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롤프 디터 브링크만

필자 (匹子) 2019. 5. 24. 10:10

 

 

 

 

롤프 디터 브링크만은 1940416일 북독의 소도시, 베히타에서 태어났다. 베히타에서는 지금도 약 3만 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요제프 브링크만은 베히타의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가난한 삶을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1957년에 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대체로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고, 어머니가 사망하면, 가정 생활이 엉망이 된다.)

 

 

 

김나지움을 다니던 그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에게는 보살펴주는 어머니가 없다.1958년 부활절의 시기에 불현듯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 공부가 시인에게 답답함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후에 그는 에센에서 도서 판매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롤프 디터는 1959년 그곳에서 말렌 크라머라는 처녀를 사귀게 되었고, 1962년부터 쾰른에서 동거하였다. 외로움이 그로 하여금 한 여성을 사귀고 사랑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1964년 결혼하여 로베르트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는 22세의 나이에 이버지가 되었다. 

 

Ähnliches Foto

 

22세의 아버지는 생활력이 없다. 두 사람 사이에 자주 언쟁이 오간다. 주로 아이의 보육 문제 그리고 기저귀 값으로 인한 말다툼이었다. 결국 말렌 크라머는 아기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난다. 다행히 서독에서는 사회 보장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하여 말렌 크레머와 아기는 사회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생활한다. 그러나 롤프 디터는 다시 홀몸이 된다. 아침 저녁으로 외로움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롤프 디터는 쾰른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는데,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 사이에 푼돈과 원고료를 모아서 런던으로 여행하기도 한다. 1965년부터 영미 시에 관심을 기울이고 팝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에게 다가온 것은 이를테면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핑크 프로이트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이었다.

 

 

 

다음을 클릭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3분 19초)

https://www.youtube.com/watch?v=HrxX9TBj2zY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
Hey, teacher, leave the kids alone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s, leave them kids alone
Hey, teacher, leave us kids alone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학교의 분위기는 선생들의 엄한 교육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부자유로 가득 차 있다. 개개인의 장점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틀 속으로 모든 학생들을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We don't need no education“라는 슬로건은 선생들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즉 학생들이 서로 경쟁한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의 정신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장벽의 벽돌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받고 있다. 기타 솔로는 해방을 암시하지만, 마지막에 전화기가 올리면, 사회적 관계가 파괴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Bildergebnis für poet cartoons

 

누군가 자신의 넥타이에 시를 쓰고 있다. 넥타이는 남자가 자신의 가슴 앞에 내세우는 자부심 내지 명예와 같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일상의 명예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시인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시인들이 절망에 빠지면, 삶의 형틀에 자신의 넥타이를 던져서, 가난 대신, 자살의 올가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시 창작은 돈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인에게는 생활비가 없다. 시만 쓰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생업에 몰두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 이게 작가의 딜레마이다.

 

 

 

그러나 롤프 디터 브링크만은 시작품으로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한다. 어느 정도 유명하게 된 것이었다. 1972년에 롤프 디터는 약 1년 동안 로마의 빌라마시모에 머물면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독일 아카데미 빌라 마시모는 창작 지원 재단인데, 가난한 독일 작가에게 창작 지원금 그리고 숙식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1974년에는 텍사스의 오스틴 대학의 초빙 교수로 활동하였다.

 

 

 

 

 

브링크만의 초기 산문은 누보로망의 미학에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누보로망은 전통 소설과는 다른 실험적인 소설작품을 가리킵니다. 작품 속에는 일직선적인 줄거리가 없고,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시세계에 침잠하며, 스스로 6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독일 시인으로 자처하였다.

 

시는 그에게 실제 현실을 투시하는 거울 속의 상과 같다. 1970년 이후에 브링크만은 의도적으로 산문시를 썼는데, 그 속에는 놀라운 생명력과 구체적인 형상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기형도 시인이 있었다면, 70년대 서독에서는 브링크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브링크만은 특정한 현실에서 눈에 띄는 놀라운 순간적 자극의 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게 외설이든, 데모든 간에.

 

브링크만은 가난했다. 그렇다고 그에게 돈 한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브링크만은 문화 재단의 도움으로 그리고 약간의 원고료를 받아서 생활했다. 그는 미국 시인 프랭크 오하라 그리고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작품들을 연구하였다. 여기에는 미국의 비트 제네레이션의 저항과 실험 문학의 흔적이 도사리고 있다.

 

 

 

 

브링크만은 68 학생 운동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아니, 68 학생운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런데 학생운동가들은 브링크만을 지지하거나, 비난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문학은 68 학생 운동가들의 예술적 참여 내지 저항의 목소리를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이에 대해 약간의 거리감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까지 학생운동가들은 예술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 참여만 부르짖고 있었다. 이에 대해 브링크만은 예술의 고유성을 주장하면서, 학생 운동의 정서를 시작품 속에 반영하려 하였다. 

 

 

 

 

 

사진은 브링크만의 시집에 묘사된 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두 남녀는 숲속에서 TV를 시청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가난 그리고 강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억지로 일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삶은 현실에서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세상은 도덕적 존재로 탈바꿈될 수 있을까? 브링크만은 언제나 도전적인 의향을 지니고 있었다. 브링크만은 저항에서 출발하여 저항으로 끝나는 작품을 집필하였다. 1970년 이후에는 공공연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창작에 전념했다. 이러한 노력은 그의 시집 서쪽으로 Westwärts 1 & 2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시집 로마 시선Rom, Blicke이 있다. 그는 거칠고 처절하게 사멸하는 사물 그리고 외설적인 장면 등을 시작품 속에 담았다. 편지 구절, 노트 그리고 신문기사의 일부는 시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Bildergebnis für linksverkehr england

 

브링크만은 1975423일 영국에서 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곳에서는 자동차가 좌측으로 통행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깜박했던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이처럼 허망하게 끊어지곤 한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사망해도 세상 사람들은 눈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내가 죽어도, 그대가 죽어도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죽음보다도 이러한 허망한 망각이 때로는 우리를 눈물 흘리게 한다. 

  

 

 

 

브레멘에 있는 예술 아카데미의 건물. 여기에는 브링크만의 사진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9 문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0) 2020.04.09
키르쉬와 퓌만  (0) 2019.05.29
요한네스 보브롭스키  (0) 2019.05.04
아이히 그리고 아이힝거  (0) 2019.04.04
고트프리트 벤과 그의 시대  (0) 2019.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