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 (4)

필자 (匹子) 2021. 9. 13. 09:49

20. 엘리트 관료주의: 세계국가는 계급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계국가의 헌법은 엄격한 엘리트 관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웰스는 정치적 엘리트 그룹의 모범으로서 일본의 사무라이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파수꾼 계급과 거의 유사합니다. 웰스는 사무라이가 되려면, 젊은이들은 스스로 무사로 살아가기 위하여 가시밭길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세계국가는 지원자들 가운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자가 없는 사람을 선별하여, 그들을 엘리트 계급, 즉 “진짜 사나이”에 해당하는 사무라이로 임명합니다. 남자의 나이가 25세가 넘으면, 누구나 사무라이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Wells 67: 278). 그들은 자의에 의해서 무사의 단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규칙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고, 도덕적인 태도를 발전시키며, 극기 훈련을 통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수행하도록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협동성이며,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입니다.

 

21. 사무라이, 엘리트 집단: 웰스가 말하는 사무라이는 “조폭 집단”이 아니라, 특정 전문 영역에서 봉사하는 엘리트를 지칭합니다. 이들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방대한 저서,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1934 – 1954)에서 주장한 바 있는 “창조적 소수”를 가리킵니다. 창조적 소수는 자신의 욕망을 억제할 줄 알고, 고결하게 살아가려고 하며, 사적인 이득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이득과 이상을 달성하려는 “봉사 귀족들”을 가리킵니다. ”모든 대학의 장, 모든 판사, 변호사, 고용주, 모든 의사 그리고 모든 입법 초안자들은 사무라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회의 핵심 집행위원회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자들이 사무라이들입니다. 여성도 사무라이가 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대다수를 이루는 일반 사람들은 사무라이들보다 지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열등하며, 사무라이의 통솔 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웰스가 플라톤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무라이들은 -플라톤의 『국가』에서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엘리트 계급으로 선택되지는 않고, 교육을 통해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별됩니다. 어쨌든 간에 웰스는 엘리트 그룹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였습니다. 어쩌면 웰스는 인민의 자결권 내지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은근히 표현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민주주의가 웰스의 유토피아에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웰스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웰스는 계몽주의자, 드니 디드로처럼, 이른바 “우둔한” 대중들의 판단력에 커다란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22. 교육의 중요성: 웰스의 이상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교육 및 교육 제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니 언급했듯이 젖먹이 아이들은 어머니에 의해 길러집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부모의 보살핌은 아이의 정서적 지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Wells 67: 199). 학교의 시스템은 일원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므로,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초등 교육을 받을 권리를 누립니다. 14세가 되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마치게 됩니다. 이들 가운데 약 3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학교의 시스템으로부터 탈락합니다. 이들은 지적 정서적 장애를 드러낸 셈이므로 더 이상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부모의 직업과는 무관하게 중등 교육, 혹은 고등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때에도 학생들은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18세가 되면 학생들은 졸업 시험을 치릅니다. 이들 가운데 약 10퍼센트의 학생들은 중도 탈락하게 됩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마침내 대학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24세 혹은 25세가 되면, 학생들은 대학 수업을 마치게 됩니다.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자신의 장래가 결정됩니다. 졸업 시험은 그 자체 학생들의 능력, 재능 그리고 잠재적 수행 능력 등을 상대적으로 평가하게 해줍니다. 학생들은 사회의 피라미드에서 한 부서를 맡아서 일하게 됩니다.

 

23. 계층 사회 그리고 법적 질서를 최상으로 여기는 국가: 세계 국가에서 살아가는 개별 인간들은 네 가지 계층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1. 활동가, 2. 창조자, 3. 천민, 4. 우민. 첫째로 활동가는 공동체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관리자, 경영자, 관료 등을 지칭합니다. 둘째로 창조자는 지성인들로서, 창조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Mumford: 184). 자신의 고유한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계층을 이루며 피라미드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능력,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써 웰스는 세계 국가의 사람들이 개별 인간의 지적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유토피아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숙고하였습니다. 만약 주어진 사회 내에서 사람들 사이에 도사린 깊은 갈등이 사라지면, 범죄 역시 사라지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법 규정이라든가 법적 질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는 빈부 차이라든가 사유재산제도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웰스의 유토피아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웰스는 가령 살인 범죄를 막으려면, 사람들에게서 타인을 살상하는 권한을 처음부터 빼앗아버리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Wells 67: 33). 다시 말해서 엄정중립적인 형법을 공표하는 일이야 말로 범죄를 예방하는 데 가장 효과 있는 방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에서는 사형제도 그리고 구금 형의 제도가 철폐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한 번 죄를 짓더라도 처형당하거나 감옥에 갇히지는 않습니다. 만일 한 사람이 세 번에 걸쳐 커다란 범행을 저지를 경우, 국가는 당사자를 어떤 섬으로 보내어 그곳에서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조처합니다. 어쨌든 세계국가에서는 범죄는 완전히 근절될 수 없습니다.

 

24. 종교 그리고 자연의 기술에 관하여: 세계국가 사람들은 인간이 선한 존재라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종교란 마치 쾌락 내지 노여움과 같은 자연스러운 무엇입니다. 사람들은 신의 존재가 너무나 복합적이기 때문에 몇 마디 강령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합니다. 어쨌든 세계 국가 사람들은 체제로서의 교회를 거부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종교와 국가의 영향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모던 유토피아에서 종교란 자신의 방향이 어디에 설정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좋은 기준일 뿐입니다.

 

웰스는 예술가로 활약하던 과학자,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뒤러 등과 같은 인물을 이상적 존재로 간주합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은 그 자체 추하고 보기 싫은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탐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게 성급하고도 볼품없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미학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은 웰스에 의하면 자연이라는 기술자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25. 웰스의 세계국가 유토피아: 물론 웰스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이상 사회를 기술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갈등이 없고, 긴장이 없으며, 낭비 없는 사회를 서술하고 싶었습니다. 세계국가는 완전한 국가의 모델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일 수 있습니다. 웰스는 누구든 간에 스스로 자신의 유토피아를 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Erzgräber 126).『모던 유토피아』에서 묘사된 국가의 상은 최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차선책으로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완전한 사회로 향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서의 모델입니다.

 

웰스의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유토피아 사상가들이 민족 국가 유토피아 그리고 연방주의 공동체로서의 유토피아와는 다른, 세계 국가로서의 유토피아 모델을 가리킵니다. (Saage 38f). 제한된 공간, 제한된 공간 그리고 언어에 의해 구분된 장애물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지구와 같은 크기의 행성만이 현대의 유토피아의 목표에 부합될 수 있다고 합니다. 웰스의 이러한 생각은 20세기의 세계적 정황을 고려한 것입니다.

 

사실 국가 권력은 20세기 초에 이르러 너무 막강한 체제로 출현했습니다. 기존의 국가 체제는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국가들은 동일한 민족 내지 동일한 언어로 뭉친 소규모 시스템이기 때문에 세계 전체의 문제를 관할하고, 수많은 조직체를 통솔하며 세계인 전체의 안녕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웰스는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세계 국가의 체계와 크기를 지녀야 한다고 합니다.

 

26. 사회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절충은 가능한가?: 웰스는 세계 국가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차선책으로서의 어떤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사회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서로 절충하여 만든 사회적 시스템을 가리킵니다. 사회는 가급적이면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되, 그 과정에 있어서 시민 사회의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용인하자는 것이 웰스의 지론이었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서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최적의 방식으로 성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모든 타협 내지는 절충이 그러하듯이, 웰스 역시 어떤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둔 국가 구도 역시 절대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비합리적인 것일지 모릅니다. 전자는 대부분의 인간을 끔찍한 방식으로 부자들의 노예로 만들고, 후자는 대부분의 인간을 국가 관리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이성의 방향은 사회주의와 자유방임주의라는 계곡 사이에 위치한 협소한 오솔길로 향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미래의 인간은 식량과 자본, 질서와 건강을 염려해야 할 뿐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자발성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웰스는 말합니다. 이러한 발언에서 우리는 바람직한 사회의 경제적 체제에 관한 웰스의 입장이 테오도르 헤르츠카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