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3)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필자 (匹子) 2023. 1. 20. 10:17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인간의 세 가지 악덕: 나태, 자만 그리고 이기심: 캄파넬라는 어떤 세 가지 사항을 내세우면서, 이것들을 일반 사람들이 지닌 세 가지 악덕으로 규정합니다. 그것은 나태, 자만 그리고 이기심입니다. 앞장에서 우리는 토머스 모어가 지적한 세 가지 악덕, 나태, 자만 그리고 탐욕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캄파넬라가 탐욕 대신에 이기심을 채택한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견해는 거의 유사합니다. 캄파넬라는 인간의 타락과 죄의 원천이 무조건 아담의 원죄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죄의 원인은 오히려 인간의 의지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고로 인간의 의지는 힘 그리고 지혜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의지가 결핍되면, 무기력함 그리고 무지가 크게 발달하는 법입니다. 바로 이러한 무기력함과 무지가 인간들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선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이성의 힘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합니다. 태양의 나라의 모든 규범은 바로 이러한 인간 이성을 회복하겠다는 근본적 의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인간 삶에서 비이성적 요소가 제거된 올바르고 타당한 사회의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인간의 이성은 회복되고 사람들은 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캄파넬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근본적으로 사유재산제도와 전통적 가족제도에서 비롯한다고 파악하였습니다. 만약 한 나라에서 공유제가 시행되고, 전통적 가족제도와는 반대되는 공동체 생활이 활성화될 수 있다면, 인간의 이기심은 자연적으로 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김영한: 89쪽).

 

14. 네 시간 노동과 사유재산의 철폐: 태양의 나라는 사유재산제도를 철폐하고, 전통적 가족 제도를 파기하고 있습니다. 개별적 인간은 사회 전체의 공동적인 선에 봉사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의 규율이며 질서입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공동체를 결성하여, 사회의 재산을 나누어 갖습니다. 그렇기에 태양의 나라 내부에는 항상 화해와 평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부로부터 무력 침공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힘을 합하여 공동체를 방어합니다. 또한 외부의 인민들이 어느 독재자에게 억압당하고 있을 때 태양의 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무찌르는 일에 직접 가담하기도 합니다.

 

태양의 나라에서는 매일 네 시간만 노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어의 『유토피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하루 여섯 시간 노동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태양의 나라 사람들은 그보다 더 적게 일합니다. 자유 시간에 사람들은 읽기, 토론, 학습, 산책, 육체 단련 등을 행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냅니다. 모든 사람들은 유사시에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수호하며, 평상시에는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살아갑니다. 국가는 누구보다도 재화나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중히 여깁니다. 가령 농부라든가 수공업자들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다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귀하게 대접받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노동의 능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을 존경합니다.

 

15. 노예의 철폐, 감옥과 고문의 철폐 그리고 네 시간 노동의 이유: 모든 사람들은 하루 네 시간만 일합니다. 네 시간만 일해도 풍요로운 수확 내지 물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까닭은 노예 제도가 철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나라에서는 노예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무엇보다도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예제도를 용인한 데 비하면, 캄파넬라는 노예제도 자체를 처음부터 근절시키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모든 사람이 한명도 빠짐없이 하루 네 시간만 노동하면,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노예의 철폐 그리고 감옥의 철폐는 캄파넬라에게서 과히 처음으로 나타나는, 진취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태양의 나라”에서는 절대 고문을 당하지 않습니다. 캄파넬라는 고문제도가 한 인간을 극도의 쓰라림 속으로 몰아가며, 그 자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문당하는 자는 오로지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 무작정 거짓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캄파넬라는 고문이 개개인의 육체에만 통증을 가할 뿐, 진실을 밝히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 있습니다. “태양의 나라”에는 고문도, 교도소도 없지만, 그 대신에 사람들은 엄격한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처형을 감수해야 합니다.

 

16. 무역과 물물 교환: 국경 이내 지역에서는 오로지 재화나 상품의 물물교환만 허용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캄파넬라 사람들이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하여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사람들과의 물물 교환도 드물게 부분적으로 허용됩니다. 캄파넬라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곳 사람들은 공동체 외부에 살아가는 이웃들에게서 어떠한 무엇도 착취하지 않고, 이윤 또한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내의 사람들은 재화에 대해 사리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모든 게 공동으로 주어져 있으므로, 사적인 탐욕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싹틀 리 만무합니다.

 

17. 전통적 가족제도의 철폐: 『태양의 나라』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 제도가 철폐된 사회입니다. 이 점은 모어의 『유토피아』의 경우와 분명히 다릅니다. 가족 공동체에는 조부모 외에도 아버지 어머니, 자녀 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캄파넬라는 가족 구성원의 결속력과 가족제도 자체를 파기했습니다. 대신에 나타나는 것은 여성 공동체입니다. 가족제도가 폐지되면, 사람들은 더욱더 공동으로 협력하게 된다는 게 캄파넬라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성직자가 자신의 친지에 대한 집착이나 지위에 대한 야심을 포기할 때 더욱 신실한 믿음을 지니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이 점은 모어의 공동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모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일정은 해시계에 의해서 처음부터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당국은 사람들의 식생활과 성생활에 관해서 매우 세심한 규칙을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가령 당국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선남선녀를 미리 선택합니다. 21세 이상의 남자, 19세 이상의 여자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당국에 의해서 선택된 젊은 남녀들은 두 개의 거대한 방에 모입니다. 공동체는 점성술에 따라 교접에 적합한 시간을 택합니다. 이 시간이 되면, 두 개의 방 사이의 문이 열리고 남자와 여자들은 제각기 자신의 파트너를 골라, 짝짓기를 위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캄파넬라는 이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남자와 여자들은 각각 두 개의 구분된 방에서 잠자며, 임신을 위한 동침의 시기를 기다린다. 어느 순간 늙은 귀부인이 나타나 두 개의 문을 열어젖힌다. 이 시간을 정하는 자는 의사와 점성술사인데, 이들은 금성과 수성이 태양으로부터 약간 동쪽에 위치하며, 목성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치 시점을 찾는다.” (블로흐 2004: 1068쪽).

 

18. 결혼제도는 없다: 남자와 여자들은 결혼식을 통해서 가족을 꾸리지 않습니다. 태양의 나라에서는 가족 자체가 처음부터 파기되어 있습니다. 점성술에 의한 짝짓기는 임신과 출산을 위한 것입니다. 후손을 잇는 문제는 국가를 경영하는 일과 직결되므로, 개인의 결정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고의 자질을 지닌 남자와 여자들이 최적의 시점에 결합하여 우량아를 낳게 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임무라는 것입니다. 고위 공직자 내지 학자들은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대체로 성충동이 약해서 허약한 아이를 탄생시키곤 합니다. 따라서 학자들에게는 천성적으로 활기 넘치고 쾌활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짝짓기의 대상으로 적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국에 의해서 선택되지 않은 자들은 점성술에 입각한 짝짓기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성을 즐기려는 자들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불임남녀 내지 남창 혹은 창녀와 성관계를 맺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상기한 점성술의 규칙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캄파넬라: 193).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사항이 있습니다. 상기한 방법과 같은 남녀의 동침을 통해서도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여자는 다시 몇 번의 동침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그래도 불임일 경우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여성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여자는 생식회의나 식당 그리고 사원에서 어머니가 된 여자로서의 명예스러운 대우를 못 받게 됩니다. 이러한 조처는 여자가 처음부터 쾌락을 위해서 일부러 불임을 자청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