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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욘존의 기념일들 (2)

필자 (匹子) 2018. 7. 10. 11:52

게지네는 자신의 부모에 관해서 언급한다. 어머니 리스베트는 1920년대에 자신의 집에 총기가 은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당국에 고발한다. 그미의 아버지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적을 막으려면, 총기를 지녀야 하고, 이를 당국에 알려서는 안 된다고 딸을 설득했지만, 리스베트는 막무가내였다. 리스베트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대꾸하며,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이로 인하여 파펜브로크 일가는 고향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1922년 메클렌부르크의 예리호 Jerichow로 이주한다. 예리호는 게지네의 아버지 하인리히 크레스팔의 고향이었다.

 

하인리히 크레스팔은 사회주의적 지조를 지닌 젊은이로서 사민당 (SPD) 당원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사민당 (SPD)은 보수적 세력을 수용하여, 혁명 노동자의 평의회와 대립하게 된다. 그래서 하인리히 크레스팔은 SPD에 실망하여 탈당한다. 그 이후 하인리히는 몇 년간 영국에서 가구 노동자로 일한다. 1931년 여름 그는 고향을 방문하여, 리스베트 파펜브로크를 사귀고, 그해 가을에 그미와 결혼한다. 신혼부부는 영국으로 건너간다. 리스베트는 몇 달 후에 임신하게 되지만, 낯선 영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결국 그미는 출산 직전에 제 2의 고향인 예리호로 되돌아온다.

 

게지네 크레스팔은 19333월에 세상에 태어난다. 하인리히는 딸과 아내를 무척 보고 싶어 했으나, 나치의 집권으로 인하여 귀국 일자를 연기한다. 결국 그는 1933년 말에 영국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처가의 대부분 사람들은 보수주의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장인은 민족주의자였으며, 처남은 나치 당원이었다. 하인리히는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 유대인 탄압이 시작된다. 이때 주인공의 아내, 리스베트는 나치의 야만적인 횡포에 절망감을 느낀다. 그미는 종교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대낮에 정신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하마터면 어린 게지네의 목숨을 잃을 뻔 한다.

 

하인리히 역시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밤에 그는 유대인 동물 의사 한 사람을 돕는다. 유대인 의사가 국경을 넘어서 탈출할 수 있도록 조처해준다. 그렇지만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나치의 비행장 건설 작업에 참가한다. 하인리히는 1938년에 아내를 잃는다. 리스베트는 수정의 밤으로 잘 알려진 11월 어느 날 나치 첩자의 뺨을 때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예리호의 어느 목사는 장례식 때 죽은 리스베트의 영혼을 달래주려고 연설하다가, 그만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고 만다. 목사의 어머니 쪽에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게 강제 호송에 대한 이유였다.

 

 

 

 

 

 

 

영국에 있는 지역 Marine Parade in Sheerness on Sea. 욘존은 1974년부터 죽을 때까지 왼쪽 끝 흰 건물에서 거주하였다. 욘존은 어떠한 국가, 단체 등의 폭력에 대해서도 굴복당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말년을 외롭게 보내야 했다.

 

 

1939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하인리히 크레스팔은 영국군의 스파이로 은밀하게 활동한다. 전쟁이 극에 달하지만, 예리호는 그다지 커다란 피해를 당하지는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예리호는 영국 군인들에 의해서 점령된다. 이때 하인리히는 예리호의 시장으로 임명된다. 영국군이 조만간 본토로 떠난 뒤에 예리호를 장악한 자들은 소련 군인들이었다. 하인리히 크레스팔은 시장으로 체포되어 약 3년간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지내야 한다.

 

1940년 전쟁이 발발할 무렵부터 야콥 압스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나 예리호에 도착한다. 모자는 하인리히 크레스팔의 집에서 기거한다. 게지네는 전후 시절에 예리호의 고등학교에 다닌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사이에 감시가 심했다. 스탈린주의의 공포 분위기가 학교마저 장악했던 것이다. 게지네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는 야콥 밖에 없다. 야콥은 마치 오빠처럼 그미와 함께 거주했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 애정을 품는다. 1952년 게지네는 할레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다. 1953년 그미는 야콥의 도움으로 동독을 떠난다. 야콥은 철도 근무자로서 그미의 차표를 구해주었던 것이다. 게지네는 서독에서 계속 공부하다가, 어느 날 NATO 본부에서 일한다. 1956년 야콥은 비밀리에 구 서독의 뒤셀도르프로 와서 게지네를 만난다. 그 다음날 야콥은 구동독으로 귀환한다. 귀환 후 첫날 야콥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