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엘마 야코비의 반대되는 견해: 한마디로 다니엘 파겐슈테허는 자신의 내면적 성욕을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 발견해내는데, 그의 친구 파울 야코비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성불능이 시작되는 나이에 처한 두 사람은 쉽사리 관음의 충동에 휩싸이며, 자신의 내적 심리를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 속에 재발견하려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빌마 야코비는 다니엘의 견해에 강하게 반박합니다. 에드거 알란 포의 신비로운 사랑의 감정을 무조건 리비도로 축소시키지 말라는 게 그미의 반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미의 견해는 자신이 처한 현실적 정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빌마 야코비는 장년의 나이에 처해 있지만, 최근에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야코비 부부는 확고한 직장을 지니지 못해서 경제적으로 무척 힘든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 정황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빌마 야코비는 무의식적으로 성적 욕망에 대해 완강히 저항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미는 자신의 딸이 다니엘과 성적 농담을 주고받는 데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딸에게 똑바로 처신하라고 경고하곤 합니다.
10. 작품의 난해성: 작품 『쪽지의 꿈』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독서의 어려움을 안겨주는 소설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이를 구성하고 해명하는 글들이 복합적이고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프로이트를 잘 아는 독자라고 해도 아르노 슈미트의 『어원 이론』의 대목에서 독서의 어려움에 직면할 정도입니다. 소설의 한 페이지는 세 개의 단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독서의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각 단마다 낯선 단어의 인용문, 난 외에 첨가된 부연 설명 언어적 유희 등 때문입니다.
작가는 텍스트의 가운데 단에 중요한 텍스트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등장인물의 발언, 행동 그리고 그들의 체험 등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왼쪽의 단에는 주로 등장인물들이 유추하는, 포의 작품의 문장들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오른쪽 단에는 등장인물들의 착상, 그들의 내적 상상 그리고 화자인 다니엘 파겐슈테허의 부연 설명 등이 실려 있습니다. 주인공의 부연 설명은 작가 아르노 슈미트의 발언과 거의 동일합니다. 단어들은 음성학적으로 기술되고 있으며,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의 경우가 그리하듯이 이중적 의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11. 언어유희 속에 잠재된 내적 심리: 작가는 이를테면 『쪽지의 꿈』제 4권의 제목을 “거대한 펀의 제스처Die Geste des Großen Pun”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펀”은 그리스 목자의 신, “Pan”을 가리키는데, 다음과 같이 달리 기술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위대한 판 신의 손님들Die Gäste des grossen Pans”, 혹은 “거대한 언어유희의 행위The jests of the great pun” 등을 생각해 보세요. 세밀하게 고찰하면 우리는 이러한 표현에서 “거대한 펜의 즐김Die Spässe der großen Feser” 내지 “거대한 사내 페니스의 제스처Die Gesten des großen Herrn Penis”를 얼마든지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에 이어지는 주요 텍스트는 양쪽 칸의 첨부 텍스트로 인하여 독자에게 복합적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부언하건대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왼쪽 단에서 정신분석학적 텍스트 내지 포의 문장의 인용으로, 오른쪽 단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생각의 언급으로 보완되고 있습니다. 작가 아르노 슈미트는 이를 위해서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 요한 피샤르트Johann Fischart,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쥘 베른, 모차르트와 오펜바흐의 수많은 오페라와 오페레타 등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인용문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그리고 작품 내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즉시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2. 작품에 대한 평가: 아르노 슈미트는 1963년부터 1969년 동안 작품의 집필과 병행하여 포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에드거 앨런 포의 무의식의 근본을 인식하기 위해서 미로를 방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슈미트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는 약 400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 비견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작품 『쪽지의 꿈』은 지금까지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르노 슈미트의 문학을 애호하는 독자들도 때로는 수많은 인용문, 등장인물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내적 감정에 관한 언급 등에 대해 식상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작품의 문헌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아르노 슈미트가 거론하는 노년의 심리, 어원 이론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 문학의 심층심리학적 깊이 등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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