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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뒤렌마트의 미시시피씨의 결혼

필자 (匹子) 2019. 1. 13. 08:48

친애하는 J, 오늘날의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듭니다. 세계는 우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역사적 발전은 인간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척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의 현인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그리고 얼마나 강렬하게 사회 유토피아를 꿈꾸었던가요? 그러나 세계는 마르크스 이후의 지식인들이 갈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비관적 회의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에른스트 블로흐가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세계의 간파될 수 없는 특성 (Undurchschaubarkeit der Welt)”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계는 한울 나라 내지 자유의 나라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식인 역시 사회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국외자의 신세로 전락한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뒤렌마트 

 

 

 

  

 

세계의 간파될 수 없는 특성과 관련하여 오늘 「미시시피씨의 결혼」이라는 작품을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2막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입니다. 스위스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Friedrich Dürrenmatt, 1921 - 1990)는 50년대 초에 발표된 작품이지요. 이 작품은 1952년 3월 26일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뒤렌마트는 독일의 저명한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작가로 활동한 바 있는 한스 슈바이카르트 (Hans Schweikart, 1895 - 1975)와 함께 여러 번 공연한 뒤에 1952년에 초판을, 1957년에 수정판을 책으로 간행하였습니다. 세 번째 수정판은 1970년에 이르러서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작가는 세 번째의 판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습니다. “원래의 종교적 문제가 정치적 소극으로 약화된 감이 없지 않다.”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1980년에 이르러서 작품은 다시 수정된 바 있습니다.

 

 

 

많은 수정 작업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배경은 변함없이 비더마이어의 살롱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맨 처음에 주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인 공산주의 혁명가 프레드릭 르네 상 클로드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상 클로드는 여기서 작품의 마지막에 나타나야 마땅했을 법한, 어떤 살인에 관해 암시를 던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조만간 나타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계획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세 명의 남자들의 확실한 운명에 도사리고 있지 않아. 비록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법을 동원할까 하고 오랫동안 궁리하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그들은 끔찍한 불행과 마주치게 되거든. 그들은 도저히 변화될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는 어느 여자와 함께 살아갈 수 없어. 왜냐하면 그미는 오로지 순간만을 사랑하는 여자니까.

 

사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은 5년 전, 즉 1947년 혹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인공 플로레스탄 미시시피는 검사인데, 정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그는 공무로 아나스타시아라는 여자를 방문합니다. 그미에게는 남편 살해의 혐의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맨 처음 그미를 바라보았을 때, 미시시피는 일순간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미의 용모가 너무도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는 사적인 감정을 떨치면서, 주어진 임무를 냉정하게 추진하려 합니다. 심문 도중에 아나스타시아는 범행을 순순히 털어놓습니다. 즉 그미의 남편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시시피의 아내, 마들렌느와 간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미시시피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드디어 그는 다음과 같이 결심합니다. 아나스타시아를 살인죄로 고발하지 않고, 그미와 결혼하기로 말입니다. 처음에 아나스타시아는 청혼을 거절합니다. 이때 미시시피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자신 역시 다른 남자와 간통한 아내, 마들렌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최근에 그미를 독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이 말을 듣고 미시시피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미시시피가 아나스타시아에게 청혼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결혼을 통해서 그미를 천사로 변모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속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미시시피는 지금까지 모든 사건들을 매정하게 급진적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그의 엄격한 구형으로 인하여 무려 350건의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이는 급진 좌파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정부는 미시시피를 검사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그는 단호히 정부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미시시피에게는 죽마고우인 상 클로드가 있었습니다. 상 클로드는 코민포름의 정치국 임원이자 소련 시민으로서 공산당 개혁이라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홍등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제각기 홍등가에서 버려져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성장했는데, 각자 의식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뇌리에서 씻으려고 작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지울 수 없는 청년 시절의 체험으로 인하여 『성서』를 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택했습니다. 다시 말해 미시시피는 천국의 정의로움을 대변하려 한 반면에, 상 클로드는 무산 계급의 혁명을 통해서 지상의 정의로움을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이 시대의 최후의 도덕주의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미시시피가 상 클로드의 의도에 따르지 않으려고 했을 때, 상 클로드는 자신의 죽마고우가 인민의 적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작품에는 제 3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보도 위벨로에 백작입니다. 그는 비극적인 돈키호테와 같은 전형적 인물이지요. 위벨로에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다음에 스스로 거지로 전락한 인물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심사숙고합니다. 즉 작가에게 중요한 사항은 특정한 이념들이 인간과 부딪칠 때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는 물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대담한 에너지를 발휘하거나, 신속한 광기 그리고 완전성에 관한 소진될 수 없는 야망으로써 특정한 이념들을 실현시키려고 의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위벨로에는 끔찍한 우화를 즐기고 불필요한 유희를 애호하는 자이며, 강직한 프로테스탄트로서 자신의 몽상을 추종하다가 모든 것을 상실한 기이한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극작가, 뒤렌마트가 등장인물 가운데 위벨로에 백작을 가장 애호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어쨌든 위벨로에는 아나스타시아의 과거를 밝혀냅니다. 그미는 일찍 결혼하여, 유부녀의 신분으로 젊은 위벨로에와 살을 섞었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백작과 결혼하기 위하여 남편을 독살했습니다.

 

위벨로에가 아나스타시아의 과거 불륜을 미시시피에게 전할 때, 아나스타샤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바로 이 순간 공산주의의 무장 폭동이 발발합니다. 위벨로에가 흥분한 군중들의 돌 세례를 피하면서 살롱에 들어섭니다. 그가 아나스타시아에게 과거의 범행을 인정하라고 요구했을 때, 그미는 단호한 자세로 자신의 과거를 부인합니다. 폭동을 일으키는 공산주의자들이 일제 사격을 가하여, 살롱의 가구들이 완전히 박살이 납니다. 이 와중에서 미시시피와 위벨로에는 신랄한 어조로 토론합니다.

 

난장판 속에서 토론이 지속되는 동안 순간적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이 위벨로에의 뇌리를 스칩니다. 즉 진실이란 항상 광기로 작용하며, 결국에는 사람들을 정신 나가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나는 세상에 내던져졌어, 지구는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우스꽝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어,/ 나를 조소하는 대들보에 걸려 있다니까./ 무방비 상태로/ 어느 마지막 그리스도가 신의 면모와 마주한 채 매달려 있어.” 결국 미시시피는 완전히 정신 나간 채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이때 미시시피가 자신의 아내 살인 그리고 그 배경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원으로 이송합니다.

 

 

 

 

 

뒤렌마트 근영 

 

 

공산주의의 폭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상 클로드는 아나스타시아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그미와 함께 포르투갈로 도주할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세계 혁명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사를 도모하는 동안 그는 아나스타시아로 하여금 비교적 깨끗한 홍등가 사업을 벌이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게 그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나스타시아는 상 클로드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그를 독살하려고 합니다. 상 클로드는 이를 알아차리고 죽음의 잔을 비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미시시피가 나타난 때문이었습니다.

 

미시시피는 정신 병원에서 탈출하여 아나스타시아를 살해하려고 만반의 조처를 끝낸 다음, 경솔하게도 상 클로드를 위해 마련된 독이 든 커피를 마셔버립니다. 아나스타시아가 그의 곁에 머뭅니다. 미시시피는 아나스타시아에게 간통 사실을 자신에게 털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미는 이를 부인합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미시시피가 독으로 사망하리라는 사실을 감지하면서도 끝내 모든 진실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미시시피는 수많은 자들을 감옥에 쳐 넣고, 아름다운 그미와의 결혼이 정당했다고 착각하면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아나스타시아를 도덕적으로 구원하려던 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상 클로드는 뒤늦게 죽음의 현장에 나타납니다. 미시시피가 죽어 있고, 아나스타시아가 그의 곁에서 흐느끼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죽어가는 미시시피를 바라보면서, 그미 역시 삶의 의미를 상실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나스타시아는 스스로 독이 든 커피를 들이켰던 것입니다. 상 클로드는 자신이 바빌론의 창녀와 같은 여자를 위해 헌신하려던 노력이 정말로 어처구니없이 끝나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중에 상 클로드의 당원이 총을 겨눌 때 그는 자발적으로 총살형을 자청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 네 사람은 함께 등장합니다. 상 클로드와 미시시피는 여전히 세상의 변화 가능성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위벨로에는 압도하는 세상의 혼돈에 대해 인간으로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이 작품은 50년대의 냉전 체제의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세 명의 남자들은 모조리 급진적이고도 맹목적인 이상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세계 속에 파고들 수 없기 때문에 파멸합니다. 세계는 마치 아나스타시아와 같은 여인입니다. 세계는 냉혹하고, 더 나은 이념에 무관심합니다. 그렇지만 아나스타시아의 죽음은 극작품의 내적 논리와는 완전히 어긋납니다. 극작가는 차라리 그미를 죽지 않도록 조처하는 게 나았을지 모릅니다. 마치 체제 순응적이고 차가운 주변 인물, 디에고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친애하는 J, 극작품은 오로지 논리로써 해명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나스타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나스타시아는 어원상 “부활 (αναστάσις)”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더 이상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활할 수는 없을까요? 어쨌든 「미시시피씨의 결혼」은 도저히 “간파될 수 없는 세계”의 모습, 그 우연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