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키르쉬와 퓌만

필자 (匹子) 2019. 5. 29. 09:40

 

자라 키르쉬 (1935 -2013)동독의 사포라는 별명을 지닌 시인입니다. 연애시가 탁월합니다. 그만큼 한 인간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우정과 정치를 치밀할 정도로 냉정하게 시작품으로 남긴 동독 시인은 없었습니다. 사진은 2008년에 73세의 나이에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자라 키르쉬가 태어난 생가입니다. 그미는 1935년 튀링겐 지방의 림링거로데에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미의 아버지는 TV기술자였습니다. 이는 그미로 하여금 나중에 생물학을 전공하게 작용하였습니다. 1965년 당시의 남편, 라이너 키르쉬와 함께 엔솔로지 "공룡과의 대화 (Gespräch mit dem Saurier)"를 간행했는데, 이를 계기로 처음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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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리스 시인, 사포 Sappho (BC. 630 -570)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미의 모습은 이렇듯 자기 그릇에 남아 있습니디. 사포는 기원 전 591년에 레스보스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여성공동체를 결성하여, 젊은 처녀들에게 시와 노래 그리고 춤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신에 대한 찬가 그리고 결혼과 사랑을 노래한 시를 남겨겼습니다만, 오늘날 일구 시구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미가 살던 섬, 레스보스에서 동성연애자의 뜻인 레스비언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사포는 일시적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기도 했습니다.

 

 

 

1965년 작가 회의의 모임에서 중간이 라이너 키르쉬를 가리킨다.    

 

자라 키르쉬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고, 1963년에서 1965년 사이에 라이프치히에 있는 요하네스 베혀 연구소를 다녔습니다. 초기 시의 경향은 새로운 서정적 자아의 일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동년배 시인 라이너 쿤체, 귄터 쿠네르트, 폴커 브라운 칼 미켈 등의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던 성향이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작센 시학파"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1965년 이래로 동독 문학의 새로운 서정적 음색은 당 문화 관료들의 저항에 맞서서 자신의 문학적 경향을 관철시켜야 했습니다. 그미는 라이너 키르쉬와 1960년부터 1968년까지 결혼생활을 누렸습니다.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요한네스 R. 베허 연구소. 이곳에서 동독 작가들은 창작의 도움을 받고 집필에 몰두하였습니다.    

 

1970년에 간행된 시골 체류 (Landaufenthalt)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생존을 위한 용기, 2. 고유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 3. 동독의 경직된 사회 질서 그리고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는 사회주의의 덕목 등에 대한 조심스러운 견해 표명 등이 그것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미가 이 시기에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작가의 기능에 대해서 회의감을 표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약간의 비판적 내용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미는 동독을 서독보다 더 나은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1977년 자라 키르쉬가 비어만 추방령의 여파로 인하여 서독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그미는 비어만 추방령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자라 키르쉬는 동독에서 여러 혜택을 누리는 인정받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미가 묘사하는 풍경 그리고 문학적 장소는 바로 꿈의 풍경입니다. 키르쉬는 산업 발전 그리고 문명 등으로 삭막하게 변한 도시의 정경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시골 생활의 공간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관적인 내적 공간이 역사와 정치의 현실로부터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자라 키르쉬의 은유 (메타퍼)는 기계화된 인지 형태, 개인적 경험에 대한 보편적인 무시 등에 대해서 강력히 항의하고 있습니다. 그미는 간결한 언어 구사를 지극히 의도적으로 행하며, 전통적인 자연시의 특성과는 완강히 대립되는 것입니다. 자라 키르쉬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은 자연을 묘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인 관계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생기 있는 시어, 압축과 생략의 기법, 행간을 띄운 문장 연결 등은 자라 키르쉬의 이후의 시에서 주도적으로 드러나는 표현 형식들입니다.

 

 

 

피카소의 작품 "키스"입니다. 구동독은 사생활과 성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그 대신에 폭력, 국경 탈출 그리고 당국에 대한 개개인의 정치적 비판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메스를 가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미국 사회는 성에 관해서 지극히 엄격하지만, 폭력 사건에 관해서는 관대합니다. 미국 영화를 보면,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폭력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오로지 자신의 아내만을 애틋하게 사랑하는 가정남의 면모를 드러내곤 합니다. 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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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지역의 강가에 있는 유람선    

 

등 뒤의 바람(1976)은 키르쉬가 서 베를린으로 이주하기 1년 전에 비퍼스도르프에 머물다가 집필한 연작시 모음집입니다. 비퍼스도르프는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주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은 아힘 폰 아르님 (Achim v. Arnim)의 고향으로서 구동독 작가들의 작업실로 사용되기도 한 지역이지요. 자라 키르쉬는 비퍼스도르프 연작시에서 주로 시대의 우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사진은 베티나 폰 아르님 (Bettina von Arnim, 1785 - 1859)을 가리킵니다. 베티나는 낭만주의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여동생으로서 베티나 브렌타도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미는 어린 시절부터 몹시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었습니다. 그의 삶에서 놀라운 것은 그미가 아힘 폰 아르님과 결혼 후에 다섯 자식을 키운 다음, 나이 오십에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 그리고 자식 키우기는 오랫동안 그미의 창작을 방해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일감으로 여겼으며, 모든 의무가 끝난 다음에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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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 여성 제자를 사랑하는 사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질적 존재다 이곳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다

어떤 우연에 의해서 경직된 비 때문에

나의 잿빛 세포 속에서 변모가 드러났다

자매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

 

여기 횡행하는 무 ()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지탱해주는 가지가 다른 성 ()으로

향해 있음을 보았다 이제부터 나는

지난 나날처럼 둥근 뺨을 사랑하지 않는다

밤이면 수염 달린 자가 내 침대에서 쉬고 있다

 

육체적으로 만들어진 대로 행동했던 내가

죄인일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섰단 말일까

자매들이 마침내 이를 발견하게 된다면, 나를

분명히 불 태워 죽일 것이다 은폐할 경우

몸의 불룩한 배는 나를 배반하게 될 것이다

 

1. 어째서 는 이질적인 존재인가?

2. 시적 자아는 어째서 자매들이 원하는 대로살아갈 수 없습니까?

3. 시의 근본적 주제를 설명해 보세요.

 

자라 키르쉬의 "레스보스에서 온 소식" 실린 곳: 박설호: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읽기 415 페이지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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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고난의 삶은 명작을 남기게 할까요? 1977서독으로 이주한 그미의 시는 더욱 사적이고 개인적인 면모를 지니며,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게 됩니다. 1983년 이후로 키르쉬는 서독으로의 진출을 위한 과도적 장소로서 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머물렀습니다. 그미는 라이너 키르쉬와 이혼하고, 동료 시인, 카를 미켈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후 서독에서 소설가 크리스토프 메켈 (Chr. Meckel)와 염문을 뿌린 다음에, 연하의 작곡가 볼프강 폰 슈바이니츠와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자라 키르쉬는 이 시기에 달콤하고 격정적인 삶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편들은 유감스럽게도 수준 이하라고 혹평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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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독의 풍경은 자라 키르쉬의 고독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암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추위, , 겨울 산책로, 밋밋한 서리, 자갈 더미 등과 같은 시어는 (시인을 포함한) 현대인들의 고립된 삶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키르쉬의 최근작들은 한마디로 검은 상에 대한 거울 (Spiegel für

schwarze Bilder)”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진은 1981년 베를린 평화를 위한 작가 모임에 참가한 작가를 보여준다. 오른쪽이 퓌만이다.

 

이번에는 프란츠 퓌만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퓌만의 삶에서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후회와 반성으로 다시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나섰다는 사실입니다. 퓌만은 히틀러의 사상을 열광적으로 찬양했지만, 나중에 이를 후회하였고, 사회주의 국가를 열광적으로 지지했지만, 나중에 이를 후회하였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나요? 인간은 한 번 실수할 수 있지만 이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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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퓌만은 1922년에 체코의 로흐리츠라는 소도시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기초학교를 마친 다음에 예수회 학교를 다녔는데, 1936년 그의 나이 14살 때 출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1937체코의 주데텐 지역이 독일과 합병되었을 때, 나치에 동조하였습니다. 1941년 브르힐라비 김나지움에서 "마투라 Matura"를 취득했습니다. “마투라는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졸업 자격증으로서 아비투어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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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프라하 대학에서 두 학기 수학을 공부한 다음에 독일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의 임무는 소련과 그리스 사이를 정찰하는 일이었습니다. 1945년에 퓌만은 전쟁포로로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뒤이어 그는 모스크바 근교의 노긴스크에 있는 반파시즘 학교에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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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캐리커쳐는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유럽 백인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949년 포로수용소에서 방면된 퓌만은 즉시 구동독으로 향했습니다. 뒤이어 그는 당 기관을 위해서 문화 정책을 추구하는 임무를 자발적으로 맡기도 했습니다. 1952년부터 퓌만은 독일 작가동맹의 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58년부터 죽을 때까지 전업 작가로 살았습니다. 1952년에 딸 바르바라가 태어났습니다. 창작 외에도 퓌만은 문화 정책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당에 피해당하던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1976년 그는 비어만 추방령에 항의하는 서한에 사인하였습니다. 퓌만은 참으로 부지런하였고,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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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간행된 퓌만의 전집. 그는 열성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이렇듯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위인은 이름을 남기며, 작가는 작품을 남긴다.

 

퓌만은 구동독에서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82년에는 서독 바이에른 주가 수여하는 숄남매 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그는 국가 중심의 사회주의에 대해서 어떤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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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그는 천사의 몰락 Der Sturz des Engels이라는 산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산문집은 표현주의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에 관한 것입니다. 시인은 시대의 지침계로서 시대에 더욱 강하게 반응하지만, 결국 예술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갈망, 갈망이 실현될 수 없는 비극에 대한 체험, 절망과 해원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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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만은 시골에 칩거하는 은둔형 인간이었습니다. 1984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퓌만은 마르크 지방의 부홀츠에서 조용히 숨어서 생활하였습니다. 퓌만의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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