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행' (3)

필자 (匹子) 2022. 12. 2. 10:44

5.

 

항구는 알고 보니 폴리카르포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부둣가에는 수많은 물품들이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부분적으로는 난파된 배에서 구출한 물품이었고, 부분적으로는 해적들이 팔아넘긴 물품들이었습니다. 왕국은 처음에는 난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풉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머물면서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페리안드로는 다시 아우리스텔라와 재회합니다. 그동안 페리안드로는 해적의 포로가 되어 힘든 삶을 영위해 왔습니다. 처음에 그는 폴리카르포 왕의 노예로 이곳에 팔려 왔는데, 공주, 신포로자의 도움으로 궁궐의 손님으로 대접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포로자 공주는 주인공의 고결한 눈빛, 늠름한 풍모 그리고 깊은 신앙심에 탄복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고결한 주인공에게 서서히 연정을 품게 됩니다. 다른 한편 아우리스텔라는 궁궐에서 폴리카르포 왕을 알현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때 그미의 아름다운 자태는 마치 백합꽃처럼 황홀하여서, 순식간에 폴리카르포 왕의 연심을 흔들어놓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왕과 공주에게 스스로를 남매지간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신포로자 공주는 아우리스텔라와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과 아버지의 속내를 드러냅니다. 이로써 두 주인공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됩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왕에게 모든 것을 밝히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세 가지 문제가 동시에 출현하여 사람들을 더욱더 당황하게 만들게 됩니다. 첫째로 덴마크 왕자, 아르날도가 폴리카르포 왕국에 나타나서 아우리스텔라와 다시 극적으로 조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자는 그미와의 결혼을 성사시켜달라고 페리안드로에게 이전보다도 더 강한 어조로 청원합니다. 둘째로 순례자 가운데 이탈리아 출신인 춤꾼, 루틸리오는 이곳에서 만나게 된 신포로자를 깊이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공주에 대한 그의 사랑은 로마의 순례 여행을 완전히 포기할 정도로 극진한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이곳의 주민이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는 클로디오라는 남자는 아우리스텔라에 대한 자신의 연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편지를 써서 그미에게 결혼하자고 청했는데, 이 편지의 내용이 공교롭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맙니다. 요약하건대 도합 네 명의 사내아우리스텔라와 결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페리안드로는 질투와 감정의 뒤섞인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공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과 아우리스텔라와의 애정관계를 솔직히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폴리카르포 왕에게 어떠한 오해도 실망도 끼쳐드릴 수 없었습니다. 즉 페리안드로 자신의 본명은 페르실레스이며, 아우리스텔라자신의 애인으로서 순결을 지켜주기로 맹세했다는 사실을 이실직고 합니다. 이때 왕은 그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안타깝지만 아우리스텔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애써 포기하려고 합니다. 신포로자 공주 역시 못내 아쉬워하면서 주인공에 대한 연정을 접은 뒤에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루틸리오를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됩니다.

 

 

 

문제는 폴리카르포 왕의 신하들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마녀 체노티아는 왕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아우리스텔라를 차지하라고 말입니다. 왕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랑으로 인한 이기심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폴리카르포 왕은 드디어 고결한 목표를 위해서 사악한 술수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의 술수는 클로디오를 통해서 페리안드로에게 전해집니다. 난민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왕이 다스리는 지역을 벗어나려고 해안가로 황급히 집결합니다. 왕의 군대들은 이들을 생포하려고 해안가로 달려옵니다. 그러자 난민들은 좁은 골짜기를 지나 작은 섬으로 일단 피신합니다. 작은 섬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부분적으로 수심이 깊은 편이라서 사람들은 하루 중에 불과 몇 시간 육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섬에서 난민들은 레나토라는 사람과 처음으로 만납니다. 레나토는 프랑스 출신의 고결한 사내로서 폴리카르포 궁궐의 궁녀를 오래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평생 궁녀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조국과 가족을 북구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때 자주 차단되는 모든 이야기의 여백을 역치법의 방법으로써 채워나갑니다. 드디어 난민은 로마로 향하는 범선에 승선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 이곳에 남은 사람은 루틸리오 혼자였습니다. 이탈리아의 춤꾼은 이곳에 남아서, 신포로자 공주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요량인 것 같았습니다.

 

 

 

 

 

6.

 

친애하는 C,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시작한 이야기 끝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배는 리스본에 도착합니다. 포르투갈의 항구는 문명화된 도시였으며 기후 또한 온화했습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도시를 묘사하면서 구원의 가톨릭 정신을 다시 한 번 찬양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더 이상 항해하지 않고 육로를 택하기로 작정합니다. 순례자 가운데 섞여 있던 펠리치아나라는 여자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이야기는 작품 속에 하나의 에피소드로서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미는 불행한 이전의 삶을 극복하기 위하여 반드시 로마를 방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에스파냐를 지나 프랑스 남쪽 지방을 거쳐서 이탈리아로 향하기로 결정합니다. 육로를 거치는 그들의 길은 북구 지역에 비하면 비교적 편안한 것 같았습니다. 페리안드로아우리스텔라와 동고동락하는 생활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사랑하는 임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순례자들은 4월의 어느 날 탈라베라 지역을 지나가면서 그곳의 인민 축제를 체험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찬란한 시가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그 외에도 프랑스의 문화사적인 제반 역사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을 지나칠 때 수많은 위험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순례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귀중품을 훔친 뒤에 동행한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세르반테스는 이러한 사건을 소설 속에 가미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드디어 이탈리아의 국경을 넘습니다. 그들은 북부 이탈리아의 대도시 말라노를 지나 루카로 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순례자들 가운데 로마로 향하지 않는 사람들도 속출합니다. 이를테면 카스트루치우스라는 순박한 남자는 이사벨라와 결혼하여 이탈리아 북부 마을에 남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거행함으로써 새롭게 살아갈 선남선녀의 미래를 축복해줍니다. 순례자들 가운데에는 솔디노라는 천문학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별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다음과 같이 예연합니다. 즉 로마에서 어떤 “신비적 합일 unio mystica”이 성사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페리안드로아우리스텔라에게 향해 큰 소리를 지르며 박장대소를 터뜨립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