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3)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필자 (匹子) 2019. 6. 8. 11:42

(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11. 과학 기술을 중요시했지만, 기술 유토피아로 못박을 수는 없다: 흔히 말하기를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정치적 의미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과학 기술 유토피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베이컨은 과학 기술의 영역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사회적 형태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이컨의 작품에서는 일반 대중의 바람직한 사회적 삶이 상세하게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관심사는 일견 오로지 상류층의 바람직한 삶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이컨은 학문 공동체로서의 “솔로몬 연구소”에 관해서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베이컨은 전문 과학자로서의 엘리트의 연구에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노동자들의 일감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따라서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상류층 관료주의의 유토피아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12. 시대 비판: 프랜시스 베이컨의 시대비판은 미리 말하자면 사회의 전체적 빈곤, 빈부 차이, 사치 풍조, 과도한 세금, 사회적 방종 등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됩니다. 베이컨은 사회 전체의 궁핍함, 빈부차이의 극복 그리고 상류층의 사치 풍조 등에 대해 깊이 고뇌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빈부 차이라든가, 사유재산 제도 등을 명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사회 전체의 부를 도모하고, 상류층의 사치 풍조를 없애며, 일반 사람들의 세금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나아가 베이컨은 당시의 도덕적 혼란에 대해서 매우 커다란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홍등가를 찾아다녔습니다. 이로 인하여 매춘 사업은 근절 내지 완화될 수 없었습니다. 베이컨은 결혼 제도가 실제 현실에서 거의 유명무실한 의미를 지닌 데 대해 개탄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일부일처제를 강하게 부르짖는데, 이것은 작가의 정치적 도덕적 보수성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오히려 17세기 영국 사회의 퇴폐적인 사회 분위기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13. 아틀란티스와 새로운 아틀란티스: 작품의 제목인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오래 전에 대서양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하는 전설적인 섬, 아틀란티스와 관련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플라톤이 자신의 대화체의 저서 「티마이오스」 그리고 「크리티아스」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베이컨은 -플라톤과는 달리-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을 “오래된 아틀란티스”라고 이해했습니다.

 

「크리티아스」에 의하면 아틀란티스는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광산업이 매우 번창한 대륙이었습니다. 수많은 동식물이 존재했는데, 심지어는 그곳에 코끼리도 살았다고 합니다. 토양이 비옥해서, 사람들은 가을이면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였습니다. 왕들은 막강한 폴리스를 구축하기 위하여 도로를 닦고, 궁궐을 지었습니다. 사원이나 신전 역시 이와 병행하여 웅장하게 건설되었지요. 심지어는 운하도 만들어졌는데, 그 길이가 10킬로나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권력자의 오만과 탐욕에 있었습니다. 제우스신은 이러한 오만과 탐욕을 징벌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의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기원전 9570년에서 8570년경의 사건이라고 기술하는데, 이는 후세의 연구에 의하면 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이인식: 157f).

 

대서양 아래로 가라앉은 전설적인 섬은 실용주의의 경향을 지닌 베이컨에게는 관심 밖의 사항이었습니다. 당시 프랜시스 베이컨은 에스파냐 출신의 신부인 라스카사스Las Casas를 통해서 새로운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에 관한 소식을 접했고,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의사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 Girolamo Fracastoro를 통해서 신대륙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전염병, 천연두, 홍역 그리고 매독 등에 관한 정보를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14. 남태평양의 섬: 베이컨이 사변적으로 추론해낸 “오래된 아틀란티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로부터 약 2000년 전에 남북 아메리카는 당시보다 훨씬 큰 대륙이었으며, 그곳의 고대 사람들은 막강한 부와 권력을 과시하며 세계의 여러 국가를 상대로 무역을 행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호화로운 물질적 이득으로 인하여 나태하고 오만해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른 지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군함을 보냈습니다. 바로 이때 그들의 군함은 벤살렘 섬 출신인 알타빈이라는 장수 의하여 모조리 격퇴되었습니다.

 

그밖에 오래된 아틀란티스는 지진에 의한 게 아니라, 대 홍수에 의해 일부 몰락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으로 인해 대홍수라는 끔찍한 파국을 맞게 되었는데, 대륙의 거대한 부분이 물에 잠기고, 일부 주민들만이 높은 지역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남북 아메리카이며, 살아남은 주민의 후손들은 무지하고 야만스러운 인디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베이컨은 1567년 에스파냐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된 바 있으며, 영국에서는 이른바 솔로몬의 섬으로 널리 퍼진 남태평양에 있는 땅을 “새로운 아틀란티스”로 규정합니다.

 

15. 이상 국가, 새로운 아틀란티스: 이제 작품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미완성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설의 틀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어떤 선박에 관해서 보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페루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지나 중국 그리고 일본으로 향했는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온갖 고초 끝에 선박은 남태평양의 가상적인 섬, 벤잘렘 Bensalem에 당도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벤잘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실제 남태평양에서는 이러한 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어와 캄파넬라의 작품은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1인칭 화자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선원들은 커다란 환대를 받으면서 벤잘렘 섬에 기거하게 됩니다. 섬은 하나의 이상 국가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약 1900년 전에 살로마나 Salomana 왕이 이곳에 와서 도시 국가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지난 37년 동안 외부로부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섬사람들은 외부 세계에 관한 소식을 잘 알고 있지만, 외부 세계는 벤잘렘 섬의 삶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선원의 보고를 통하여, 이상 국가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의 영국의 사회 질서가 하나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베이컨의 이상 국가는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신선한 내용을 보여주지는 않으나, 기술 유토피아의 측면에서 이상국가의 놀라운 내용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이곳의 역사 그리고 정치 체제 및 제반 삶에 관해서 하나씩 접해 나갑니다.

 

16. 엘리트 중심의 군주국가: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는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도시국가는 1900년 전의 솔라모나 왕의 법적 체제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점으로 미루어 철저히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도시국가는 계층, 다시 말해 계급 차이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각자의 직업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돈과 재화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까닭은 재화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배분되어, 사람들이 굶주림과 거주 환경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공갈 사기 협박 내지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차단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이를테면 관리들은 월급 외의 어떠한 금품도 받지 않습니다. 베이컨은 금품수수가 얼마나 한 인간을 망치게 하는가? 하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엘리트 중심의 군주국가로 이해됩니다. 모든 정책은 최고의 원로원에 의해서 출현하고 집행됩니다. 그렇기에 일반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 문제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습니다. 군주국가 내의 전문가의 수준을 갖춘 현명한 엘리트들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적 판단에 있어서 개인 차이를 지닙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