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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프리쉬의 안도라

필자 (匹子) 2017. 7. 14. 11:05

막스 프리쉬 (1911 - 1991)의 극작품 「안도라 Andorra」는 1946년 자신의 일기에서 맨 처음으로 산문 작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작가는 다섯 번이나 수정한 뒤 1961년에 비로소 작품을 완성하였고, 1961년 11월 2일에 취리히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었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한마디로 (마치 미국의 작가, 밀라드 램플 (M. Lampell, 1919 -?)이 극작품 "장벽"에서 다룬 바 있는) 반유대주의에 관한 것입니다. 램플이 바르샤바 게토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냈던 유대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제한적으로 기록한 반면에, 막스 프리쉬는 어떤 특정한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동시대인들에게 유태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사회적 편견의 문제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하얀” 안도라는 “검은 자들”의 공격에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소년 안드리가 살고 있습니다. 안도라에서는 안드리에 관한 소문이 서서히 퍼집니다. 소문에 의하면 안드리는 유대인이었는데, 검은 자들은 언젠가 하얀 안도라를 공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교사였던 칸은 안드리를 구제하여, 마치 자기 아들처럼 키웠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안드리는 불륜에 의해 태어난 사생아이며, 칸의 아들입니다.

 

처음에 안드리는 목수 일을 배웁니다. 선생인 목수는 안드리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그를 심하게 나무랍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자는 다른 시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자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극작품에서는 군인이 한 명 등장하는데, 그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에 등장하는 고수장과 같은 유형의 인물입니다. 군인은 소년을 아주 심하게 괴롭힙니다. 이때 안도라에서는 폭력이 법을 앞서고 있습니다.

 

고루한 허영심을 지닌 의사는 심지어 안드리를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안드리의 대부는 안드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너 자신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키르케고르) 대부는 안드리를 전혀 도와주지 않습니다. 안드리의 대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안드리는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견에 의해 차단된 채 살고 있습니다.

 

안드리는 바르블린이라는 소녀를 사랑합니다. 그미는 자신의 의부인 칸의 친 딸입니다. 그미는 바르블린의 손을 붙잡으려 하나, 이러한 시도는 거절당합니다. (실제로 두 남녀는 의붓 남매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안드리를 철저하게 “따돌림”시키게 되었을 때, 안드리는 어떤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른 인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는 피치 못할 파국이 도래하게 됩니다. 검은 자들이 안도라를 점령했을 때, 안드리는 실제로 유대인으로 몰려 숙청의 장소로 끌려갑니다. 그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며, 바르블린은 거의 미친 듯한 동작으로 도시에 흰 색 페인트를 칠합니다. 그때 그미는 안드리가 남긴 신발 한 짝을 바라보며, 그가 돌아오기를 절망적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막스 프리쉬는 안드리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람들을 증인석에 불러내어서, 과거의 사실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대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자신의 어깨만 으쓱거릴 뿐입니다. 극작품을 대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즉 극작가 프리쉬는 스위스 사회 내에 존재했던 혹은 존재하는 구체적인 반유대주의를 극복하려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편견으로서의 반유대주의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극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자기 동일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프리쉬 문학이 전체적으로 추구하는 모티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도라」에서는 유대인 문제 그리고 자기 동일성의 문제는 혼란스러운 방법으로 뒤섞여 있는 셈입니다. 안드리는 처음부터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 의해 유대인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가령 막스 프리쉬는 그의 "일기 1946 - 1949"에서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어떠한 상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성서의 구절을 인용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성서 구절은 극작품 「안도라」의 핵심적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에 대한 편견 문제는 여기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유대인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매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편견을 생각해 보세요.

 

작가는 정치적 상황 그리고 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명기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그 자체 암시적입니다. 그는 유럽 내에서의 유대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대중 심리학적으로 일반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대한 미움을 낳게 하고, 어떤 비극을 초래하게 만든다는 점 말입니다. 예컨대 안드리는 결국에 가서는 주위의 편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의식 내지 자기 동일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작품은 편견이라는 현상 그것도 일반 대중이 느끼는 편견의 현상이 주어진 사회에서 어떠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기 피란델로 (Pirandello, 1867 - 1936)의 문학을 연상하게 합니다. 피란델로의 문학 작품 속에서 개개인은 현상과 존재 그리고 광기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다가 급기야는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는 모습을 집요하게 파헤친 바 있습니다. 특히 그의 극작품 「여섯 사람은 한 작가를 찾고 있다. Sei personaggi in cerca d'autore」 (1921)라든가 철학자 파스칼의 자아 분열된 모습을 그린 작품 「마티아 파스칼 Il fu Mattia Pascal」 (1904)에서 바로 그러한 주제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