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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쾨펜의 삼부작 소설들

필자 (匹子) 2017. 7. 22. 14:37

 

친애하는 H, 오늘은 당신을 위해서 현대 소설 삼부작을 다루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볼프강 쾨펜 (Wolfgang Koeppen, 1906 - 1995)의 “잔디 속의 비둘기”, “로마에서의 죽음” 그리고 “온실”이 바로 세 편의 소설입니다. 볼프강 쾨펜은 1906년에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마리 쾨펜이라는 여자였는데, 1906년 그라이프스발트에서 아들을 잉태하여, 혼자 그를 키웠습니다. 쾨펜의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한 안과 의사였으나, 마리 쾨펜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습니다. 쾨펜의 아버지는 기인이며 몽상가로서, 결혼 생활 자체를 저주했습니다.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단 한번 살을 섞었다는 이유로 결혼식을 올려야하는 것은 그 자체 굴욕”이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볼프강 쾨펜은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으며, 어머니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어머니는 바느질 그리고 극장의 프롬프터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제 소설 “잔디 속의 비둘기” (1951)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쾨펜은 소설 세 편으로 전후 독일 문단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작가는 되블린 (Döblin) 도스 파소스 (Dos Passos) 등이 사용한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고, 조이스 (Joyce)의 내적 독백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바 있습니다. 볼프강 쾨펜은 모자이크 방식의 장면을 통하여 전후 독일의 현실을 멋지게 형상화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작품은 1948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뮌헨을 배경으로 합니다.

 

 

 

친애하는 H, 당신은 한계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당신은 훈련소의 생활을 떠올리면 되겠지만, 여 학우들은 3일 굶어보지 않아서, 배고픔의 고통을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주인공은 살을 에는 듯한 굶주림의 고통을 느낍니다. 거의 모든 건물이 폭격에 폭삭 내려앉은 지 3년이 되었지만, 건물들은 아직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물이 부족하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자체가 여전히 고달프기 이를 데 없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일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어느 교사는 군인으로 징집되지 않으려고 마약을 복용하다가, 이에 찌들어 살아갑니다. 어느 의사는 헌혈하고 받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도처에서 아비규환의 외침이 가득하지만, 세상은 마치 눈먼 채 멀리서 수수방관하는 신처럼 무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영화배우 알렉산더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동안에, 힘이 넘치는 그의 아내, 메살리나는 관능적인 파티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상상 공간 속에서 그미는 세 명의 멋진 남자의 품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세 명이 차례대로 구애하지만, 그미는 어느 남자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이렇듯 그미는 삶의 무의미함을 성욕의 충족으로 때우려고 생각합니다. 그미는 시간이 남아돌아도 딸을 보모에게 맡기고 바람을 피웁니다. 신앙심으로 가득 찬 보모는 메살리나의 딸이 “성범죄로 태어난 아이”라고 규정하며, 신에게 인도하려고 합니다.

 

 

 

작가 필립은 자신의 집에 대해 갑갑함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영역이 너무나 협소하여,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하소연하곤 합니다. 그는 에밀리아라는 여자와 가끔 살을 섞음으로써, 공허함을 떨치려 하지만, 그미 역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에밀리아는 부모의 유산인 보석 물품들을 헐값으로 팔아버릴 정도로 가난합니다. 내 코가 석자라고, 타인을 배려할 심리적 여유라고는 그미에게 조금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미국인 워싱턴 프라이스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술집을 경영하는 일입니다. 최근에 자신의 독일 애인 카를라가 직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미는 흑인과 사귄다는 이유로 술집의 일자리를 빼앗겼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유색인이든 백인이든 아무 상관이 없을 정도로 인종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다. 프라이스는 카를라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자신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면, 그미는 언제나 자신에게 머물리라고 확신합니다.

 

 

 

소설은 두 개의 장면 속에서 뒤엉킨 채 아무런 핵심적 사건 없이 여러 인물들을 지엽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메리카 하우스에서 개최된 영국의 대중 시인, 에드윈의 시 낭독회이며, 다른 하나는 떠들면서 술 마시는 독일인들로 가득 찬 거대한 맥주홀입니다. 하인으로 일하던 요셉은 흑인 병사 오디세우스 카톤의 뒤를 개처럼 졸졸 따라 다니며 술을 얻어 마시다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맥주 마시던 사람들은 카를라의 아들을 요셉의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어느 누군가가 카를라의 아들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러나 카를라의 아들은 정작 요셉을 죽인 적이 없었습니다. 동성연애자 에드윈은 밤에 산책하다가, 이러한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습니다.

 

 

 

필립은 미국의 여선생 케이트를 알게 됩니다. 케이트는 에드윈의 문학 작품에 열광하는 여자였습니다. 시 낭독회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함께 호텔에 투숙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필립은 케이트를 통해서도 자신의 갑갑한 환경, 자신의 제한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케이트는 필립에게 결별을 선언합니다. 떠나기 전에 그미는 오래된 보석 하나를 창가의 벤치에 놔둡니다. 그것은 그날 오후 에밀리아가 가짜라고 화를 내면서 무심결에 케이트에게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보석은 거짓된 피상적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자정이 다가오자 교회 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면 하루가 다시 지나가고 새로운 하루가 찾아옵니다. 수많은 군상의 두려움과 희망은 다시금 시간의 흐름에 묻혀서 사라지고 또 다른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엄습합니다. 친애하는 H, 소설이 어떠했는지요? 쾨펜은 자신의 소설 속에서 50년대 초의 인간 군상 그리고 그들의 출구 없는 삶의 양태를 그대로 보여주려고 시도했습니다. 쾨펜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의 내용에 대해 어떤 거부감을 느낍니다. 어쩌면 쾨펜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거부감을 유도하려고 처음부터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는 뒤이어 나타나는 소설 속에서 다시금 반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