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하베만의 "내일, 갈림길에 선 산업 사회"

필자 (匹子) 2021. 9. 27. 11:05

로베르트 하베만의 저서,『내일. 갈림길에 선 산업사회Morgen. Die Indurstriegesellschaft am Scheideweg. Kritik und reale Utopie.』(1980)는 1976년부터 1980년 사이에 집필된 것입니다. 이 책은 유토피아의 토론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정치적 유토피아 그리고 물질 이후의 시대의 문제점을 서로 관련시키는 동독 최초의 문헌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20세기 후반의 실제 정치의 이슈를 구체적으로 다룰 뿐 아니라, 70년대에 출현한 포스트 모던한 유토피아 토론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하베만은 이 책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염두에 두고 유토피아의 주제 하나로 묶어서 해명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베만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자신이 처한 동독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루는 관점은 여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가령 1.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 2. 여성의 역할, 3. 사회주의의 토대 하에서의 민주주의를 관철시키는 일, 4. 국가 기관의 사회주의를 소멸시키는 작업, 5. 자본주의의 위기 현상, 6. 핵무기 시대에서의 양대 블록의 갈등 등이 바로 그러한 관점들입니다.

 

둘째로 하베만은 주어진 현재의 현실에 대해서 비판만 가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이고도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특히 하베만은 조합 중심의 코뮌 사회주의 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만인의 자기 개발 그리고 만인의 해방된 삶을 강조하면서, 코뮌의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베만은 유토피아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역동적인 힘을 찾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유토피아의 사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베만은 유토피아의 공간을 목표적인 전망으로 삼을 뿐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활용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령 그는 구동독에서 즉각적인 개혁이 행해져야 한다고 강도를 높여서 주장합니다. 하베만에 의하면 20세기 후반의 시기에 학문과 기술의 발전은 숨이 막힐 정도로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은 자연 파괴의 희생양이 될 뿐 아니라, 범죄의 희생양으로 서성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인류는 유대인 학살,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 인종 학살 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불과 소수의 인간은 온갖 사치와 풍요로움을 질기고 있는 반면에, 제 3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음을 하베만은 지적합니다.

 

 

하베만은 책의 후반부에서 어떤 가상적 유토피아의 사회를 놀라울 정도로 명징하고도 객관적으로 서술합니다. 유토피아는 하나의 가상적 공간입니다. 하베만과 그의 아내 그리고 여섯 아이들은 유토피아를 방문하여, 도착 직후부터 그곳의 여러 가지 기관을 시찰합니다. 새로운 땅은 지반 분권의 체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해방된 삶을 맛보고 있으며, 자연과학의 기술은 생태계의 문제들을 이미 해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평등하게 살아갑니다. 이곳에서는 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수용됩니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생활하는 셈입니다. 문화와 문명의 토대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묘사는 조지 오웰 이전의 정치적 유토피아의 설계를 방불케 합니다. 개인은 자신이 처한 환경 내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은 더욱 훌륭한 인성을 발전시켰으며,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베만의 미래 속에서는 만인이 예술가로 활동할 정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오늘날 인간의 수명의 두 배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하베만이 설계한 물질 이후의 삶의 공동체는 생태적 사고에 입각한 현대의 수많은 코뮌 공동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특히 우리는 기술의 활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술의 위험한 부분, 핵과 관련된 과학 기술 등은 가급적이면 축소화시켜 활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않으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물자의 소비를 줄이면서 생활합니다. 모든 물건은 필요한 만큼만 충족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가 현대적 기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베만의 유토피아에서는 공장들이 새롭게 변화되어 지하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공장은 거의 자동화되어 있어서 인간의 참여 없이도 자발적으로 수행됩니다. 유토피아의 문화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공동체의 살림을 위해서 영위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인간을 지배하는 국가의 체제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 기관은 파기되었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강제적 법 규정 역시 철폐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생산 조합이라든가 협동조합이 과거의 정치 경제의 체제를 담당합니다. 모든 것은 협력의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연구 단체라든가 아이들의 마을 등이 이에 대한 예입니다. 동시에 과거의 규범적 규칙 등은 이미 파기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종교 기관도 철폐되어 있습니다.

 

하베만은 분단의 시대에 반체제 인사로서 억압을 당하던 상황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조합 사회주의의 체제를 선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예견만으로도 그의 사고는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베만의 설계에 취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저자가 단순한 필연성의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은 마르크스주의의 독단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를테면 하베만은 미래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가능성으로 재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묵시록의 관점에서 유토피아의 가능성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과도기로서의 중간 단계를 추호도 용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단선적인 확신이 차제에 나타날 수 있는 디스토피아의 출현 가능성에 관한 언급을 사전에 차단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