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 (2)

필자 (匹子) 2021. 9. 10. 11:00

6. 작품의 서두: 『모던 유토피아』의 줄거리는 빈약하며, 커다란 의미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작품은 설이 아니라, 국가에 관한 “해부학”과 같다는 느낌을 풍깁니다. (Sherborne: 165). 주인공, “나”는 익명의 식물학자와 함께 시리우스라는 행성으로부터 스위스의 피츠 루센드로에 도착합니다. 피츠 루센드로는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높은 고원 지역입니다. 식물학자의 체험기는 웰스의 작품에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부여해줍니다. 마지막 장은 대화와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식물학자는 주인공의 관점을 끝없이 방해합니다.

 

그 이유는 식물학자가 이상 세계의 건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8년 전에 실패한 자신의 연애 감정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식물학자는 자기중심적이며, 사적인 삶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식물학자는 사회의 상류층 출신으로서 정서적으로 자신의 고정 관념 속에 차단되어 살아가는 폐쇄적인 인간입니다. 인종적으로 서구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바로 식물학자입니다. 세상에는 식물학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찬란한 미래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작가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7. 작품의 전개: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자연의 사도라고 소개하는 어느 채식주의자와 만나서, 그와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채식주의자는 마치 견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생활합니다. 맨발로 다니고, 가죽이나 털옷을 걸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는 세상에 너무나 인위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인간 삶이 온통 불행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 자연주의자에 대해 주인공 나는 수수방관의 태도를 취합니다. 상기한 방식을 통해서 작가는 이상 국가 내에서의 개인적 삶, 경제 시스템, 이곳 사람들의 자연관, 여성의 역할, 일상생활과 의식주, 마치 사무라이처럼 원활하게 활약하는 엘리트 계층 등을 차례로 묘사합니다. 작품 내에는 시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관점이 간간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식물학자의 과거 집착에 극도의 분노에 사로잡히는 순간, 상상의 공간은 사라지고, 두 사람은 1920년대 런던의 현실로 돌아가 있습니다.

 

『모던 유토피아』는 어떠한 이유에서 20세기에 이르러 기술 관료들에 의해서 작동되는 거대한 국가가 하나의 문제점으로 드러나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웰스는 과연 어떠한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플라톤부터 모어에 이르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면모를 더욱 활성화시켰는가? 2. 이와 관련하여 웰스는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 사회에 출현한, 개인주의와 공동적 삶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는가?

 

7. 시대 비판. (1) 서구 문명의 진보 자체에 대한 회의감: 모어에서 벨러미와 모리스에 이르는 유토피아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공통적으로 드러냅니다. 즉 주어진 사회 내의 물질적 비참상은 처음부터 재화를 사적으로 소유하는 권리를 용인한 데에서 유래합니다. 자본, 토지 그리고 생산 수단을 소유한 계층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재화를 강탈하려고 하고, 이로 인하여 대부분의 민초들은 궁핍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웰스의 유토피아에서는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웰스는 계층 차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비판하기보다는, 서구 문명의 진보 내지 발전에 관한 믿음 자체를 처음부터 의심합니다. 물론 작가는 인간이 주어진 현실에서 과연 어떻게 아우르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성찰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구성적 토대는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새로운 기슬은 인간의 모든 생활방식을 전환시켰습니다. 새로운 자원의 개발 그리고 자연과학 연구의 충동은 더욱 극대화되었습니다. 웰스는 이 모든 현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습니다.

 

8. 시대 비판 (2) 비참한 삶과 인종갈등 비판: 기계에 의한 기술적 발전의 잠재성은 남아 있지만, 산업화의 과정은 지금까지 가진 자들의 강탈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안 속에서 추진되어 왔습니다. 예컨대 국민경제학은 주어진 사회적 결손 내지 하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파합니다. 부는 개개인의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의미에서 오로지 재화의 매매를 통해서 창출되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개개인들로 축소화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과 문제점에는 하등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재화의 축적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르렀는데도 일반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비참한 생활환경 속에서 지옥과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사회적인 근본 문제를 고심하지 않고, 서로 싸우고 술에 찌든 채 살아갑니다. 계급 차이의 문제는 극복되지 않고, 갈등은 공격성향, 질투와 시기 그리고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19세기 188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진보에 대한 기대감이 오래된 기독교 전통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인종갈등이라는 문제가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은 사회적으로 거친 인종 다원주의에 의해서 정당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웰스는 1905년에 놀랍게도 지구상에 인종의 문제가 심각한 갈등과 살인을 부추길 것이라고 예견하였습니다. (Wells 67: 327f).

 

9. 시대 비판 (3) 지적 야수, 혹은 이성을 지닌 동물: 20세기 초의 영국 사회는 부패와 탐욕은 사회적 죄악을 낳고, 인간의 목숨을 일찍 끊어버리게 만듭니다. 『모던 유토피아』에서 웰스는 강대국인 영국의 유아 사망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상에서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의 영아가 사망하는데, 그 이유는 의학과 간호의 소홀함, 가난 그리고 사회조직의 결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Wells 67: 170). 얼핏 보면 웰스는 인류의 역사가 자연 발달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거의 숙명적으로 진척되리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자연사와 마찬가지로 맹목적으로 잔인하게 전개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경우는 『타임머신』,『잠자는 자가 깨어난다면』에서 훌륭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웰스는 올더스 헉슬리에게서 무언가를 배웠습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윤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자신의 종 (種)을 조절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설령 인간의 노력이 어떤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Kumar 176). 다시 말해 세계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제 마음대로 진화를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최상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웰스가 고전적 유토피아의 사상적 모티프를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 제 3의 길로 향하는 경제적 시스템: 그렇다면 웰스가 설계한 세계국가는 어떠한 경제적 시스템을 표방할까요? 웰스는 맨 처음에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에 의거한 자본주의 사이의 제 3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첫째로 세계국가는 실제로 사유재산을 무제한적으로 용인합니다. 가령 개개인은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물품들, 즉 굳이 세금으로 납부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주고 구매한 물품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로 개개인의 사유재산은 특별한 경우 얼마든지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될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일정 금액을 축적한 경우는 여기에 해당합니다. 누군가 사망하면 그가 축적한 모든 금액은 국고로 환수됩니다. (Wells 67: 94).

 

그밖에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 역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로써 사적 소유물로서의 유산의 권한은 파기되어 있습니다. 사업 자금 내지 축적된 돈을 국가의 소유로 귀속시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돈을 어딘가에 비밀리에 숨겨두지 않고 더욱더 능동적으로 무언가 새롭게 투자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재산 가운데에는 국가의 소유물도 존재합니다. 부동산 가운데에서 모든 유형의 토지, 철, 석탄, 수력발전 등과 같은 지하자원은 국가의 소유물입니다. 국가는 여러 가지 유형의 땅을 회사라든가 개개인들에게 임대합니다. 그렇지만 토지를 임대하는 데 있어서 50년 이상 임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