 베르테르는 롯데에게 장문의 편지를 씁니다. 뒤이어 가면무도회 당시에 입었던 옷을 착용한 뒤, 알베르트에게 빌린 권총 한 정을 꺼내어 책상에 앉은 채 머리에다 방아쇠를 당깁니다. “책상 위에는 레싱의 「에밀리아 갈로티 Emilia Galotti」가 펼쳐져 있었다.”

 

 

10. 작품에 대한 반향: 괴테의 서간체 소설은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작품을 읽고, 베르테르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자살자도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역시 1808년 이 작품을 읽고 괴테를 흠모하게 됩니다. 작품은 극작품으로 각색되어 수많은 무대에서 공연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작품을 혹평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보수적인 지조를 지닌 사람들은 베르테르를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를 방해하는 인간 내지는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체제파괴적인 반역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자살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괴테의 소설을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살하게 추동하는 문헌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자살자의 수가 약 10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특히 종교계에서 괴테의 책을 비난하였습니다. 보수적 신학자 라바터 Lavater는 베르테르가 기독교와 반대되는 인물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함부르크의 목사 괴체는 괴테의 소설이 기독교를 망치는 굴욕스러운 작품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작센, 덴마크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국에서는 괴테의 작품이 자살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비록 일시적이지만- 판매금지처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괴테는 이에 대해 완강하게 반박하였습니다.

 

 

 

베르테르의 포옹을 거부하는 연인, 그의 절망적 탄식

 

11. 사회비판적인 요소: 18세기 중엽 독일의 수많은 공국들은 프랑스 혁명의 여파에서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후들은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전통적 관습을 고수함으로써 일반 사람들을 부자유의 질곡에 묶어두려고 하였습니다. 평민들은 주어진 질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국가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후들의 끝없는 폭정, 민초들에게 행해지는 강령, 체제 파괴적인 사람들에 대한 감시와 검열 조처, 괴테는 이 모든 사항을 부자유스러운 삶의 징후로 파악했습니다. 물론 괴테는 극한적 저항을 추구한 작가는 아니었으며, 작품의 주인공 역시 사랑으로 고뇌하다가 결국에는 자살하는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자살은 하나의 메타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앙시앵 레짐으로 요약될 수 있는 구질서 지배계급의 강요와 억압에 대한 은근한 저항에 대한 메타포 말입니다. 괴테가 극작품 「괴츠 폰 베를리힝겐 Götz von Berlichingen」에서 용맹한 철수 (鉄手)를 지닌 영웅을 등장시켜 불법과 막강한 제후의 절대 권한에 문학적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에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사랑으로 고통 받는 한 인간의 자살을 통해서 부자유의 사회적 현실을 고발하는 방법 말입니다.

 

 

12. 루소의 『새로운 엘로이스』, 횔덜린의 『히페리온』: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는 서간체 소설이라는 점에서 횔덜린의 소설 『히페리온』과 유사합니다. 괴테는 소설의 집필 시 장 작 루소 J. J. Rousseau의 서간체 소설,『줄리, 혹은 새로운 엘로이즈 Julie ou la Nouvelle Héloïse』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루소는 마치 중세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스처럼 사회적 제약으로 결합할 수 없었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인간의 자유와 사랑의 삶을 구속하는 사회적 제약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괴테 또한 결혼을 하나의 구속으로 간주하는 루소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러나 『히페리온』의 주제는 국가와 인간의 삶, 인간 소외 그리고 현재의 독일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괴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횔덜린의 작품이 히페리온의 삶과 죽음 그리고 국가의 체제와 올바른 삶의 실현 가능성을 유토피아적으로 타진하고 있다면, 괴테의 작품은 사랑의 고통으로 인한 자살을 통해서 전근대적이고 고리타분한 구질서의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괴테의 작품이 이른바 질풍과 노도의 대표적인 작품에 속한다면, 횔덜린의 작품은 더 나은 국가와 사회상을 갈구하는 시토이앙의 이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교양 내지 혁명 소설의 범주에 속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설 기술의 측면에서도 두 작품은 이질성을 드러냅니다. 횔덜린이 모든 사건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면, 괴테는 시간 순서에 의해서 모든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콜라이

 

12. 괴테 작품에 대한 패러디: 괴테의 소설을 패러디한 작품은 수없이 속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사항만 지적하려고 합니다.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니콜라이 (Chr. Fr. Nicolai, 1733 - 1811)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괴테의 소설을 자살 예찬의 범례가 되는 서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려고 하였습니다. 니콜라이가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한 데 대해 괴테는 몹시 화를 내었습니다. 왜냐하면 니콜라이가 자신의 작품의 주제를 다른 식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문학적 품격에 흠집을 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괴테는 평생 니콜라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1972년에 동독 작가 울리히 플렌츠도르프 Ulrich Plenzdorf는 『젊은 W의 새로운 고뇌』라는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사건은 구동독으로 이전되고 있으며, 작품은 주인공 W가 스스로 자살했는지, 아니면 감전 사고를 당했는지 불분명하게 마지막 이야기를 종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사회적 억압과 구속을 더욱더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만 첨가하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언어학의 역사에서도 크게 기여한 바 있습니다. 괴테는 주어와 동사 앞에 중요한 문장 성분을 사용함으로써 도치 문장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중요한 문장 성분은 얼마든지 앞에 설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주어와 동사의 순서는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정착된 것이 바로 도치법 문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