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생태주의 유토피아와 관련되는 일련의 문헌을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맨 처음 소개할 책은 울리히 프롭스트 Ulrich Probst의 『사회 정치와 유토피아의 사이에서 Zwischen Sozialpolitik und Utopie』라는 문헌인데, 1980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 3장., “생태학과 유토피아, 혹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프롭스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오늘날 시급한 것은 일방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목가주의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정치 생태학에 관한 학문적 논문을 통해서 어떠한 문제가 당면해 있는가? 하는 것을 알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이 전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리는 생태주의 유토피아에다 가장 절실한 사회정치적인 우선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2.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모든 정치적 계획 자체가 한계에 부딪쳤음을 깨닫는 사실입니다. 3. 주어진 현실의 변화를 위한 측정할 수 있는 인식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유토피아의 비전을 필요로 합니다. 생태적 현실을 고려하면서 사회, 경제 그리고 국가 등의 개혁 내지 새로운 방향 설정의 작업은 프롭스트에 의하면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프롭스트는 진단 그리고 처방, 다시 말해서 주어진 현실 비판 그리고 개혁적인 더 나은 제안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설정합니다. 기술적 진보는 오늘날 엄청난 단점과 위험을 가져다주었는데, 이는 생명체의 삶의 조건 그리고 생물의 불균형을 심화시켰습니다. 물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주위 환경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으며, 유토피아의 모든 역할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프롭스트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당면한 현재 상황을 분명히 간파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생태학적 전망을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필요로 하며, 가능한 무엇으로서의 구체적 변화를 예견하는 사고의 투시력을 지녀야 한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행복 추구의 도덕이라는 사고의 한계마저도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롭스트는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립니다. 우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생물학적 생태학적 문제점을 생각해내는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내야 하며, 이로써 미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상적 모델로써 현재 현실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4.
하인츠 차클러 Heinz Tschachler의 교수자격 논문 『생태학과 아르카디아. 자연 그리고 1970년대의 북아메리카의 문화』는 199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미 80년대에 차클러는 유토피아의 사고와 사이언스 픽션 문학을 연구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어슐러 르귄, 어니스트 칼렌바크 그리고 생태학의 문제점과 이들 문학에 나타난 유토피아의 차원을 연구하였습니다. 교수자격 논문에서 그는 북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연관 그리고 자연 이해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차클러는 두 가지 의향을 중요하게 부각시킵니다. 그 하나는 어떤 이상을 포괄할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여기다가 지금까지 자연이 얼마나 파괴의 과정을 걸었는가? 하는 것을 담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유토피아가 얼마나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립을 무조건적으로 관련시킬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유토피아의 사고는 20세기에 이르러 디스토피아의 경험을 현저하게 드러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유토피아는 인간의 행복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 확인된 셈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차클러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의 관점에서 생태주의 유토피아의 핵심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면서, 자연과 문화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인간과 자연을 공히 염두에 두면서 새로운 관점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삶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차클러에 의하면 생태학의 유토피아의 단초라고 합니다.
상기한 관점에 입각하여 차클러는 애트우드, 어슐러 르 귄, 칼렌바크 그리고 마지 피어시 등의 소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도출해냅니다. 70년대 북아메리카의 문화적 하위 시스템 속에는 “자연의 폭력” 그리고 “우주론적 화해의 유토피아”가 병렬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연의 파괴는 새로운 의미의 상생의 유토피아를 요청하며, 새로운 의미의 상생의 유토피아는 우리로 하여금 유토피아적 실천을 일깨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비평의 새로운 형태로서, 우리에게 어떤 변증법적 긴장 관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언젠가 유토피아의 상호성을 지적한 바 있는 한젠 Hansen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차클러와 한젠은 모두 자연을 지배하려는 유럽의 합리주의적 사고를 겨냥하면서, 주어진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긍정적이며 미래의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작업이 몹시 힘들다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되는 사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차클러의 입장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도구적 이성의 폐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비판 이론에 근접해 있습니다. 차클러는 비판 이론의 입장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인간학적 유토피아를 역으로 비판하면서 자연과 문화 사이의 상호성을 도출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비판 이론의 비판의 특성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비판이론은 어떤 긍정적인 의미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갇혀 있는 아포리아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생태학의 유토피아를 명확하게 도출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르쿠제, 아도르노 등의 비판 이론의 기본적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동양의 대가족 문화, 인디언의 생활방식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입각한 생태 공동체의 틀일 것입니다.
참고 문헌
- Barnouw, Dagmar: Die versuchte Realität oder Von der Möglichkeit, glücklichere Welten zu denken, Meiningen 1985.
- Bollerey, Franziska: Architekturkonzeptionen der utopischen Sozialisten. Alternative Planung und
Architektur für den gesellschaftlichen Prozess, Berlin 1991.
- Carson, Rachel: Der stumme Frühling, München 1990.
- Hansen, Klaus J.: Die retrospektive Mentalität. Europäische Kulturkritik und amerikanische Kultur,
Tübingen 1988.
- Hermand, Jost: Grüne Utopien in Deutschland. Zur Geschichte des ökologischen Bewußtseins,
Frankfurt a. M. 1991.
- Liebknecht, Wilhelm (hrsg.): Ein utopischer Roman. Stuttgart 1914.
- Linse, Ulrich: Ökopax und Anarchie. Eine Geschichte des ökologischen Bewegungen in
Deutschland, München 1986.
- Probst, Ulrich: Polit-Ökologie. Zwischen Sozialpolitik und Utopie, Frankfurt a. M. 1980.
- Tschachler, Heinz: Ökologie und Arkadien. Natur und nordamerikanische Kultur der siebziger Jahre,
Frankfurt a. M.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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