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풍케의 유토피아 이론

필자 (匹子) 2021. 9. 2. 11:13

한스 귄터 풍케 (1940 – 2015)는 주로 17세기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유토피아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이다. 특히 퐁트넬의 『아자오 섬 이야기』에 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그 학문적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가령 퐁트넬의 유토피아는 풍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1. 퐁트넬의 유토피아는 두 가지의 현실 비판이라는 맥락을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작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가상적 독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가리킨다. “문학 유토피아라는 장르의 본질적 특징은 작가가 처한 세계 그리고 작가에 의해 떠올린 독자의 세계와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2. 프랑스의 유토피아는 유신론적, 혹은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신랄하게) 기독교 종교를 비판한다. 3. 그렇기에 미덕과 도덕은 때로는 종교와는 무관하게 설계되어 있다. 예컨대 바람직한 도덕적인 삶은 종교를 통하지 않고도 가능한 무엇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토피아는 주어진 현실과는 반대되는 이상 내지 양자택일의 특성을 드러낸다.

 

4. 특히 퐁트넬의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 등의 고전적 유토피아의 전통과 결부되어 있다. 5. 그것은 직접적으로 현실의 변화를 추진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규범적인 기능을 지닌다. 이를테면 프랑스 초기 계몽주의의 유토피아는 주어진 사회적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현실을 문제 삼으려는 작가의 의향을 담고 있다. 이로써 독자들이 주어진 사회 문제를 비판할 수 있도록 자극하려고 한다. 6.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유토피아의 국가 설계란 실현 불가능하다.”라는 안티 유토피아의 논거는 사실로 인정받을 수 없다. 7. 프랑스 계몽주의의 유토피아에서 발견되는 것은 계몽주의의 정치적 철학적 테마들, 이를테면 무신론, 물질론, 절대주의 비판 등이다. 상기한 일곱 가지 명제를 요약한다면, 풍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즉 유토피아는 역사와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며, 언제나 제각기 주어진 시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풍케는 퐁트넬의 『아자오 섬 이야기』에 대한 테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퐁트넬의 이상 국가는 문학 유토피아의 장르를 위한 규범적 특징으로서 작가 그리고 독자가 염두에 둔 시대적 관련성을 보여준다. 퐁트넬은 계몽주의의 의도로써 루이 14세가 다스리는 프랑스 절대주의 왕국과는 정반대되는 무신론의 공화국을 설계하고 있다. 이곳의 시민들은 연방주의 내지 간접 민주주의로 채택된 국법 그리고 농업 공산주의의 경제적 질서 하에서 정치적 법적으로 그리고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평등을 누리며, 자생적 도덕의 원칙 하에서 어떤 도덕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부패한 기독교 국가의 사회적 삶과는 전적으로 대비되는 무엇이다.”

 

물론 아자오 섬에 노예 제도가 존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물품의 생산이 오로지 노예들의 노동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밖에 아자오 섬에서는 원주민 노예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자유에 대한 이들의 욕망이 아자오의 사회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크지는 않다. 흔히 보수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은 퐁트넬의 유토피아가 역사와는 무관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풍케는 이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거로 반박한다. 그 하나는 퐁트넬 유토피아가 지니고 있는 내적인 역동성이며, 다른 하나는 퐁트넬의 유토피아가 경험적 현실에서 드러나는 주어진 전통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가리킨다. (Funke 1982 II, 611. 622).

 

풍케는 유토피아의 개념과 기능에 있어서의 네 가지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첫 번째로 16세기 17세기에 가상적 이상 국가의 메타포로서의 유토피아의 발전 단계가 언급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유토피아의 개념은 유럽 지식인들의 토마스 모어의 활발한 수용에서 드러난다. 이에 비하면 문학적 장르로서의 유토피아는 토마소 캄파넬라 및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토피아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17세기의 여행 유토피아에서 계승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로서 풍케는 유토피아의 장르의 표현이 모호한 정치적 개념으로 발전되었다고 언급한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에 이르러 유토피아는 어떤 정치적 특성을 드러내었다. 이를테면 피에르 베일 Pierre Bayles의 백과사전 Dictionaire (1702)에는 베라스의 유토피아에 관한 사항이 게재되어 있다. 모렐리의 『자연 법전』에서 드러나듯이 유토피아는 국가의 입법을 위한 설계로 활용되었으며,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부록』이라든가 메르시에의 『서기 2440년』에서 나타났듯이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시간화 내지 역사철학의 관점에서 인식되는 완전성의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가 18세기 후반부부터 정치적 이념의 틀로서 급진적으로 이해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 계약 이론의 틀에서 벗어나, 국가 설계를 위한 규범적 기능을 더욱 첨예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 단계로서 유토피아는 19세기의 시점과 관련되는데, 풍케의 주장에 의하면 두 번째 단계의 모호한 개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폄하의 정치적 사회적 투쟁의 개념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이를테면 초기 사회주의와 시민계급 사이의 투쟁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유토피아의 개념은 19세기에 이르러 부정적 의미의 투쟁 개념 내지 비난의 용어로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 중산층의 소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는데, 이로 인하여 유토피아의 개념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다. 물론 19세기에 유토피아의 개념은 의미론적 다양함을 포괄하고 있었다고 한다.

 

네 번째 단계로서 풍케는 20세기의 유토피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세 번째 단계의 유토피아의 비난 섞인 정치적인 개념은 20세기에 이르러 네 번째 단계인 학문적 전문 용어로서의 긍정적 개념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네 번째 단계의 유토피아에 관한 풍케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비판당할 수 있다. 즉 학문적 다양한 원칙에서 나타난 유토피아의 용어는 여전히 명징하게 이해되지 않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터무니없으며, 여전히 비현실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유토피아는 동구 사회에서는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 된 바 있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언급한 풍케의 유토피아 개념과 기능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10 가지의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풍케가 언급한 유토피아 개념의 열 가지의 변화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변화과정으로서의 유토피아 개념의 열 가지 사항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인과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우연의 개입으로 인한 병렬적 연결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들이다.

 

(1) 1516년부터: 책, 섬 모어의 국가, (2) 17세기, 18세기: 이상 국가 혹은 어느 가상적 장소에 대한 지정학적 비유, (3) 18세기: 문학의 장르의 표현, (4) 18세기 말: 어떤 실현될 수 없는 개혁 이념을 위한 모호한 정치적 개념 (5) 19세기: 정치적 투쟁 개념,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의 동의어 혹은 반의어, (6) 19세기 후반: “학문적 사회주의”의 폄하된 단계로서의 초기 사회주의, (7) 20세기 초: 만하임이 언급한 바 있는 성장하는 계급의 혁명적 의식, (8) 20세기 초: 란다우어가 생각한 혁명, (9) 20세기 중반: 포퍼가 생각한 전체주의, (10) 20세기 중반: 블로흐가 생각한 과정에 합당한 구체적 유토피아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요약하건대 풍케는 17, 18세기 프랑스 유토피아의 연구를 중시하다가, 20세기 전후반부의 다양한 유토피아의 변화 과정을 명징하게 분석해내지는 못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의 형태로써 어떤 자기비판의 기능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찬란한 현실의 갈망의 상이 아니라, 어떤 끔찍한 경고의 상으로서의 문학적 현실을 생각해 보라. 자먀찐, 헉슬리, 오웰 등의 작품은 디스토피아 문학에 대한 볌례가 될 것이다.

 

나아가 20세기 후반부부터 출현한 무정부주의, 여성 환경 평화 운동도 유토피아의 사고의 확장으로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우리는 20세기 전체주의 사회 속의 유토피아 개념이 복합적 관점에서 다양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특히 한 가지 사항을 생략할 수 없다. 20세기 후반부부터 무정부주의의 소규모 공동체 운동은 더 이상 구상으로 남아 있지 않고, 실제 현실에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마르틴 부버가 1967년에 생각해낸 이스라엘의 거주 공동체라든가, 오엔 푸리에 등이 숙고했던 생태 공동체 운동 역시 유토피아의 개념의 기능 변화로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 Funke 1982A: Funke, Hans Günter, Studien zur Reiseutopie der Frühaufklärung: Fontenelles Histoire des Ajaoiens, Teil I, Heidelberg 1982.

- Funke 1982B: Funke, Hans Günter, Histoire des Ajaoiens. Kritische Textedition mit einer Dokumentation zur Entstehungs-, Gattungs- und Rezeptionsgeschichte des Werkes Teil II, Heidelberg 1982.

- Heyer, Andreas: Der Stand der aktuellen deutschen Utopieforschung, Band 1, Hamburg 2008.

- Koselleck, Reinhart: Die Verzeitlichung der Utopie, in: Wilhelm Vosskamp (hrsg.) Utopieforschung, Bd 3, Frankfurt a. M 1985, S. 1 – 14.

- Trousson, Raymond: Voyages aux pays de nulle part. Histoire littéraire de la pensée utopique, 3 Aufl. Brüssel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