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2)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필자 (匹子) 2023. 1. 19. 10:45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문헌학적 관점에서 이해되는 명작 (1): 캄파넬라는 무척 영리한 학자였습니다. 감옥에서 수십 년간 영어의 삶을 보내면서도 그는 자연과학, 천문학, 의학, 신학, 윤리학, 법학 등을 연구하였고, 이러한 노력 속에서 약 80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밖에 캄파넬라는 시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그의 철학 시편은 자신의 절망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필된 것이었는데, 오늘날에도 회자될 정도로 신에 대한 믿음과 사악한 인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태양의 나라』또한 감옥에서 집필된 것입니다. 캄파넬라는 오로지 독서와 집필에 몰두함으로써 죽음과 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원고들은 간수들에 의해서 몰수되었으며, 몇 편은 완전히 불에 타서 사라지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어째서 캄파넬라의 글들이 여러 개의 다른 판으로 간행되었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캄파넬라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과거에 집필했던 글을 재구성해야 했습니다.

 

6. 문헌학적 관점에서 이해되는 명작 (2): 『태양의 나라Civitas solis idea republicae philosophiae』는 1623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원래 캄파넬라는 1601년에 집필된 논문 「짤막한 경구로 이루어진 정치학 Politica in aphorismos digesta」을 보완하기 위해서 『태양의 나라』를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때 참고한 작품 가운데 안토니오 F. 도니의 『이성적인 세계Mondo savio』(1552)도 있습니다. 도니의 작품에는 가장 엄격한 평등한 삶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Doni: 205ff). 이를 바탕으로 캄파넬라는 다시 수정된 판본을 1630년에 다시금 간행하였습니다. 이상 국가에 관해서는 이전에 플라톤과 모어에 의해서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 물론 캄파넬라의 작품은 독창성 그리고 강렬하고 색채감 넘치는 묘사에 있어서 플라톤의 『국가』, 모어의 『유토피아』를 압도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모어의 고상한 라틴어에 비해, 캄파넬라의 라틴어 문체는 생경하고 투박합니다. 유머와 아이러니 또한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작가가 오랫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다보니, 미처 독자의 관심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나는, 작은 결함일 수 있습니다.

 

7. 대화체로 기술된 『태양의 나라』: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캄파넬라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모순적인 입장입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자유를 열광적으로 추구하였으며, 거의 광신적으로 질서를 준수하려 했습니다. 가령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황제가 아니라, 교황이 모든 실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시대착오적 판단”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한편 캄파넬라의 진취적 사고를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즉 인민은 고결한 주권으로서의 자기 결정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아직 꽃봉오리조차 피우기도 전에 인민의 자결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항은 캄파넬라의 작품이 대화체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화체의 형식은 독자의 생동감을 부추기기에 충분합니다. 제네바의 선원 한 사람은 어느 기사수도원의 원장에게 자신이 보았던 내용을 세부적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출신의 선원은 어느 날 어느 섬에 당도했는데, 그곳의 원주민에게 체포되어 그곳으로 잠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품은 수도원장이 질문을 던지면, 선원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 태양의 나라와 관료주의의 이상: 여기서 말하는 섬이란 과연 어느 섬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캄파넬라는 타프로바나 Taprobana라고 불리는 섬을 언급합니다. 이 섬은 지정학적으로 오늘날 스리랑카 섬에 해당하는데, 신화적으로 고찰하자면 이전된 지상의 천국과 같습니다. 그 섬에는 신권주의로 다스려지는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가 존재합니다. 여기에는 행정관청이 있는데, 수사들이 모든 행정을 관할합니다. 이들을 다스리는 수장, “메타피지쿠스metaphysicus”는 형이상학적 존재 가치를 지닌 고위수사입니다. 그는 세상의 가장 높은 지혜를 구현하고 이를 실천하는 태양과 다를 바 없지요. 수장이 되는 사람은 출생과 신분에 의해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인품과 덕망을 지닌 자로 나중에 정해집니다. 수장을 보좌하는 사람은 세 사람의 통치자입니다. 이들은 제각기 “권력Fön”, “지혜Sin” 그리고 “사랑Mor”의 영역에서 제각기 능력을 수행합니다. 수장은 이성의 법칙이 기술하는 대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캄파넬라가 수직적 사회구도의 질서, 구상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원뿔 내지 삼각뿔과 같은 계층사회의 시스템을 설계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9. 캄파넬라의 시대비판: 캄파넬라는 17세기의 이탈리아가 근본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노동은 불공평하게 배분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면, 이득을 챙기는 자는 높은 계층의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가령 수공업이 천시당하고 경멸당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은 노예를 부리면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상류 계층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 간에 게으름을 피우며 온갖 죄악을 행하는 유한계급이 되려고 합니다. 빈부 격차는 끔찍할 정도로 벌어져 있는데, 사회적 황금숭배의 분위기는 도덕의 몰락을 초래할 정도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캄파넬라는 다음과 같이 공언합니다. “끔찍한 가난은 인간을 비열하고 교활한 시기심을 들끓게 만든다. 가난한 자는 먹을 것을 마련하려고 세상을 방랑하며, 온갖 거짓을 일삼는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다른 한편 부유함은 인간을 교만하게 변화시키고, 무지와 나태 속에 갇히게 한다. 돈 많은 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모조리 옳다고 확신하는 깍두기가 되어, 남을 무시하고 논쟁만 부추기곤 한다.” (Campanella 86: 136). 사회내의 빈부 격차는 결국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외적인 조건을 허물어뜨리게 합니다. 가령 어느 누구도 농사일, 군 복무 그리고 수공업을 영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정치 시스템 역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능력 없는 귀족이 상류층의 지지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인민에게 온갖 폭정을 자행합니다. 캄파넬라는 무능한 엘리트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어떠한 정의도 구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0. 주어진 현실의 비참함에 대한 세 가지 논거: 캄파넬라에 의하면 세계가 비참함 속으로 나락하게 된 데에는 세 가지 문제점에 기인합니다. 그 하나는 사유재산제도입니다. 사람들이 빈한하고 천하게 살아가는 까닭은 각자 자신의 거주지, 자신의 자식 그리고 아내 등과 같은 사적 소유물 내지 가족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기심을 부추기게 합니다. 사유재산제도가 사회적 질서로 고착된 한 인간은 모두 강도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권력과 재화 그리고 가문을 위해서 타인에게 인색하고, 비열하며, 자기기만을 철칙으로 삼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캄파넬라는 주어진 현실의 비참함이 아담의 원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담의 원죄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신학적 숙명론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캄파넬라는 사회적 차원에서 자식이 아버지 세대를 뒤이어 죄를 되풀이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가령 아버지는 자신보다도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더 나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조처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세대는 좋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하여 성행위의 시간, 장소 그리고 파트너의 선택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아무런 기준 없이 살을 섞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러한 취약점은 자식의 교육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세계는 질서 대신에 우연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무질서가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롭고도 축복받은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주어진 현실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까닭은 세상이 올바른 질서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요동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Campanella 86: 161).

 

11. 세 가지 근본 규칙. 지혜, 권력 그리고 사랑: 상기한 세 가지 사항은 이른바 “지혜, 권력 그리고 사랑”과 위배되는 것들입니다. 캄파넬라는 세계의 무질서, 가치의 전도 그리고 죄악 등을 척결하기 위해서 “지혜, 권력 그리고 사랑”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즉 “캄파넬라는 세 가지의 ‘우선권’인 ‘지혜, 권력 그리고 사랑’을 위한 질서를 강조했다. 이것은 이른바 ‘우연, 경우, 변화’로 일컫는 혼돈과는 대칭되는 것이다. 질서는 적극적인 것으로 이해된 반면, ‘우연, 경우 그리고 변화’는 결국 ‘무(無)에서 동화된 것 a nihilo contracta’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장된 무(無)의 집적체로서, 이를 통하여 신은 세상을 창조한 바 있다. 캄파넬라는 “존재 Ens”와 “태양 Sol”에다 빛을 부여함으로써, 세상에서의 무(無)와 비존재를 ‘유출시켜emanatistisch’ 구출하였다.” (블로흐 2004: 1068). 

 

이 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캄파넬라의 세계관은 언제나 세 가지 유형의 근본 규칙에 의해서 체계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근본 규칙의 영역은 맨 아랫부분에 하나의 커다란 원을 구성하고 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원을 형성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태양의 나라의 수직적 구도는 마치 원뿔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국가와 멕시코의 몬테주마의 궁정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라는 멈퍼드의 주장은 타당성을 지닙니다. (멈포드: 100)

 

12. 배격되어야 하는 세 가지 규칙, 우연 경우, 변화: 캄파넬라는 태양의 빛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을 밝히려 하였으며, 태양신의 에너지를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불어넣으려 하였습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실천되었던 태양 숭배의 종교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혜, 권력 그리고 사랑”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태양의 빛을 받쳐주는 원 속의 삼각대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제각기 “인과성necessitas”, “운명 fatum” 그리고 “조화harmonia”로 확장됩니다. “권력, 지혜 그리고 사랑”에 반대되는 개념들은 “무능, 무지 그리고 증오”입니다. 이것들은 제각기 “우연contingentia”, “개별성casus” 그리고 “운명fortuna”으로 확장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태양 숭배의 정신, 위대한 신으로서의 빛의 개념은 고대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이론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서 “무” 내지 “비존재”는 배격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우연, 경우, 변화”라는 특성 속에 차단되어 있습니다. 캄파넬라는 검은 색을 부정하고, 흰색과 붉은 색을 좋게 여기는 이유는 검은 색이 지니는 무와 비존재의 특성 때문입니다. (블로흐 08: 321).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