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자이프트의 유토피아 이론

필자 (匹子) 2021. 9. 16. 11:28

페르디난트 자이프트는 1972년에 『유토피카. 과거로부터 투시한 미래의 상』을 발표한 뒤 2001년에 개정판을 간행하였다. 그의 관심분야는 르네상스와 중세에 출현한 유토피아의 사고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유토피아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유토피아를 형성시키는 기본적 조건은 주어진 시대를 뛰어넘는 어떤 반대세계를 구상하는 일이다. 둘째로 유토피아는 고립되어 있다. 유토피아의 사회상은 주어진 세상과는 반대되므로, 세부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이며 고립된 특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는 플라톤에서 오웰까지 이어지는 사회 유토피아의 공통되는 특징이라고 한다. 유토피아가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독자성을 표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대부분의 유토피아 공동체는 자이프트에 의하면 계획경제를 지향한다. 돈은 철폐되고, 사치는 금지되고 있다.

 

넷째로 대부분의 사회 유토피아는 도농 교류를 위해서 폭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노동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의 의무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유토피아는 공산주의의 생산 방식을 최대한 활용한다. 다섯째로 유토피아 사회는 평등을 중시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은 평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사회와 국가 전체의 다양한 계획을 위해서 여러 기관이 존재하는데, 이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계층적 구도가 자리할 수밖에 없다. 엄격하게 구분된 계층 구분을 통해서 주로 세 가지 단계의 질서가 성림되고 있다.

 

여섯째로 유토피아 공동체의 사람들은 내적 삶에 있어서 주로 금욕을 지향한다. 가족은 가부장주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가장 작은 규모의 핵과 같다. 사람들은 성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개인은 파트너의 선택 시에 완전히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 생활은 개인의 고유한 의지에 의해서 영위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이용가치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로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유토피아는 전체주의적이고 반-개인주의를 추구한다. 따라서 중시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치적 특성이다. 여덟째 유토피아 공동체는 질병, 가난, 범죄 그리고 전쟁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구성원의 건강, 사회 전체의 부와 안녕을 도모하며, 평화로운 삶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로 유토피아는 실제 현실에서의 완전한 실현으로부터 전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그 이유는 유토피아의 구상안이 스스로 변용되지 않은 채 실제 정치에 있어서 처음 그대로 대입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이프트는 특히 중세의 유토피아를 천착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1. 종교 개혁 프로그램으로서의 유토피아, 2. 선택받은 자로서의 기독교 유토피아, 3. 철학자들의 유토피아,

 

첫째로 자이프트는 블로흐가 다룬 바 있는 천년왕국설의 내용을 추적하면서, 작은 기독교인의 저항의 불씨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알프레트 도렌이 추구한 바 있는 갈망의 공간 내지 갈망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가 내용상의 일치점을 지닌다고 해명하고 있다.

 

둘째로 수동적 천년왕국설은 무엇보다도 내세의 가능성을 추구한 반면에, 급진적 천년왕국설 속에 담긴 메시아사상은 실제 현실의 개혁과 혁명을 도모해 나갔다고 한다. 이는 뮌처와 재세례파 사람들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자이프트는 블로흐처럼 급진적 천년왕국의 견해를 이상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뮌스터의 재세례파 운동에 사회 혁명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셋째로 자이프트는 새로운 사회에 관한 쿠자누스, 마키아벨리 그리고 코메니우스의 구상을 세밀하게 추적해나간다. 쿠자누스는 가톨릭 사상 속에서 정치 체제의 기본적 초석을 발견하는데, 미래의 조화로운 세계의 틀은 가톨릭 사상 속에 이미 내재해 있다고 한다. 코메니우스의 학문 역시 유토피아의 사상으로 이해되는데, 그의 교육학은 세계 혁신 그리고 세계의 구원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유토피아를 하나의 완전한 정태적 이상으로 설정하지 않고, 사회 변형의 위한 전략으로 이해한 사실은 기억해둘만하다.

 

상기한 관점에서 자이프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즉 유럽 사람들은 12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으며, 그 이후에 비로소 나름대로의 전통을 형성하고, 중세 고유의 세계관을 도출하고 고유의 세계관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12세기 이후에는 사회적 기술적 혁신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도시, 새로운 대학 그리고 새로운 지배 형태 내지 새로운 경제적 생산양식이 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자이프트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었으며, “우리의 현대 시대”에 관한 신뢰감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자이프트의 유토피아 개념은 국가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입장은 크리스만스키, 슈봉케 등의 경우와 별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 안타까운 것은 오웰 이후에 출현한 문학 유토피아가 그의 연구 영역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련 더 나은 사회를 갈구하는 주체의 갈망은 블로흐에 의하면 천년왕국설의 메시아의 기다림과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의 모델이 아니라, 유토피아의 성분에 해당하는데, 이는 모어 이후의 문학 유토피아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참고문헌

 

- Seibt, Ferdinand (1985): Utopie als Funktion abendländischen Denkens, in: Wilhelm Voßkamp (hrsg.), Utopieforschung, Bd. 1. Frankfurt a. M., S. 254 – 279.

 

- Seibt, Ferdinand (2001): Utopica. Zukunftvisionen aus der Vergangenheit, aktual. Neuausg., Mün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