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서로박: 소네트 패러디 (2)

필자 (匹子) 2021. 9. 5. 09:38

: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시는 울라 한 (1946 - )고상한 소네트 (Anständiges Sonett)라는 작품입니다.

 

어떤 고상한 시를

한 번 써 봐” (St. H.)

 

이리 와서 꽉 잡아 난 가볍게

맛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처음엔 세 번

키스해 줘, 기분 좋은 곳에. 입에서 입으로

나를 건드려 줘. 이제 한 번

 

눈앞에서 내 둥근 것들을 돌리고

내가 비밀리에 너의 안으로

뛰어들게 해. 어떻게 몸이 아래로 위로

향하는지 보여줘. 나는 외치다 침묵해.

 

내 곁에 있어. 기다려. 다시 올게

나에게 너에게 그다음엔 아름다운

오래된 노래의 반복 운처럼 완전하게

 

태양 빛 고리를 내 배에다 문질러,

한번 그리고 항상. 나의 눈꺼풀은

그냥 열려 있어. 두 입술 또한.

 

(”Schreib doch mal ein anständiges Gedicht“ (St. H.) // Komm beiß dich fest ich halte nichts/ vom Nippen. Dreimal am Anfang küß/ mich wo’s gut tut. Miß/ mich von Mund zu Mund. Mal angesichts // der Augen mir Ringe um/ und laß mich springen unter/ der Hand in deine. Zeig mir wie’s drunter/ geht und drüber. Ich schreie ich bin stumm. // Bleib bei mir. Warte. Ich komm wieder/ zu mir zu dir dann auch/ ”ganz wie ein Kehrreim schöner alter Lieder“. // Verreib die Sonnenkringel auf dem Bauch/ mir ein und allemal. Die Lider/ halt mir offen. Die Lippen auch.)

 

: 울라 한 역시 소네트를 야유하기 위해서 이 시를 집필했는지 모릅니다. 가령 슈테판 헤름린 (1915 - 1997)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자유시는 딜레탕트의 제어되지 않은 작위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끊어 쓴 산문과 다를 바 없다.울라 한은 자유시를 끊어 쓴 산문으로 평가 절하하는 헤름린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헤름린의 시는 대체로 형식에 얽매여 있어서, 독자는 어떤 갑갑함을 느낄 정도이지요. 그의 방송극이라든가 단편 소설은 그렇지 않지만, 정형의 틀을 강조하는 헤름린의 시편들에는 현대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사고로 향하는 출구가 막혀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울라 한은 이러한 사항을 야유하기 위해서 모토에 헤름린의 말을 인용했군요. 아니나 다를까 울라 한은 야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을 고상한소네트라는 제목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풍자적입니다.

 

: 1연과 제 2연은 다섯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랑의 여섯 가지 요구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성행위의 주체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채롭습니다. 1연의 내용이 전희 (前戯)에 해당한다면, 2연은 노골적인 육체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두 연은 앙장브망의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 1연에서는 행과 행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시간적 간격을 느낄 수 있지만, 2연에 묘사되는 두 육체의 반응 및 사랑하는 방식에는 휴식이 없군요.

 

: , 그만큼 숨 막히고 격렬하기 때문입니다. 3연에서 시적 자아는 사랑과 성행위의 반복과 연속을 갈구합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오래된 노래의 반복 운처럼 완전하게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4연에는 일견 가슴 설레는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열정이 승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지만 마지막 연 1행에서 시적 자아의 감정은 더욱 강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태양 빛의 고리는 낮 시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더욱 강렬하고도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지속적인 행복과 쾌락에 대한 욕구가 사랑에 대한 보편적 욕구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나의 눈꺼풀은 그냥 열려 있어/ 두 입술 또한이라는 의미는 중의적이라고 이해됩니다. 시구는 한편으로는 여성의 개방된 몸을 지칭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방된 여성들의 성적인 자유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전통적 소네트에서 정복될 수 있는 아름다운 대상 내지 성에 민감한 아프로디테로 묘사되었을 뿐, 사랑과 성의 쾌락을 능동적으로 향유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소련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행위는 여성에게도 얼마든지 마치 물 한잔 마시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 (Kollontai: 57). 이로써 콜론타이는 세 가지 사랑의 삶의 양태인 혼내정사, 매춘 그리고 자유연애) 가운데 자유연애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 오늘날 젊은이라면 누구나 자유연애를 언급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나요?

: 당연하지요.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제각기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과의 관련성 속에서 자유연애의 속성을 간파하는 것이지요, 21세기 유럼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싱글의 삶을 영위하며 자유연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19세기 말의 소련에서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콜론타이의 발언을 단순히 여성 해방의 의향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여기서 주어진 가부장주의의 질서에 맞서서 투쟁하려는 전투적 의향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