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후안 룰포의 두 편의 소설 (2)

필자 (匹子) 2021. 9. 20. 10:27

1. 후안 룰포의 명작 소설: 룰포의 유일한 장편소설,『페드로 파라모』는1955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 작품으로써 룰포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고전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룰포의 실험적 서술 방식 내지 문체는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많은 젊은 작가들이 1960년대부터 이를 추종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소설은 70개의 짧은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작품의 단락 가운데에는 1페이지도 되지 않는 짤막한 것도 있습니다. 소설은 한마디로 모자이크처럼 직조되어 있습니다. 일견 산만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에피소드는 두 사람의 주인공의 삶과 죽음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화자는 구어체의 문체를 사용하면서 독자에게 소설의 중심적 이야기를 직접 들려줍니다.

 

2. 첫 번째 화자, 후안 프레시아도: 소설의 화자는 후안 프레시아도라는 이름을 지닌 청년입니다. 소설은 화자인 후안이 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돌로레스는 죽기 전에 아들의 손을 잡고,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찾아 유산을 받아내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후안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고향 도시인 코말라로 향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고향도시, 코말라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코말라는 그의 기억 속에는 아련한 정감을 안겨주는, 풍요로운 소도시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안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도시 코말라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중심가 하치엔다 메디알루나에는 폐허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언젠가 찬란한 풍광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던 녹색의 계곡에는 나무 한그루도 없었습니다. 가옥들은 거의 철거되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음산히게 부는 바람만이 마치 기억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이 그곳의 황량함을 쓸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후안은 석양빛으로 생겨난 폐허 가옥의 그림자와 조우합니다. 마치 행인을 만났다는 듯이 그림자와 을씨년스러운 대화를 나눕니다. 그림자들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잠시 머물다가, 흔적을 감춥니다.

 

3. 페드로 파라모의 흥망성쇠 (1): 소설의 중간부터 서서히 어떤 다른 정조가 뒤섞이게 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페드로 파라모라고 하는 사내가 등장하는데, 독자는 그가 후안의 아버지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페드로는 젊은 시절에는 무능한 몽상가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살해됩니다. 어떤 이유에서 살해되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아버지의 빚을 탕감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페드로는 돈이 없으므로 빚쟁이의 딸, 돌로레스 프레시아도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고향 도시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갑니다.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는 페드로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혁명적 분위기를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자가 페드로였습니다. 이러한 인간 유형은 가령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의 『아르테미오 크루즈의 죽음La muerte de Artemio Cruz』(1962)에서도 동일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작품 『페드로 파라모』는 어쩌면 『아르테미오 크루즈의 죽음』과 함께 멕시코 신화에 반기를 드는 반혁명적 문헌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4. 페드로 파라모의 흥망성쇠 (2): 페드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막강한 권력과 돈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주위 사람들로부터 더욱 고립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안타까운 사건이 발발합니다. 그의 유일한 법적 소생인 미구엘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낙상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페드로는 슬픔으로 인한 우울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어느 날 어린 시절에 페드로가 깊이 사랑했던 수잔나 산 환이 소도시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미는 혁명의 와중에 끔찍한 불행을 당해서 미쳐 있었습니다. 페드로는 수잔나를 도와주면서, 사랑을 호소하였는데, 그미는 과거에 침잠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미가 페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었습니다. 수잔나가 사망했을 때 주민들은 장례식으로 그미의 명복을 비는 대신에, 즐거운 축제를 개최합니다. 이에 실망한 페드로는 복수를 다짐합니다.

 

뒤이어 그는 이웃을 괴롭히고, 한 명씩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시 코말라는 서서히 몰락합니다. 페드로 역시 한 남자에 의해서 살해당합니다. 자신의 부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게 복수의 이유였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마치 암벽 덩어리처럼 폭삭 무너져 조각나고 말았다.” 사실 페드로는 어원상 “돌”을 가리키고, “파라모”는 황무지를 지칭하는데, 이는 소설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5. 여러 명의 화자: 소설의 후반부는 유명을 달리한 두 사람이 대화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죽은 자들의 대화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후안 프레시아도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코말라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은 뒤에 한 여인의 곁에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미의 이름은 도로테아였습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 기억을 상실하여 자신의 잃어버린 아기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미는 아기를 출산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착각 속에서 자신의 영아를 유기했다고 자학하면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여러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제각기 자신의 참담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멕시코 혁명의 와중에 목숨을 잃었던 희생자들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수잔나에 대한 페드로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습니다.

 

6. 시적인 문체와 구어체의 방언: 후안 룰포는 간결한 시적인 문체를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문장은 멕시코의 시골 사람들이 사용하는 쉬운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특히 멕시코의 독자들은 소설 속의 이야기를 자신의 직접적 체험으로 생생하게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미 『화염 속의 들판』에서 이러한 간결하고도 방언 섞인 문체를 활용한 바 있었습니다.

 

요약하건대 룰포의 소설은 시골 사람들이 혁명의 와중에 체험한 비극 그리고 그들의 희망 없는 숙명적 삶의 분위기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밖에 지적해야 할 사항은 죽은 자의 직접적인 발언입니다. 죽은 자들이 나타나 자신의 목소리로 생전의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는 상징적으로 그리고 심층 심리학적 차원에서 해석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죽은 사람들의 언어는 이전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출현한 바 있는데, 작가 후안 룰포에 의해서 다시금 활용되고 있습니다. 소설은 코말라라고 하는 지방의 작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언어는 우주적 관점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는 러틴 아메리카 문학의 독자들에게 기이하고도 의미심장한 “마력의 리얼리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