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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아이히의 두더지들

필자 (匹子) 2018. 7. 8. 14:09

귄터 아이히의 텍스트, "두더지들 (Maulwürfe)"은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씌어졌다. 그것은 총 140개의 짧은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문시도 아니고, 꽁트도 아니다. 어쩌면 ?두더지들?은 종래의 문학적 장르로 규정될 수 없는 실험적 텍스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짤막하고, 여러 가지 내용을 유추하게 해주는 언어 스케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텍스트들은 통상적인 의미 구조를 벗어나고, 서로 다른 의미 내용을 서로 어색하게 접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이히의 텍스트를 “시적 무정부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아이히의 텍스트들은 여러 곳에서 개별적으로 발표되었다. 1972년 ?두더지 모음집?으로 간행되었다.

 

두더지는 땅 속으로 굴을 파는 포유동물이다. 대부분 작음 몸집을 지니고 있으며, 눈이 퇴화되어 장님이 된 것도 있다. 두더지가 지상에 나와서 햇빛을 받게 되면, 거의 목숨을 잃기도 한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 (Das Wesen des Christentum)"에서 인간을 쥐에 비유하였다.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인간은 마치 쥐 한 마리처럼 높은 세상을 상정하여, 신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로서 설정하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이히는 더 나은 세상을 간파하지 못하는 인간의 태도를 두더지를 통해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고 하였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의 상은 아이히의 방송극 「자베트」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 (Fr. Kafka)의 단편 소설 「학술원을 위한 보고서 (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전자의 작품에서 인간의 언어를 배운 까마귀 한 마리는 자신이 속했던 세계 그리고 까마귀의 의사소통 등을 망각한다. 후자의 작품에서 인간의 언어를 배운 원숭이 한 마리는 마치 인간처럼 사고하면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원숭이의 특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제각기 인간 세계와 동물 세계 사이에서 국외자로 서성거리고 있다. 특히 후자의 작품은 남한에서 추송웅에 의해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세인에게 알려진 바 있다.

 

두더지의 상은 아이히의 시에 이미 여러 번 나타난 바 있다. 가령 1955년에 간행된 시집, "비가 전하는 소식 (Botschaften des Regens)"에서 「변화된 풍경」, 「3월」, 「오후 2시」 등의 작품을 살려 보라. 그리고 1948년에 간행된 시집 ?고립된 농가 (Abgelegene Gehöft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씌어져 있다.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끔찍하게 눌린 채,/ 두 눈이 뛰어나온 채, 자장가 소리 들린다,/ 두더지의 언어, 까치의 못쉰 소리가.” 나아가 ?지하철?이라는 제목 역시 “지하의 세계” 속에서 지상의 또 다른 세계를 추적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상징하고 있다.

 

이제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서언 (Präambel)」에서 아이히는 텍스트의 장르의 구상을 구상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자신의 텍스트는 무언가를 헤집으려고 하며, 공격성향을 지니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지하에 숨은 사고 내용을 들추어내고, 사람들에게 해로운, 체제 파괴적인 (subversiv) 무엇을 전하려고 한다. "두더지들"의 기본적 음색은 깊은 비애 내지 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는 텍스트 속에 비아냥거리는 유머를 뒤섞고 있다. “오로지 우울 때문에 나는 웃고 있다” (우리의 도롱뇽).

 

주제 상으로 고찰할 때 아이히의 텍스트들은 다양하다. 전후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치적 암시를 담고 있는가 하면 (「축제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야유도 있고 (「사이 서류철, 나의 구두공」), 60년대에 발표된 비상사태 법에 대한 은근한 비판도 있다 (「수집가의 행복」). 아이히는 「바쿠닌에 대한 경의」에서 아나키즘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가끔 과거 문예 사상가들이 아이히의 대화 상대자가 되기도 한다. (「라이프니츠와의 시도」, 「횔덜린」). 「늦은 아침 식사」와 같은 일상의 순간이 다루어지는가 하면, 현실과는 무관한 상상의 현실이 어처구니없이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듯 ?두더지?에는 의미 구조의 해체가 비일비재하게 엿보인다. 간간이 어어 유희도 곁들여 있다. 라이프니츠를 거론하면서, 단자 (Monaden)를 “유목민 (Nomaden)”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시구의 강약을 뒤집어 담기도 한다. [아이히는 자신의 묘사를 “ver-rückte Diskurse”라고 명명하였다. “ver-rückt”라는 말은 원래 “미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는 “다른 곳으로 밀친”이라는 뜻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심지어 새로운 언어 (조어)를 창안하기도 한다. 결국 아이히는 자신에게 그리고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는 비 의미의 시학을 주창하기 위하여 언어를 새로이 창안해내려고 시도하였다. “아니, 나는 마침내 어떤 새로운 무엇이 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꿈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게링케 (Gerinke), 아벤 (Aaben), 유시 (Jusch), 스타프 (Stapp) 그리고 차랄 (Zarall), 라디네 (Radine), 로 (Raux) 등에 대해 몹시 궁금해한다.”

 

"두더지들"은 아이히의 후기 문학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주어진 불가해의 (?) 현실에 대한 시인의 도전적 구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말년의 아이히가 얼마나 문학적으로 고뇌했는가? 를 단적으로 반증하고 있다. 실제로 시인은 시와 방송극 등이 더 이상 자신의 문학적 의도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장르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절감했다. 인지될 수 없고 인식될 수 없는 어느 이상적 혹은 가상적 현실은 서정시를 통해서 그리고 방송극을 통해서 명료하고 정확하게 기술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