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5)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앞에서 계속됩니다.)

 

25. 생물학, 식품 영양학, 기계와 기술: 생물학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으로서 우리는 유전 공학과 육종학을 들 수 있습니다. 야생수를 유실수로 변화시키는 방법, 과실의 맛, 색, 향기 그리고 크기를 조절하는 방법, 동물의 교배와 합성의 원리도 실험 방법이 됩니다. 의학의 영역에서 솔로몬 연구소는 고도의 마취술과 해부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식품 영양학 영역에서 연구자들은 빵을 제조할 때도 곡물, 채소, 견과류, 고기 생선 등을 효모와 적당하게 배합합니다. 모든 고기류는 마치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처럼 소화가 잘 되도록 가공 처리되어 있고, 음료수는 40년까지 보존할 수 있습니다. 기계 기술 분야에서 열역학, 광학, 유체 역학, 기계 공학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안경, 쌍안경, 망원경 그리고 현미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음향 관에서는 확성기, 보청기, 멀리서 대화할 수 있는 전화기 등의 제작이 가능합니다. 기계관에서는 화약, 총, 대포와 같은 전쟁 무기가 제작되며, 사람들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기와 바다 속을 운행할 수 있는 잠수함 등의 설계도를 만들어내었습니다.

 

26. 연구자들의 일감과 협동 작업: 솔로몬의 연구소에 소속된 일부 연구자들은 이 세상에서 발견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법칙을 연구합니다. 그들은 12년에 한 번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세상에 발표해야 합니다. 다른 일부 연구자들은 새로운 학문적 토대와 규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문헌을 파헤칩니다. 솔로몬의 집에 소속되어 있는 또 다른 연구자들은 응용과학 분야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실험을 행해나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험은 이미 연구 발표회에서 하나의 학문적 이론 내지 도표로 확정된 바 있는 이론적 진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 발표회는 세 가지의 분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분과는 실험의 개별적 진행 과정을 감독 관리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두 번째 분과는 실험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결과들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세 번째 분과는 실험의 결과를 실제 현실에 적용하여, 그게 유익한지 아닌지를 도출해내는 임무를 맡습니다. 네 번째 마지막 분과에 해당하는 연구자 그룹은 실험을 통한 연구 결과를 하나의 시도로 채택합니다. 이때 연구 결과는 그야말로 결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본질 속으로 파고들어서 더 커다란 의미를 찾아내고 이끌어내기 위한 출발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베이컨이 추구한 학문적 귀납법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베이컨은 어떤 연구 결과는 실험을 통해서 특정 부분의 개별적 공리로서 확정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27. 학문 아카데미의 출발지: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베이컨의 다른 저서들에 비해서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즉 자연과학의 연구는 처음부터 무엇보다도 인류를 위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사항 말입니다. 베이컨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인간 삶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학문의 조직적 연구를 추구해야 하며, 이러한 학문 연구를 통해서 어떤 새롭고도 혁신적인 경험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베이컨은 인간 삶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가 개별적인 해답을 통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개별적 해결책을 축적시켜서 (연구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어떤 조직적이고 통합적인 해결 방법을 산출해내어야 비로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통해서 어떤 학문적 협동 작업의 틀을 설계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틀은 오늘날 “팀워크”를 실천하는 연구 공동체의 본보기로서, 실제로 현대의 학문 아카데미를 창설하여 결실을 맺는 데에 상당히 좋은 자극을 가했습니다.

 

28. (요약) 철저하게 구획된, 국가주의에 근거하는 기술 유토피아: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르네상스에 출현한 다른 유토피아와 비교할 때 내용상으로는 상당히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은 두 가지의 모델을 반영합니다. 그 하나는 정치권력과 자연과학 연구를 통합한 모델이라면, 다른 하나는 귀납법적 실험 방식을 준수하는 자연과학 연구의 분과 내지 방법론적 구분을 강조하는 모델입니다.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으며, 구조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형적인 공간 유토피아의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베이컨의 유토피아는 르네상스 시대에 간행된 다른 유토피아와 비교할 때 완전무결하지 않는, 단편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Mohl: 189). 이는 아무래도 작가의 관심사가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유토피아를 설계하려고 한 게 아니라, 과학 기슬의 영역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베이컨의 유토피아는 어떤 사회 유토피아에 관한 설계인데, 과학 기술이 가장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에리히 프롬은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다다익선 (多多益善)을 지향하는 소유의 왕국”이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김종갑: 116).

 

29. 다른 문학 유토피아와의 차이점: 일단 내용상으로 베이컨의 작품은 유토피아의 유형에서 많이 벗어납니다. 이를테면 라르스 구스타프손Lars Gustafsson은 유토피아의 근본적 특성을 플라톤의 『국가』에서 찾고 있습니다. 가령 플라톤은 (1) 사유재산 내지 개인 소유의 기본권 철폐, (2) 화폐 경제의 철폐, (3) 성의 도덕적 제한 철폐, (4) 동일한 계층 내에서의 다양한 직업 분배, (5) 동일한 의복 등을 유토피아의 공통적 특징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Gustafsson: 289). 그러나 베이컨의 유토피아는 얼밀히 말해 구스타프손이 지적한 첫 번째 세 가지 사항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물론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빈부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갈등이라든가, 사유재산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베이컨의 작품은 구조적 특성, 다시 말해서 제도적 체제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어떤 전형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1) 최상의 국가에 관한 구도, (2) 미지의 섬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 유토피아, (3) 국가로 하여금 수많은 분과의 체제 및 기관을 나누어 관리하게 하는 점, (4) 작품 내에서 제도적인 구분과 분할은 너무나 철저하고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개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 (5) 베이컨의 편집자, 윌리엄 롤리가 강조한 바 있듯이, 이른바 주어진 현실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가상적 특성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Saage 163). 이는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전형적인 특징에 해당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철저하게 구획된, 국가주의에 근거하는 기술 유토피아라고 명명할 수 있겠습니다.

 

30. 이후의 영향: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16세기 17세기의 문학 유토피아에 속하는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세 봉건적 경제 질서로부터 산업의 시대로 이행되는 과도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서 유럽 내에서 많은 학문 아카데미가 생겨났습니다. 1645년 영국의 자연과학자들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서 하나의 자연과학 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학회는 1662년 영국의 발전된 학문 아카데미에 해당하는 황실학회 Royal Society로 거듭나게 됩니다. 자연과학 연구는 영국 뿐 아니라,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652년에는 자연과학자의 아카데미가 발족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학회를 “레오폴디나 Leopoldina”라고 명명했습니다. 1666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가 창설되었고, 1700년에는 베를린 학문 아카데미가, 1724년에서 1725년 사이에는 러시아 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학문 연구 아카데미가 발족되었습니다. 요약하건대 토마스 모어와 캄파넬라가 사회 유토피아,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사회적 정치의 토대를 설계했다면, 프랜시스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기술 유토피아, 다시 말해서 학문, 즉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한 더 나은 세계를 선취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베이컨의 작품은 사이언스 픽션의 선구적 작품으로 이해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1. 욕망 충족의 기술 유토피아: 루이스 멈포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모어의 유토피아가 인간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를 시사하고 있다면, 베이컨의 유토피아는 그러한 목표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학문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Mumford: 108) 베이컨의 유토피아에서는 섬에 존재하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측면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치 그리고 어떤 완전한 삶의 형태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람들이 최소한의 욕구를 미리 설정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간다면,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전자의 사람들이 검소하게 살고, 금은보화를 경멸한다면, 후자의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화려한 궁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호화로운 복장, 예절과 격식을 준수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 추구의 삶이 19세기 카베의 『이카리 여행』에 묘사된 사람들에 비하면 극도의 풍요로움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삶은 『유토피아』의 향락의 생활보다도 더욱더 많은 욕구 충족의 생활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미완성 작품,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지상의 행복 추구가 어떻게 이룩될 수 있는가? 하는 과정 내지 수단으로서의 기술 유토피아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김영한: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유토피아니즘, 탐구당 1989.

 김종갑: 후기, 실린 곳: 프랜시스 베이컨 새로운 아틀란티스, 김종갑 역, 에코리브르 2002.

 블로흐, 에른스트: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박설호 역, 열린책들 2007.

 이인식: 유토피아 이야기, 갤리온 2007.

 Bacon, Francis: Neues Organon, Hamburg 2009.

 Berneri, Marie Luise, Reise durch Utopia, Berlin 1982.

 Brecht, Bertolt: Das Experiment, in: ders., Gesammelte Werke, Bd. 11, Frankfurt a. M. 1968, S. 264 – 275.

 Gustafsson, Lars: Negation als Spiegel. Utopie aus epistemologischer Sicht, in: (hrsg.) W. Vosskamp, Utopieforschung, Bd. 1.Stuttgart 1985, S. 280 – 292.

 Jens, Walter (hrsg.):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22 Bde., München 2001.

 Mohl, Robert von: Die Geschichte und Literatur der Staatswissenschaften, 1 Bd. Teil III, Die Staatsromane, Erlangen 1855.

 Mumford, Lewis: The Story of Utopias, New York 1950.

 Saage, Richard: Utopische Profile, Bd. 1. Renaissance und Reformation, 2. korrigierte Aufl. Münster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