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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아르노 슈미트의 '쪽지의 꿈' (1)

필자 (匹子) 2018. 12. 22. 21:51

1.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실험 문학 작품: 장 주네Jean Genet가 프랑스 문단에서 기이한 작가라면, 아르노 슈미트 (Arno Schmidt, 1914 - 1979)는 독일 문단에서 기인 작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 소도시 내지 시골에서 칩거하면서 살면서, 실험 문학의 산문을 집필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글은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모티프를 작품에 반영하였습니다. 오늘은 8권으로 간행된 그의 대작 쪽지의 꿈Zettels Traum(1970)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작가가 쓴 작품의 총결산이며, 동시에 과거 작품으로부터의 도피의 과정에서 남긴 흔적입니다. 그것은 A4 용지로 도합 1330장에 여러 개의 단으로 나누어진 채 빽빽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쪽지의 꿈은 그 특성상 다양한 장르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작품을 산문, 에세이, 번역 이론, 한 인간의 심리상태에 관한 심층적 서술 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발표된 자신의 책들에 관한 서술 기법 내지는 문학 이론적 언급도 첨가되어 있습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등장인물: 소설은 1968년 어느 여름날 독일의 외딩겐에서 시작됩니다. 외딩겐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은 외딩겐에서 함께 새벽부터 아침 시간까지 함께 지냅니다. 주인공 화자인 ”, 다니엘 파겐슈테허는 공부하는 작가이며 번역가로 일하는 남자입니다. 그의 집은 만권이 족히 될 것 같은 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시골에 도피처를 마련하여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서 지냅니다.

 

다니엘의 집에 손님으로 찾아온 사람은 부부 번역가로 일하는 파울 야코비와 빌마 야코비입니다. 그들에게는 16세의 딸 프란체스카가 있습니다. 네 사람은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로, 이번에 모두 모여 번역 작업 그리고 이에 관한 문제점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야코비 부부는 오래 전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개별적으로 작업하면서 때로는 함께 모여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포의 작품과 인간에 관해서 토론을 벌입니다.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포의 에세이에 관해서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웁니다. 네 사람은 동일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다 보니,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3. 50세의 남자, 다니엘과 16세의 처녀, 프란체스카: 소설 속에는 시골 마을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사건들도 다루어집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모티프라든가 주제 등을 유추하게 합니다. 네 사람은 이러한 모티프와 주제에 관하여 대화를 재개하기 시작합니다. 다니엘은 포의 문학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16세의 프란체스카에게 묘한 애호의 감정을 느낍니다. 문학에 반해 있는 소녀의 다정다감한 반응이 지금까지 철두철미하게 독신의 삶을 영위하던 나이든 작가에게 고혹적 감흥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사실 에드거 앨런 포 역시 26세의 나이에 실제로 13세의 소녀 버지니아 클렘Virginia Clemm과 혼인한 바 있습니다. 대화 도중에 이때 다니엘은 에드거 앨런 포를 떠올립니다. 자신도 어쩌면 마치 죽지 않는 요정 같은 나이 어린 소녀를 애인으로 맞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프란체스카는 평소에 사랑과 결혼에 관련된 문제로 자주 어머니와 마찰을 빚고 있으며, 자신의 부모가 무척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포옹했을 때, 그미는 동시에 주인공에게 연정을 드러내면서, 다니엘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말까지 거리낌 없이 내뱉습니다.

 

 

    

아르노 슈미트의 타자기와 안경. 첼레에 있는 보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4. 다니엘, 야코비 부부에게 하나의 계약을 체결하다.: 몇 시간 후 사랑방에서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프란체스카가 부모님에게 다니엘을 사랑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야코비 부부는 서른 이상의 나이 차이가 존재하는데 사랑이 웬 말이냐고 말하면서 딸을 질타합니다. 다니엘은 지금까지 혼자 은거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프란체스카 역시 함께 살게 되면, 그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요구할 게 뻔합니다. 나이든 장년의 남자로서 젊은 여자아이와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니, 무척 힘에 부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다니엘은 자신의 나약한 심장 때문에 프란체스카를 멀리하고, 그미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다니엘은 야코비 부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한 가지 조건을 지키면, 다니엘은 그미가 아비투어를 마친 다음에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체스카가 앞으로 다니엘과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는 게 바로 그 조건이었습니다. 며칠 후 다니엘은 이웃 마을에 불이 났는데, 방화를 돕는다는 핑계로 잠시 집을 떠납니다. 이때 야코비 부부는 프란체스카와 함께 외딩겐 마을을 떠나 베스트팔렌의 륀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되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