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갇힌 사회의 통로 뚫기

필자 (匹子) 2021. 3. 23. 10:40

1.

잘 지내시는지요? 드물게 당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글 속에는 간간이 오류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도 잘못을 저지르는 데 비하면, 나 같은 무명의 지식인이 범하는 작은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나는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요?

 

그래도 나는 아웃사이더와 인파이터의 정신에 가급적이면 충실하려 합니다.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잘잘못을 따져나가고, 외적으로는 세상의 숲과 나무를 바깥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나의 시도가 성공을 거두는가, 아니면 쓰라린 실패를 맛보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별개입니다.

 

2.

언젠가 나는 감히 남한 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남한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유교주의, 경제적으로는 독점 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남성적 금욕주의, 문화적으로는 씨족 이기주의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폐쇄적 구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남한 사회의 구조는 심하게 말하자면 부분적으로 악성 종양처럼 번져온, 조직폭력배들의 폐쇄적 집단 이기주의에 의해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컨대 국회의원들이 당수를 모시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의 사색당파를 연상시킵니다. 회사원들은 회사가 크든 작든 간에 사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지 않으면, 해를 당한다고 믿습니다. 재벌은 중소기업을 먹고, 중소기업은 소기업을 집어삼킵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절반의 자유를 구가합니다. 높은 지위를 차지한 여성들은 여전히 드물고, 이혼할 때 주로 여성들이 더 많은 피해를 당합니다. 남한의 문화는 마치 팔이 안으로 굽듯이 아는 사람들끼리 조심스럽게 영위됩니다.

 

3.

남한 사회는 -섬나라 일본 보다는 덜하지만- 씨족의 폐쇄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개인은 없습니다. 구성원 모두 가족 그리고 사회의 각종 단체에 속해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컨대 결혼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한에서의 결혼이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지요. 그렇기에 남한 사람들은 별로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너무 가까이 지내므로 갈등을 자초하곤 합니다.

 

남한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조직의 생활입니다. 동창회, 가문의 모임, 학교, 병원, 연구소, 중소기업, 대기업, 등 수많은 단체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개인의 견해를 거의 중시하지 않습니다. 아니, 개인의 견해보다 단체의 견해를 중요시한다고 말하는 게 타당합니다. 이러한 단체들 가운데 개방적 특성을 지닌 것은 드물지요. 그렇기에 남한 사회의 구도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대두된 개인의 자유를 아직 구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폐쇄적 장원의 구조와 닮았습니다.

 

4.

일단 인간 삶을 세포로 비유해 봅시다. 인간 개개인의 존재는 사회 내의 개별 세포와 다름이 없습니다. 개별 세포는 그 자체 독자적이지만, 주변의 세포들과의 유기적 관련성 속에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하나의 세포가 어떤 다른 인접한 세포와 물질을 교류하지 않으면, 그 세포는 조만간 생명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독자적 개체이지만, 타인과의 물질적 정신적 소통이 없으면, 아마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필자가 여기서 문제로 삼는 것은 개별적 세포가 아니라, 세포의 덩어리입니다. 특히 남한 사회를 염두에 둘 때, 세포의 집단 내지 세포의 덩어리는 외부와 어느 정도 폐쇄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세포 덩어리와 다른 세포 덩어리 사이를 연결해주는 조직체가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종양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 조직도 여기서 예외는 아닙니다. 대뇌 속의 수많은 주름들이 어떤 거대한 심리적 신체적 충격을 입게 되면, 주름들 사이에는 뒤엉킨 매듭 (Ballast)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로써 형성되는 것은 악성 종양, 즉 암이라고 합니다.

 

5.

나는 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암의 형성과 발전 등을 세부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악성 종양이 세포 덩어리와 세포 덩어리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전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남한 사회가 중세의 이른바 “폐쇄적 라티푼디움”의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특정 조직은 여러 세포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크든 작든 폐쇄적 구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포와 세포 사이의 소통은 활발하지만, 세포 덩어리 내지 세포 집합체와 다른 집합체 사이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물질이 안으로 침투하면, 조직은 이를 포섭하거나, 아니면 이를 추방시킵니다. 폐쇄적 조직 체제 속에서는 부분적으로 지독한 악성 종양이 번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건강한 (혹은 이상한) 심리 구조를 지닌 사람들은 그러한 끔찍한 (혹은 기이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사표를 제출하던가, “왕따” 당한 뒤 쫓겨나곤 합니다.

 

6.

폐쇄적인 장원 구도의 질서는 그곳의 장 (長)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이 무엇보다도 두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두목이 민주적 태도를 취하면, 그 조직의 분위기는 비교적 민주적으로 화하며, 두목이 포악한 태도를 취하면, 조직 구성원들은 대체로 포악하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남한 사회의 조직들은 부분적으로 마피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가령 조직 내에서 비판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조직 내의 비리와 비밀은 결코 외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수많은 드레퓌스가 속출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폭”들이 활개 치는 폐쇄적 장원으로부터 쫓겨나,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어느 교수가 재단의 혹은 동료 교수의 폭력에 의해서 쫓겨나는가 하면, 어느 회사원이 상사의 압박으로부터 고통당하다가, 회사를 그만 두기도 합니다. 어느 신자들은 신앙 단체의 비리를 지적하다가 몰매 맞고 쫓겨나는가 하면, 어느 노동자는 그들 그룹의 비리를 지적하다가 집단적으로 따돌림 당하여, 사표 쓰고 심리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7.

험난한 세상에서 다치지 않으려면, 그룹끼리 뭉치는 게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해도, 개인 고유한 자아를 저버릴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은 존재 (In-dividuum)”에 해당하는 개인이 더 이상 굴종 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폐쇄적 집단주의를 용인해도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악성 종양이 판치는 씨족 이기주의,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종속 구도를 강요하는 조폭 집단을 해체시킬 수 있을까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하기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중세 장원제도의 붕괴는 주지하다시피 노예들의 장원 탈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을 감시하는 기사 계급이 존재했지만, 도시로 향하여 수공업 노동자로 일하려는 노예들의 열망은 막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더 큰 세상이 그대를 부르고 있도다!

 

8.

문제는 기존 그룹을 자의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서 일탈한 사람들이 바람직한 연대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새로운 연대는 개방 그리고 평등을 기조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느 참여 연대와 같은 정치 세력일 수도 있고, 심리 치료를 위한 작은 모임일 수도 있습니다. 자발적 환경 단체일 수도 있고, 어느 자발적 연합 단체에서 꾸려나가는 대안 학교일 수도 있습니다.

 

친애하는 K, 이제 당신과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더러운 다수로부터 피해당하거나, 폐쇄적 마피아로부터 따돌림 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깥으로 나오는 일이 바로 해방 (Exodus)입니다. 그들이 함께 연대하여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이는 정신적 르네상스의 시작일 것입니다.

 

 

'2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 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 서문  (0) 2021.04.27
처음 투표하게 된 J에게  (0) 2021.03.28
인물 대신 사상을  (0) 2021.03.08
교복 유감  (0) 2021.03.06
패스트푸드 유감  (0) 2021.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