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2)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필자 (匹子) 2019. 6. 8. 11:42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베이컨 사상의 토대 (1): 베이컨의 사상의 토대는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베이컨의 사상은 거시적으로 고찰할 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잘못된 견해 내지 오류를 폭로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자연의 연구를 통한 새로운 학문을 발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베이컨이 자연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은 까닭은 자연 연구를 통해서 자연의 지배권이 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 인류에게 되돌려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를 되찾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연이 불가해의 특징을 지닌 복잡한 객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무지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리고 어떤 미신을 맹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암호를 인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베이컨 사상의 토대 (2): 여기서 무지, 선입견 그리고 미신은 베이컨이 파악한 세 가지 죄악과 같습니다. 첫 번째의 죄악은 무지라고 합니다. 인간은 베이컨에 의하면 자연에 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연은 순응을 통해서 정복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Natura enim non nisi parendo vincitur.”고 합니다. 베이컨의 이러한 발언은 『노붐 오르가눔』의 제 1장에 언급되고 있는데, 자연을 파악하고 탐색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나가려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죄악은 편견이라고 합니다. 기실 편견이란 잘못된 선입견으로 인해 미리 지레짐작한 가정 내지는 가설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인습적 가정을 무턱대고 하나의 사실로 단언하고, 이와 관련되는 어떤 은폐된 새로운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의 죄악은 미신이라고 합니다. 미신은 전통적 인습이나 종교적 망상에 속하는, 어떤 치기어린 사고를 가리킵니다. 미신은 하나의 고정관념으로서 사람들의 탐구욕을 처음부터 차단시키도록 교묘하게 작용합니다. 베이컨은 상기한 무지, 편견 그리고 미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숙고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베이컨에 의하면 “백지상태 Tabula rasa”와 같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나쁘게 염색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아가 인간의 두뇌 역시 왜곡된 정보에 의해서 마구잡이로 입력되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감각적 관념은 대상 자체의 허상이라기보다는 대상과 인간의 본성이 결합되어 나타난, 잘못된 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진면목을 왜곡하여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7. 네 가지 우상 이론 (1): 이로써 탄생한 것은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 이론입니다. 이는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그리고 극장의 우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베이컨의 유토피아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베이컨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약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동굴의 우상 idola specus을 가리킵니다. 이는 고유의 사적인 동굴 속에 고립되어 있는 존재를 지칭합니다. 이것들은 애호하는 성향이며, 기이한 개성, 고집 내지 성벽 등과 관계됩니다. 우리는 호불호에 관해서는 다투지 말아야 하며, 우리 자신의 편협하고도 고루한 자세를 저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연이라는 편협한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서 보편적이고도 공정하게 모든 것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블로흐 2007: 378).

 

두 번째 그룹은 “종 (種)의 우상 idola tribus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인간 유형의 generis humani” 우상이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유형, 즉 인간 존재로부터 인간의 일반적 특성으로 이전되는 우상들을 지칭합니다. 가령 인간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감각적 인상들은 처음부터 제한되고 편협한 것들입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바라보고, 우리는 태양이 움직인다고 착각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종의 우상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각 기관의 기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인간의 감각적 인지 행위를 보다 객관적으로 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기구들을 발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자연을 보다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 네 가지 우상 이론 (2): 세 번째 그룹은 “시장의 우상 idola fori”입니다. “시장의 우상”은 공공연한 견해 내지 경솔한 유행어 속에 담긴 편견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견해 내지 유행어들은 주위에 널리 퍼져서, 우리 자신이 그것들의 전리품으로 기만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은 언어 비판 내지 인식론적으로 생각된 언어 비판입니다. 거대한 언어, 중요한 말은 베이컨에 의하면 그것들이 탄생한 그곳, 즉 당시의 계급적 상황의 이데올로기 속에 가만히 머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어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접시를 넘어서서, 나중에는 어떤 가능한, 보다 과장되고 과잉된 무엇을 아울러 표현합니다. 이로 인하여 어떤 사상이 멋진 문장으로 잘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언어는 이러한 사상의 내용을 나중에 달리 숙성시켜, 본래 지니고 있던 사상적 함의를 완전히 개방시킵니다. 네 번째 우상은 “극장의 우상 idola theatri입니다. 이것은 문학적 무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권위 그리고 권위적 전통에서 유래하는 망상 등에서 드러나는 우상입니다. (블로흐 2007: 381). 여기서 베이컨은 일체의 권위주의를 거절하고, 스콜라 학문을 혁신하는 모든 일들을 과감하게 배격합니다. 스콜라 학문은 베이컨에 의하면 마치 더 이상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는 군용 도로와 다름이 없습니다. 극장의 우상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 예식이라고 합니다.

 

9. 네 가지 우상 이론 (3): 이 가운데 극장의 우상은 인위적으로 산출된 것이므로 완전히 파기되어야 하고 파기될 수 있다고 베이컨은 확신했습니다. 이에 반해서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그리고 극장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서 파생되는 것이므로,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으며, 인간은 다만 이로 인한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베이컨은 인간이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독단과 억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치 갓 태어나 세상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을 답습해야 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베이컨이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 선입견 그리고 미신을 지니지 않은 채 새로운 과학과 지식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이는 내세의 행복이 아니라,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무엇보다도 감각적 경험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보다 많은 재화를 창출해낼 수 있으며, 인간 삶은 더욱더 윤택하고 편리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베이컨이 추구하는 귀납법의 진정한 목표는 자연 자체, 다시 말해서 자연의 형상을 인식하는 일에 있다고 합니다.

 

10. 베이컨 사상의 한계: 그럼에도 우리는 베이컨 사상의 몇 가지 한계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로 모든 실험은 가설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베이컨은 모든 가설 가운데 일부만을 채택하였습니다. 일견 추상적이며 모호하게 여겨지는 가설들은 처음부터 연구에서 배제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특히 천문학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베이컨은 천문학의 가설들의 옳고 그름을 밝힐 수 없다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연구 대상 자체가 지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고, 이를 포착할 천문학적 기계 내지 기구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베이컨은 요한네스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천문학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확실한 경험적 증좌가 없다는 이유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하나의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베이컨은 수학의 중요성을 간과하였습니다. 수학이야 말로 근대 자연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적 초석이었는데, 베이컨은 이를 처음부터 좌시하였습니다. 셋째로 그가 즐겨 활용했던 귀납법의 개념은 자연의 형상에 집중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그가 사물의 상호 작용에 관해서 둔감한 태도로 일관한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따라서 근대 과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게 하는 물리적 운동 법칙이라든가 수학적 사고는 베이컨에게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